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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소망∙사랑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김철웅 담임목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31일
ⓒ 경기헤럴드


“신망애(信望愛, 믿음∙소망∙사랑)가 충만한 사회”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목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로가 사랑하고 믿음으로 부족한 사람은 받고 넉넉한 사람은 더하는 문화 속에서 꽃피는 행복이 하늘의 축복이다. 이러한 사명감으로 지역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김철웅 군포교회 담임목사. 그는 아무리 어려운 역경도 긍정적인 사고와 자아실현으로 극복하도록 가르침을 주고 있다.

부모님의 행적으로 목회의 길로 가다.
영남의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가 그의 고향이다.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목회자이신 부친 슬하에서 예의범절이 바르게 성장했다. 부친은 정통목회를 하시는 바람에 지역활동이나 대외적인 활동보다 오직 교회의 부흥에만 전념하셨다. 모친은 부친의 사역을 내조하며 올바른 목회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흔들림이 없으셨다.
특히 부모님들의 언행과 목회활동 자체가 자식들의 거울이요 본보기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러한 환경에 익숙한 그는 어려서부터 동네 어르신들에게 반듯한 아이로 인정받곤 했다.
그가 초등학교 때 부친이 서울 노량진 교회 부목사로 목회활동지를 옮기게 됐다. 그는 그때부터 노량진 교회에 출석하여 그 교회가 그의 모교회가 되었다. 그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대구도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서울 또래들은 그와 다른 점이 많았다. 식생활과 옷차림, 학용품에서 조차 그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대구 사투리를 사용하여 놀림도 받기도 했지만 음악과 글짓기, 그림 등에 소질이 있어 또래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없었다. 특별히 글짓기는 교내 행사에서 수상을 몇 번 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악기를 다루는 음악활동으로 취미생활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신의주에서 월남을 하신 분들이라 서울에 친인척이 거의 없었다. 가까운 곳에 친척이 있으면 왕래도 할텐데 오직 학교, 교회가 그의 생활공간이었다.
그가 중학교에 입학을 할 즈음 부친의 담임목회를 위해 천호동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두 번째 이사는 모든 것의 변화의 시점이었다. 학교, 교회, 생활공간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부친이 시무하는 교회는 지하층에서 있었고 낯선 천호동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해 주었다.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어렵게 목회 활동을 하시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부친을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 가지게 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남성4중창 합창단에 입회하여 활동했다. 음악선생님이 직접 지도해 주신 덕분에 성악을 전통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여러 곳을 방문하며 노래로 희망을 주기도 하고 잠시 그룹사운드를 구성하여 음악적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하늘의 은사를 받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대학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활동을 접고 공부에만 집중했다.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목회활동이 그에게 이미 각인되어 있었기에 그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부모님은 그에게 목회자가 되라고 강요하신 적도 없고 되지 말라고 만류하신 적도 없다. 오로지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의 개인적인 소명이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서울장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으며 이후로 모든 신학과정을 마치는 동안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장학금으로 학업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바로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 교역학석사)에 진학했다. 이 과정은 목사안수를 받기 위한 과정석사과정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3년 동안 앞으로 목사안수를 받기 위한 기본적인 신학수업과 목회수업을 받았다. 이때도 부친의 신학졸업 동기 동료분들(장로회 신학대학원 71기 졸업 동문회)이 등록금을 해결해 주신 덕분에 학업에 정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에서도 일체의 사회활동대신 오로지 신학공부와 목회수업에만 열중했다. 졸업 후에는 다시 장로회 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Th.M - 신학석사)에 재입학했다. 이 과정은 글자 그대로 신학을 배우기 위한 학문적인 석사과정이다. 이곳에서 그는 한국교회사를 전공하여 한국부흥운동을 중심으로 논문을 쓰고 학위과정을 마쳤다.
두 번의 석사과정 동안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꾸준히 토플공부와 영어회화 공부에 매진하여 일반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입학한 학교는 미국 시카고 지역에 위치해 있는 멕코믹 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로서 미국 북장로교단에 속해 있으며 그가 졸업한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학문적 교류가 있는 학교였다. 그는 이곳에서 신학인문석사과정(M.A.T.S)을 마쳤으며 전공으로 교차문화학(Cross-Culture)를 공부했다. 이때도 역시 학교로부터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나이 30대 초반이 되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밟아 본 미국 땅은 너무나 넓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한국으로부터의 특별한 경제적 지원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두 명의 외국인 룸메이트뿐이었다. 한국에서는 영어가 좀 된다고 했지만 미국 현장 수업을 따라 가기 힘들었다. 미국인 친구들은 여유 있는 수업으로 다양한 체험도 했지만 그는 항상 밤늦게까지 영어공부와 영문 보고서 작성하며 학업을 따라가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이었고 또한 두 명의 룸메이트가 모두 미국 본토의 외국인이라서 짧은 시간에 현장 영어를 습득할 수 있었고 어려운 영어 수업을 잘 따라 갈 수 있었다.
자신의 노력과 신념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미국 루터교단의 컨콜디아 신학대학원(Concordia Theological Seminary) 철학박사과정(Ph.D)까지 입학을 했다. 그곳에서 5년 넘는 기간 동안 수업활동을 하며 전공으로는 음악선교학을 공부했다. 여기서도 역시 학교로부터 장학금 혜택을 입어 오직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박사과정은 순수 등록금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논문과정에 많은 연구비가 소요되었다. 그리고 논문학기에 결혼했기에 생활비가 필요했는데 그러던 중에 한국의 김삼환 목사님(명성교회)로부터 해외장학금을 허락받아 그 모든 것을 충당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중엔 마침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포트웨인 한인교회 부목사로 활동하면서 학업과 목회활동을 병행했다. 포트웨인 한인교회는 아담하고 작은 교회라 사역활동이 그리 많지 않아 연구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이 시기에 한국에 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여 미국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고 때는 박사과정 논문작성 시기라 연구에 지장이 없는 대신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성의로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뉴저지주에 있는 <뉴저지 초대교회>의 부름을 받아 그곳에서 구역사역, 찬양사역, 행정목사로 활동을 전개하면서 동포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같이하였으며 이곳에서도 찬양단을 구성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고 찬양집회도 하면서 음악선교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됐다.

