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5-27 오후 12:18:4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아름다운사람들

오직 성령과 기도로 은사를 베푸는 최경훈 목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4년 03월 31일
 
ⓒ 경기헤럴드

 종교인의 본분은 종교가 추구하는 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성경과 불경에 나오는 말씀을 실천하고 은사와 자비를 베푸는 종교인은 시공을 초월한 존경을 받는다. 몇 차례 성령을 체험하고 기독교에 귀의하여 이웃에게 은사를 베풀고 있는 최경훈 목사. 그는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자로서 존경받고 있다,

효심의 극치를 보여주다.
양반의 고을과 전통문화가 가득한 경북 안동시가 그의 고향이다.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혈질인 성품을 가진 부친 슬하에서 인내심을 배우며 성장했다. 부친은 소작농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들 삼 형제를 모두 대학에 보내는 미래지향적인 분이셨다.
특히 안동은 선비의 고장으로서 효를 중시했다. 화를 잘 내시는 부친에게 대꾸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절대적인 효로서 부친을 따라야 했다. 여느 가정처럼 자상하고 따뜻한 정보다는 무뚝뚝한 경상도 기질의 거침이었다.
모친은 부친에 비해 자상하고 인자하셨다. 부친이 3남 4녀 중 막내인데도 모친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효부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소변과 대변을 다 받아내면서 불편하신 내색을 자식들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한 부모님의 효성이 극진하여 자식들은 부친의 무서움에 겁을 먹으면서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흔한 것이 동네마다 노름과 외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가족을 위한 헌신적인 책무, 나보다는 자식을 위한 삶을 영위하셨기에 자식들도 효행을 해야 했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그를 이름 대신 ‘00 동생’으로 불렀다. 그의 두 형들이 공부를 너무나 잘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정도로 두뇌가 명석하여 나중에 두 형들은 명문 대학에 진학하여 부모님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그도 형들처럼 머리가 좋았다. 공부도 잘하고 너무 착한 그는 담임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독차지했다. 4학년이 되던 해 대구사범대학교를 갓 졸업한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수업 시간에 성경의 말씀을 자주 해 주셨다.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교회에서 여러 가지 과자를 준다는 소식에 교회에 나갔다. 친구들과 탁구 등 다양한 놀이에 신이 나 가능한 주말에 교회에 나갔다. 5학년 때는 3,000m 달리기 선수로 선발, 안동시 대회에서 수상하여 동네 사람들이 올림픽 꿈나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에 일찍 등교하여 운동하고 저녁 늦게까지 훈련했지만, 집안에서 반대하여 운동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에게 초년 시절 어린이날이 없었다. 또래들은 부모님들과 안동 번화가로 놀러 갔다. 그는 부친의 호출로 밭에 나가 고추를 심어야 했다. 6학년 내내 휴일이나 공휴일에는 쉬는 것이 아니라 논과 밭에서 일해야 하는 소년 농부였다. 워낙 심성이 착한 그는 도와드리지 않으면 모친이 대신 일을 더해야 했다. 그에게 포근한 품은 어머니뿐이었다. 무더운 날 어머니가 혼자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할 때는 냉수를 들고 가 어머니의 노고를 풀어주는 등 효자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두메에서 초등학교를 보낸 그는 안동 시내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버스로 40분 걸리는 먼 거리였다. 일에 지친 그는 학교보다 교회 중심의 생활을 했다. 교회의 중등부에서 회장을 맡아 예배를 이끌면서 목회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성탄절에는 연극 주인공과 조연을 도맡아 또래 중심이 되었다. 방학 때 교회 부흥회 마지막 날 기도 중에 믿기지 못하는 성령 체험을 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중국 선교사가 되겠다고 기도하며 확실한 목회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여름방학이면 소년 농사꾼으로, 겨울이면 땔감 하는 나무꾼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

