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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리 꽃과 에세이94> 자목련과 가장 억울한 꽃


박혜리 기자 / rumiya515@gmail.com입력 : 2024년 0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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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이영렬 작가
ⓒ 경기헤럴드
시인·논설위원 박혜리

초등학생 때만 하여도 4월은 과학의 달이었다. 매해 과학과 관련된 행사가 있고 발명품 대회가 있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4.19의 달, 혁명의 달이었다. 4.19혁명을 만들어낸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고, 프랑스나 미국에도 뒤지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몇 년 후 2014년 4월 16일. 지금도 그날의 뉴스를 본 것이 선명하다. 지금은 내게 4월은 추모의 달이다.
한 학교 한 학년 전체가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었다. 얼마나 설레고 즐거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너무도 많은 아이들의 꽃같은 목숨이 바다에 수장되었다. 아이들에 가려져 잊힌 일반인들도 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보다 훨씬 어린 아이도 있고 자신의 자리와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 죽은 선원도 있다. 덧없이 사라져도 좋을 목숨은 없다.
이 시기만 되면 생각한다. 만일 내가 그러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어떠할까. 처음에는 몹시 당혹스러워 머릿속이 새하얗게 될 것이다. 이후에는 죽음의 공포가 밀려와 무섭고 두려울지도 모른다.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하지 않을까. 물론 실제로 겪은 일은 아니기에 상상만 할 뿐이다.
그런데 억울한 꽃도 있다. 내 잘못이 아닌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꽃이다. 바로 자목련이다. 자목련은 목련과 함께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꽃은 3월 말에 피기 시작하여 4월 중순에 절정을 이룬다. 꽃잎색은 겉은 검은 자주색이고 안쪽은 좀 더 밝은 자주색이다. 꽃잎은 6개지만 길이가 10cm내외로 전체적으로 매우 크다. 시간이 흘러 꽃이 질 때 꽃잎이 떨어지는데 꼭 열매가 툭 떨어지는 것 같다. 꽃말은 ‘믿음, 자연애, 존경, 우아함, 숭고한 사랑’ 등 다양하다.
자목련과 목련은 전설도 함께 공유한다. 목련 입장에서의 전설은 애틋하다고 볼 수 있지만 자목련의 입장에서는 슬프다 못해 경악스럽다.
옛날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공주는 오직 북쪽 신을 짝사랑하였다. 공주가 몰래 집을 빠져나와 신을 찾아갔다. 그런데 신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이에 크게 실망한 공주는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북쪽 신이 불쌍히 여겨 자기 아내를 죽이고는 공주와 나란히 묻었다. 훗날 그 무덤에서 꽃송이가 크고 우아한 꽃이 피어났는데 공주 무덤에서는 하얀 꽃이, 왕비의 무덤에서는 자색 꽃이 피어났다. 두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해 피었다.
공주의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백목련이다. 백목련의 꽃말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우리가 주목할 꽃은 왕비의 무덤에서 피어났다는 자색의 꽃이다. 이 꽃이 바로 자목련이다. 백목련과 달리 자목련은 자신의 의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꽃이다. 어찌보면 완벽하게 억울한 죽음에서 비롯된 꽃이다. 그래서 그 원통함에 온몸이 피로 물든 것이 아닐까.
억울하고 원통함에 피로 물든 색감을 지녔지만 오히려 그 색이 백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우아함과 숭고함이 느껴지도록 만든다. 억울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이다. 어떻게 승화해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왕비의 인품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고 함께 아파해 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억울한 마음은 나눌수록 가벼워질 수 있다.
모든 억울함은 쉽게 풀어질 수 없다. 다만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함께 아파해 줌으로써 감해질 수는 있다. 벌써 10주기다. 20년, 30년이 지나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박혜리 기자 / rumiya515@gmail.com입력 : 2024년 0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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