믿음∙소망∙사랑의 공동체를 만들다.
6년 이상의 유학생활과 3년 이상의 이민교회사역을 포함한 근 10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2011년 봄부터 한국의 영락교회로 부름을 받아 그곳에서 5년간 부목사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부목사로 재임하면서 3년간 젊은이 예배 사역과 청년사역을 했으며, 2년간의 교구구역사역을 하면서 한국식 목회를 잘 배웠다. 그가 가장 자신이 있는 음악을 통한 전도와 사역은 인기가 많았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음악은 신앙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더나가 everything will be fine 등 여러 곡을 작곡, 작사하여 복음에 기여했다.
복음음악이외에도 그는 과거나 현재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어 저술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추적! 사도 바울의 16년, 추적!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 추적! 찬양도 설교인가?, 추적! 음악선교는 가능한가?, 추적! 유니아는 여자 사도인가?, 추적! 예배자 셋,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은혜는 눈물이다 등 주옥같은 많은 저서를 출판했다. 그리고 후학을 위해 모교인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에 외래교수로 출강하여 가르치는 사역도 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역을 통해 한 목회자로 성장하고 있을 때 군포교회에서 담임목사 초빙이 있었다. 군포와 연고는 없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사역할 수 있겠다는 신념으로 군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지금까지 무엇을 하기 전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군포교회의 가족으로서 적응하려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다. 그가 짧은 기간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군포교회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군포유치원, 군포경로대학, 군포네팔예배 등 더 활성화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특히 선교사 지원사역, 사랑의 국수, 굿네이버스, 여러 복지기관과 요양원 등에 후원과 설교에 참여하고 있으며 군포시기독교연합회의 활동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그중에서 전세대가 함께 드리는 <세대간 연합 예배>를 매월 둘째 주 한 달에 한 번씩 열어 행복한 가정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그를 잠재적 신앙심을 갖게 하여 목회자의 길로 인도한 부모님의 삶을 늘 본받고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근면, 절약을, 교회에서는 전통목회 활동을 하여 본받지 않을 수 없게 모범을 보인 부모님처럼 자신도 자식들에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일생일업(一生一業)의 지혜를 일러주고 있다. 일생 동안 한 가지 일에 매진하면서 자아실현에 중심을 두어야 자신이 바라는 삶이 된다고 경험을 말해 주었다.
모태 신앙을 바탕으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많은 이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김철웅 군포교회 담임목사, 그는 가난을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가난으로 자신이 누리지 못한 삶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직 기도와 믿음∙소망∙사랑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만들기에 자신을 승화하고 있을 뿐이다.

약력
서울장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교역학석사)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 (Th.M-신학석사)
미국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M.A.T.S-신학인문석사)
미국 Concordia Theological Seminary (Ph.D - 철학박사)
미국 포트웨인 한인교회 부목사 역임
미국 뉴저지 초대교회 부목사 역임
서울 영락교회 부목사 역임
군포교회 담임목사
서울장신대학교 외래교수 역임
저서 – 은혜는 눈물이다 - 등 다수
everything will be fine 등 다수 작곡⋅작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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