믿기 어려운 성령을 체험하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때는 누나와 같이 학교 근처에 계신 고모 댁에서 자취했다. 집안의 일손이 부족하여 주말이면 누나와 같이 농사를 도와야 했다. 당연히 성적은 뒤처져 종교와 입시에 반항하여 교회를 등한시 했다. 집안에서는 형들처럼 명문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삼수 끝에 대구시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야 했다. 법학과에 진학하게 된 동기는 형들이 모두 법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무 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대학에 입학해 보니 대학의 순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교 내 양현재 고시반에 입소했다. 양현재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기술고시, 회계사 등 고시 합격을 위한 학교 제공의 시설이다.
대구대학교 양현재에 입소할 정도는 실력을 인정받은 수준이었다. 그는 자만했는지 1학년 대학 축제 때 대상을 받으며 소위 속세에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공부 대신 술을 마시며 반항의 시기였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 회개하고 평일에는 다시 술과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양현재에 입소한 친구들은 오직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는 생활비와 용돈, 책값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아마 시간과의 싸움에서 초조와 불안으로 술과 친구와 동행했는지 모른다. 대학 2년 동안은 인생의 밑바닥이었다.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할까! 인간의 열등감, 적대감, 절망감을 직접 체험하며 그 무게에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경험한 그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최전방으로 배치됐다. 밤 경계 근무를 설 때면 별이 빛나는 밤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가끔 별을 보면서 실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입대 전 공부도 교회도 허송세월을 보낸 자책을 넘어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전역 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 중에 별이 빛나는 밤에 별 하나가 그의 가슴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엎드리면서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 기도를 드렸다, 남들은 믿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 이후로부터 전역까지 성경을 탐독하며 재차 목회자의 길로 방향을 잡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니 여전히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였다. 복학생으로서 체통과 미래를 위해 학생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성경 공부에 더 매진했다. 집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보라며 그를 보챘다. 부모님과의 갈등을 남기기 싫은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 잘하고 있다고 안심시켜 드리고 신학대학원 준비를 해 나갔다.
그는 원하는 고려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집에서는 일체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도움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다행히 대구에 있는 서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여 3년 등록금과 사례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가 사회로부터 처음 은사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개인이 아니라 목회자로서 공적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는 성령으로 약속한 중국 선교사가 되기 위해 동아리를 구성하여 회장으로 활동했다. 방대한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기도가 필요했다. 학생들과 많은 중국선교를 공부하고 정보교류를 할 즈음 기도 중에 중국 선교사보다 국내에서 목회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마산 신광교회에서 강도사 3년 동안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교회 내에 찬양팀과 전도팀을 구성해서 찬양 운영과 전도에 매진했다. 기대효과는 그 당시 폭발적인 신뢰를 받았다. 담임목사님이 그를 더 신뢰하여 많은 사역으로 신도들의 사랑을 받았다. 더욱이 신도가 늘어나 교회 부흥이 남달랐다,

성령과 기도로 은사를 베풀다.
부목사들이 그에게 질투 반, 농담 반으로 담임목사님의 황태자로 놀리키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정도로 전도와 사역에 모범을 보였다.
첫 강도사로서 책무에 충실한 그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일산에 있는 벧엘교회 부목사로 부임 받았다. 그는 청소년 사역으로 고등부 청소년들이 은혜받고 변하는 모습, 힘든 수험생활을 극복하고 미래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에서 제2의 은사를 얻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 갈등이 많은 시기인 고등부 학생들은 그에게 심리 상담을 통해 정신적 위안을 많이 받았다.
그가 부임하고 있는 벧엘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새벽기도를 삶의 철학이자 목회자의 훈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새벽기도를 통해 그는 또 다른 말씀을 상기했다. 중국 선교사 대신 국내에서 목회하라는 명령은 기성교회에서의 안락한 목회가 아니라 어렵고 힘든 개척교회에서의 목회였다.
결국 하나님이 그에게 시킨 사역의 목적은 개척교회에서의 부흥이었다. 더 이상 있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3년 사역 후 마산 담임목사님 소개로 안양에 있는 일심교회 부목사로 다시 부임 받았다. 그는 4년 동안 선임 부목사로 행정 등을 총괄하면서 담임목사를 보필, 청년부 사역에 집중했다.
교회의 전도와 행정 등 다방면에서 그동안 익힌 목회자로서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야 자신이 바라는 교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2015년 12월 27일 군포신안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군포시 대야미동에 있는 신안교회는 경사진 곳에 지어진 교회로 교통상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그에게 주어진 것이 안전이었다. 혹시 모를 성도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성도들도 교회의 성장보다 성도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목사님의 진심을 알기 시작했다.
부임 받아 오던 날 신안교회의 성도 수를 파악했다. 교회 규모에 비해 성도 수가 15명, 너무나 적었다. 성도 수가 적은 이유를 파악한 그는 상처받은 교회를 기도로 치유하기 위해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그는 ‘사랑으로 품자’,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보다 성도들을 사랑으로 품고 하나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처음에 몇 명의 성도가 참여했다. 안타깝게도 부임한 이후 코로나 3년은 그에게 주어진 고역의 시간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새벽기도 시간은 보통 2시간이었다. 성도들도 그에게 감복하여 ‘기도하는 목사’로 존경을 표했다. 그의 신학대학원 동기 목사와 노회에서도 기도하는 목사로 인정해 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에 매진하고 있다.
일반 성직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는 목요일마다 서울시에 소재한 청계산 기도원 동산에 올라가 산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계절과 상관없이 산 기도를 드리면서 그가 얻는 것은 타고난 본성을 잃지 말자였다. 목회자와 성직자로서 공간과 지위에 따라 변하는 목회자의 위상이 잘못하다가는 타락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목회자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하나님 명령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실행이 일치되고 있는지 매일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가 아무리 어려워도 해외 전도 개척만은 해야겠다는 의지로 신안교회에서 미얀마에 시온교회를 개척해 주었다. 건축비 3,600만 원을 지원했으며, 지금은 제2의 해외교회 개척을 위해 준비 중이다.
그는 제6회 개혁정론 포럼을 2017년에 신안교회당에서 개최했다. 개혁정론은 매년 2월과 8월에 포럼을 통해 개혁정론을 소개하고, 개혁정론 운영위원들과 개혁정론의 독자들이 함께 모여 교회와 신학적 관심을 나누고 있는 활동이다. 비록 교회의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도 성도들에게 조금이라도 개혁정론을 전파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그는 군포시장애인협회에 후원과 지역 청소년들의 장학사업을 지속해서 전개하기 위해 성호장학재단 이사를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주 자장면을 만들어 교회 성도는 물론 대야동 주변 주민들에게도 포장 자장면을 보급하고 있다. 요리로 전도사역을 하는 유명 집사의 도움으로 시작한 자장 전도는 반응도 좋다.
그는 신안교회 원로목사이신 강연형 목사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군포시 대야미 허허벌판에 교회를 짓고 27년 동안 성직자로서 존경받으신 강연형 목사님이 바로 자신이 가고 싶은 목회자의 길을 먼저 걸으신 분으로 강 목사님의 헌신적인 목회를 늘 본받고 싶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어느 종교든 기도를 깊게 하라고 조언하고 있는 그는 예수님을 인격으로 만나기 전에는 평범한 삶이었는데 예수님을 인격으로 만난 후에는 특별한 삶으로 바뀌었다. 기쁨과 평안 그리고 감사가 있다. 열등감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사라졌다고 경험을 일러주었다.
한국 사회가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 교회 안에도 노령화된 분이 많아 요양원과 요양 병원을 운영, 성도와 주민의 삶을 책임 지는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 그의 꿈 중의 하나다. 교회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고 대안학교까지 구상 중에 있는 그의 꿈이 이뤄지도록 기도해 본다.

