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영화 <말모이>에서 본 신념· 신뢰· 사랑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 입력 : 2019년 0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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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서연
요즘 영화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영화가 엄유나 감독이 만든 <말모이>다. 일제 말기, 급격히 우리말 말살 정책이 심했던 시기에 우리말을 모아 조선말 사전을 만들려했다는 이유로 대거 옥고를 치룬 조선어학회 사건을 중심으로 그 이면에 있었을 법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말모이’란 우리말을 모은 것이란 의미므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이 훈훈한 영화에서 세 가지를 보았다.
첫째, 신념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조선어학회를 유지하게 한 모토였다. 그 어떤 것도 꺾을 수 없는 믿음, 그게 역사를 이룬다. 문제는 한 사람은 강한 신념을 가질 수 있으나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되기 쉽지 않다. 서로 각자의 입장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신념을 갖고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목숨 건 인생을 산다는 건 말처럼, 영화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민족말살정책이 가장 심하던 시기에 마음을 모으고 말을 모으고 정신을 모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민족의 정기를 잃지 않으려고 했던 분들, 우리 역사에 그런 신념을 가진 분들이 계셨음에 깊은 감동과 함께 저절로 숙연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된다.
둘째는 신뢰다. 신념을 갖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가 있어야 한다. 특히 단체는 단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믿음이 그 단체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다. 믿음이 없는 관계에서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화합하여 성과를 낼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조갑윤 선생이 일자무식 김판수를 심부름꾼으로 합류시킬 때 보여 준 강한 신뢰감이다.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외부적인 조건(한글을 모르고, 소매치기 일당과 함께 일하던 경력)을 보면 동지들에게 이해시키기 어렵다. 그러나 조갑윤 선생은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김판수에게 갖게 된 신뢰가 강했다. 결국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지주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는 김판수는 일자무식자지만 한글을 배워가면서 가장 신념 있는 동지가 되어 목숨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역사적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 조갑윤 선생이 사람을 믿은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으로 믿음을 받은 판수는 신뢰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한 가치로 드러냈다. 이런 점이 인간을 신뢰함에 얻을 수 있는 감동이라 보인다.
셋째는 사랑. 동지간의 사랑은 서로의 신뢰로 확인된다. 각자의 목숨이 서로의 신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내 동지였던 민우철은 흔들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형무소 중에서 가장 고문이 심하기로 유명한 서대문구치소에서 가혹한 고통을 받자 아내의 목숨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동지간의 신뢰를 깨뜨린다. 그런데 그를 욕할 수 없었다. 동지들을 배신하는 그 자체가 자신의 전부와 목숨을 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였으나 사랑하는 아내를 고통에서 건져낼 자신의 마지막 선택이기도 했기에 배신 후 통곡하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므로.
한편, <말모이>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연기력보다 보통 사람들 역을 맡은 보통 사람들 연기가 더 좋다. 그들이 척박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말을 모으고 보전해 나갈 수 있게 보이지 않는 밑거름 역할을 한 진정한 ‘말모이’들이었기에 웃음 속에서도 색다른 감동을 준 것이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한 부분이라고 본다.
혹시 이 겨울이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맞이한 혹독한 시기라 여겨진다면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나목처럼 아픔을 견디는 그 외로움에 작은 도움이 되리라 보여지기 때문이다. |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 입력 : 2019년 0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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