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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꿈을 찾으며 행복만들기의 롤모델 전희순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09월 06일
ⓒ 경기헤럴드

어려운 환경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 환경에 종속되는 자와 극복하는 자뿐이다. 갑작스러운 집안의 어려움으로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한 전희순 회장. 그녀는 만학의 꿈을 실현하면서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해 행복한 마을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꿈을 접으며 새로운 세계에 접하다.
대견사와 왕사 희랑대사로 유명한 경남 거창군이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는 3남2녀중 넷째로 태어나 부친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성장했다. 부친은 강직하고 지역에서 존경을 받은 경찰공무원이셨다. 부친은 서울로 발령이 났지만 할아버지의 완곡한 반대로 전근가지 못하고 퇴직을 하고 말았다.
모친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돌아가실 때가지 모신 효부였다. 집안의 애경사와 농사는 모친의 몫이었고 그녀는 할머니 손에 양육되었다. 아들 셋을 내리 낳아 딸이 귀하다 그녀가 태어나자 부친은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곤 했다. 늘 예쁜 희순이 라면서 귀여움을 받자 그녀는 정말 자신이 예쁜 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자신보다 더 예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정도로 순박했다.
특히 모친은 할머니의 치매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하셨다. 대소변은 물론이고 노망현상까지 보여도 공손한 마음으로 모셔 동네에서는 효부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오빠 졸업식 때 장한 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고향은 시골이라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오빠들과 노는 것이 일상이었고 오빠들은 마냥 귀여운 여동생이라 져주기 일쑤였지만 집안의 살림꾼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면 어린 아이가 빨래와 밥, 청소는 물론이고 동생을 돌보며 모친의 일손을 덜어주었다.
학교에서도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었다.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줘야 직성이 풀리고 따뜻한 친구가 되어 줘 그녀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또래보다 키가 컸던 그녀는 남 앞에서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나서는 것을 싫어하여 늘 소극적이었지만 음악을 너무 좋아했다. 선생님으로부터 음악을 배워오면 집에서 동생을 학생으로 간주하고 동생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로인해 그녀는 미래에 초등학교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리나 떨어진 중학교로 입학을 했다. 비가오나 눈이와도 지각이나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친구 중의 한 명이 자신의 집에 모내기를 해야 한다며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녀는 흔쾌히 모내기에 가 친구의 일손을 도와주는 등 자신보다 친구가 먼저였다.

사회봉사자로 책무를 다 하다.
고등학교 시절도 집안 일을 도우며 공부에만 열중했던 그녀에게 근심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학할 즈음 가계가 급속도록 어려워졌다. 경찰공무원에서 퇴직한 부친이 농사로 오빠들을 다 교육시키기가 너무 어렵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1년 앞둔 그녀는 밀린 수업료로 학교에서 추궁을 당해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 휴학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공부도 곧잘하여 진주교대 입학이 꿈이었다. 그래서 1년 휴학하고 다시 복학하여 꿈을 이뤄보려고 노력했지만 집안의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부산에 있는 이모네 집에서 학원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가끔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부친의 몸이 좋지 않다는 소리로 그녀는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러운 중매가 들어왔다. 부친의 완곡한 부탁으로 그녀는 시댁이 있는 안양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사실 결혼을 하기 전에 부친이 그녀 모르게 안양 사돈댁이 될 집에 미리 와서 집안을 알아 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부친은 건강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아마 부친은 생전에 가장 사랑한 딸이라도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인지 오빠들 보다 딸을 먼저 시집을 보내려고 했었던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안양으로 온 시댁에는 시조부모님, 시부모, 시삼촌, 시숙모, 사촌시동생 등 3대의 대가족이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남편은 외아들이라 단기사병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던 터라 모든 살림을 그녀가 맡아서 해야했다. 시동생들이 초등학생들이라 2부 수업이 있는 날에는 점심까지 그녀가 챙기며 시댁에 최선을 다 했다. 마침 시동생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를 가고 남편도 전역을 하여 회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녀에게 달콤한 시간들이 조금씩 찾아왔다.
어느 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남편이 회사원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말과 동시에 사업을 하겠다고 하여 그녀는 흔쾌히 동의하고 사업하는 남편을 내조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시부모님들이 돌봐주시는 덕분에 그녀는 직접 현장을 다니며 재단, 영업, 경영까지 맡아 짧은 시간에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동네에서 인심좋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던 그녀는 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의 가시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나이 29세에 새마을부녀회에 발탁이 되어 바쁜 사업에도 지역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회원들과 함께 리어카에 빈병, 고철, 파지 등을 모아 수익금을 조성하여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과 독거어르신들 후원사업의 종자돈이 되는데 일조했다. 더욱이 재해로 피해 입은 지역에 회원들과 봉사는 물론이고 일손이 부족한 농촌지역에 동참하여 과수전지, 포도봉지 씌우기 등과 겨울철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김장담가주기 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그녀의 헌신적인 봉사가 널리알려지자 동에서는 통장활동을 권유하여 통장을 맡아 행정지원사업과 독거어르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복지사각지역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새마을부녀회 18년과 통장활동을 하면서 다하지 못한 공부에 미련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안양에 소재한 안양상고에 재입학하여 꿈꾸던 대학에 합격했다.
낮에는 봉사와 일을, 저녁에는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서 공부에 전념을 했다. 그녀가 지역봉사로 수업이 늦으면 동장이나 동 직원들이 학교까지 데려다 줄 정도로 지역에서 인정받고 있었던 그녀는 젊은 친구들과 치열한 공부에서도 뒤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녀는 1학년 때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3학년 때는 복수전공에 합격을 하여 경영학을 전공하는 만학도로서 매사에 열정을 다 했다.