약력
대구대학교 법학과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일산 벧엘교회 부목사 역임
안양 일심교회 부목사 역임
군포 신안교회 담임목사
성오장학재단 이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4년 03월 31일
- Copyrights ⓒ경기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마미박 예술단, 제5회 반월호수 효 공연’ 반월호수에서 개최
정각사 정엄 스님, 군포시립노인요양센터에 1,500만 원 운영지원금 전달
정각사, 군포시장애인단체연합회에 장학금 전달
군포문화원, 군포시민 문화유적지 답사 실시
이학영 의원, 22대 국회 전반기 더불어민주당 부의장 후보 선출
제12회 전국 어린이&청소년 댄스경연대회, 성대하게 마쳐
광복회 군포시지회 임경주 회장, 장애인 가족 초청 간담회 열어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군포시지부, 문화 체험으로 힐링 UP!
의왕시 오전동 자율방범대, 2024년 자원순환가게 운영
군포시 금정동, 어르신께 장수 잔칫상 드려
경기도·의회
김미숙 의원, ‘지방외교 활성화를 위한..
김미숙 의원, ‘지방외교 활성화를 위한 경기도의 발전방향’ 정책토론회 성료 김.. 
경기도교육청, 중증장애인생산.. 
경기도, ‘수리산 매쟁이골 누.. 
김미숙 의원, 경기도 독성물질.. 
김미숙 의원, ‘경기도 노인복.. 
임태희 교육감, “디지털 미디.. 
김재훈 의원, 경기도 정신장애.. 
최효숙 의원, 경기도 영유아 .. 
김동연 지사, 첫 우호협력 협.. 
임태희 교육감, “학생인권과.. 
제17회 경기민족굿 한마당 “.. 
경기도교육청교육연수원, 위험.. 
경기도, 전세사기 가담 의심 .. 
아름다운 사람들
오직 성령과 기도로 은사를 베푸는 최경훈 목사 .. 
경천애인으로 기업가와 사회사업가로 존경받는 .. 
인의로서 아름다운 공동체 만들기에 모범이 되는.. 
봉사와 헌신의 화신 이경자 회장 세상의 밀알이.. 
지역을 위해 자신을 승화하는 김재덕 회장 인.. 
사회의 등불 롤모델 여성 사업가 김사녀 회장 .. 
제호 : 경기헤럴드 / 주소: (15865) 경기도 군포시 산본로323번길 20-33 대원프라자 801호 / 발행인 : 임종호
편집인 : 임종호 / mail: ggherald@naver.com / Tel: 031-427-0785 / Fax : 031-427-1773
정기간행물 : 경기다01029(2007년 09월 17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증 : 경기아 51770(2017년 12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호
Copyright ⓒ 경기헤럴드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