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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잊지 않아야 할 영혼들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9년 06월 09일
ⓒ 경기헤럴드

                                          
이서연/시인

장미의 향기가 푸른 빛깔 속에서 깊어가는 계절, 장미의 핏빛처럼 유럽은 들판 곳곳에 포피(poppy)꽃이 물결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수많은 군인들이 잠들어 있는 플랑드르 들판에 핀 붉은 꽃을 보고 시인 존 매크레는 "플랜더스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시를 통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짧은 인생을 마감한 순수한 영혼으로 표현했다. 그 후 포피는 전쟁에 희생된 이들의 영혼으로 상징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포피처럼 장미가 마치 희생의 가치를 잊지 말라는 듯 붉다. 사실 6월이 아니어도 잊지 않아야 할 일이지만 6월이니 더욱 기억해야 할 영혼들이 있다. 전쟁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이 새겨진 벽이 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6.25 당시 참전국은 총 16개국이었다. 영국이 약 1만 4천 2백명이고 17개국서 참여한 병력이 모두 34만 1천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우리를 알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참여한 군인이 있을까?
지하철에서 우연히 전쟁기념관을 방문하고 수행평가를 위해 보고서를 준비 중인 고등학생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엉망인 역사는 잊어야 한다는 말이 들렸다. 전쟁과 같은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람이 현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방해되는 과거는 잊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잊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털어내야 할 일을 털어내지 못하고 감정소비 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물론 역사에 잊어야 할 과거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역사를 통해 잘못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학생들도 그런 의미로 대화를 한 것이라 여기고 싶다.
시대변화와 역사관에 따라 논리적인 대화에는 그 대화를 하는 참된 의미를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젊은이들의 대화에서 걱정되는 건 잊어야 하는 과거라며 전쟁에 희생된 분들까지 잊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 분들과 우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만약 지구 어느 곳에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이 났을 때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라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국가의 부름을 받는다면 어떤 마음이겠는가. 왜 내가 그 나라 전쟁에서 희생되어야 하냐 하지 않을까? 따라서 전쟁에서 희생된 영혼을 마치 시대를 잘못 타고나 운명처럼 가볍게 여기는 것은 그야말로 멋대로 이해하며 살아가는 무례함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다. 평화 또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은 소중하게 아끼고, 평화는 기꺼이 누리면서 나를 위해 희생한 생명, 평화를 위해 희생된 생명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희생되는 생명이 따로 있고, 그 희생으로 얻어진 것을 누리기만 하는 생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건만 특히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는 생명과 평화의식이 약하다. 지금의 평화가 과거에 희생된 사람 덕분이라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건 그런 이유라고 본다.
사랑, 이 말은 에로틱한 감정이 아니라 ‘희생’에 가깝다. 진정으로 사랑을 실현하는 사람은 자신을 다 바쳐 희생을 보여 주고 있다. 인류애라는 것도 거룩한 사랑의 범위에 있으며, 거기엔 나를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전쟁에서 희생된 분들은 사랑의 가치를 가장 의미있게 보여 준 분들이다. 희생을 사랑의 가장 큰 의미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류의 평화를 위해 희생된 분들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영혼이 유영하는 유월은 보훈의 달이다. 지금의 평화가 있도록 희생된 영혼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9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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