효부효녀로 칭송을 받다.
그녀는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서 안양시 고용정책과 일자리센터에 계약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녀는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해 친부모 대하듯 정성을 다 해 상담받은 어르신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던중에 시아버지가 폐쇄성 폐질환으로 고생을 하시자 그녀는 간호와 간병에도 정성을 다했다. 특히 시아버지가 경로당에 가셔 위급하여 119에 수 차례 이송되었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은 그녀였다. 모친이 시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 했듯이 어려서 보고 배운 효심은 커서도 그녀의 모친과 똑같이 실행을 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충격으로 시어머니는 초기 치매현상이 왔다. 그녀는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불만 한 번 내색하지 않고 모시자 남편은 그녀에게 늘 고마워했다. 시어머니가 치매인데다 설상가상으로 친정어머니도 병석에 눕게되자 그녀는 친정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친정어머니는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해 그녀가 대소변을 다 받아야 했다.
요즘 세상에 병마와 싸우는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며느리와 딸이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요양원에 모시는 것도 효자효부 소리 듣는 세상인데도 그녀는 타고난 천성으로 모셔 효부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는 집안의 내우가 있어도 시간이 허락되면 지역봉사에 게으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녀는 민간전문가로 인정받아 안양시지역사회복지협의회 이사로 위촉되어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을 발굴하여 연계사업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행복한 동네만들기 팀장을 맡아 사각지대에서도 누락된 어르신을 발굴하여 복지지원사업이 전개되도록 했으며 주기적인 방문으로 말벗친구되어주기와 동네 소식전하기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또한 안양시지역사회복지보장협의체 위원으로 위촉되어 바뀐 복지정책홍보, 방문간호로 당뇨와 혈압체크 등 실질적인 간호사업과 후원자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그녀는 안양시문화원 이사로 위촉되어 안양시문화계승과 저변확대에도 동참하고 있다.
그녀의 대외적인 활동이 모범이 되어 칭찬합시다중앙회장 표창장, 국회의원 표창장, 안양시장 표창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등이 그녀의 노고를 위로해 주었다.
불자인 그녀는 법정 스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무소유를 주장하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천당이고 지옥’이라는 법문과 ‘내 맘이 즐거우면 천당이고, 내 몸이 괴로우면 지옥’이라는 교훈을 신조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포기하지 않으면 자신의 꿈에 가깝게 다가간다고 자신의 경험을 일러주었다. 열정과 끈기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덕목이라며 어떠한 것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있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모실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녀는 대리만족은 아니지만 자신이 이루진 못한 선생님의 꿈을 동생과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녀는 동생에게 교대를 종용하여 현재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중이며 큰딸은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교사로, 막내 아들은 청주교대에 재학중이다. 가정사로 인해 포기한 대학을 만학도로서 성취했고 지역에서 봉사자로서 활동하기 위해 실버체조지도사 자격증,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을뿐만 아니라 효부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녀는 우리들의 삶에 거울이 되기에 충분했다.

약력
경남 거창군 출생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안양시4동부녀회 총무
안양시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안양문화원 이사
안양시4동 통장협의회 회장
안양시지역사회복지보장협의체 위원
칭찬합시다중앙회장 표창장
국회의원 표창장
안양시장 표창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2회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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