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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인식으로 행복한 사회구현에 앞장 서는 권병학 목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2월 23일
신의 인식으로 행복한 사회구현에 앞장 서는 권병학 목사
ⓒ 경기헤럴드
 
사람이 갖는 인식의 차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천차만별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상이, 주관에 따라 주는 자 또는 받는 자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이 없어 신의 인식을 갖게 된 권병학 목사. 그는 신이 준 인식을 모태로 하여 모두가 행복한 삶이 되도록 인도하고 있다.
 
아픔을 통해 신의 인식을 얻다.
백제문화의 보고인 충남 부여군이 그의 고향이다.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부친의 덕분으로 넉넉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농토가 많아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안이었지만 조부께서 일찍 타계 하시는 바람에 부친이 가장 역할을 하셨다. 부친은 동생들의 출가와 결혼을 모두 맡아 하다 보니 언제나 동생들의 든든한 부모 같았다.
자식과 동생들이 많으면서 종손이었던 부친은 우직하고 일밖에 모르는 소와 같았다. 조상이 물려준 토지를 조금씩 매매하여도 동생들이 마음 쓰이지 않게 격려와 용기를 줘 우애깊은 집안으로 만드셨다. 모친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의 종부로서 많은 제사를 지내거나 친인척이 오셔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기고 맏며느리로서 역할을 다 하셨다.
그는 어려서부터 늑막염에 결려 힘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과후에 부모님은 어떠한 일도 시키지 않았고 또 못하게 하여도 그는 소몰이와 같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효자였다. 다른 또래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독서를 많이 한 그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 수상도하여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그가 4학년이 되던 해에 허약한 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하면서 몸이 조금씩 좋아져 어느 덧 정상적인 아이가 되었다. 마침 누이가 교회에 다녀 같이 따라가 교회생활에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타 종교를 갖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문중의 반대로 그는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것과 여러 교회에서 문학의 밤을 다니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는데 나갈 수 없게 되어 무료하게 보내다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는 교회대신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옆 동네 친구들과 자장면 내기 축구시합을 하며 건강증진에 동참했다. 그 외에도 백제탑에 가서 그림그리기 등 소양을 쌓으며 고등학교에 진학,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됐다.
그가 고등학교1학년 때 동생이 물가에서 빠져 익사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장마가 지나 냇가로 놀러갔던 동생이 둑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고가 생긴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갈등과 회의를 갖게 되었고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동생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동생에게 전도를 하다 못했었다. 사고가 나자 그는 동생을 강제적으로라도 전도를 하지 못한 죄책감에 한 동안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모친은 병석에 눕게 되었고 집안 전체가 초상집이었다. 그는 모친에게 모든 것을 잊고 교회에 나가시자고 전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친이 극구 반대하시다 그의 정성에 감동받아 교회에 나가게 되셨다. 그는 용기를 얻어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 초입에 서서 전도를 시작했다. 약 300호가 거주하는 마을 청소년 중 80%를 전도하여 교회 식구들을 경악케 했다.
 
모두가 행복한 길로 들어서다.
일반 성인이나 목회자들도 불가능한 전도를 학생의 신분으로 해 냈으니 얼마나 경이적인 일인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공부와 성경공부에 매진했던 그는 집안의 성화로 단국대학교 행정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그는 사고의 자유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에서는 행정직이나 법관을 원했다. 자신의 희망과 미래에 대해서 어떠한 의견도 타진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결정해 주는 대로 진학을 했지만 시골 촌놈이 서울로 올라와 고시공부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 민주화운동이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을 때 혼자만 독서실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데모로 인해 수시로 안부 전화와 데모에 동참하지 말라는 가족들의 하소연으로 인해 결국 그는 군에 입대를 하고 말았다. 행정병으로 업무처리를 완벽하게 한 그는 부대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주말마다 부대에 있는 교회를 다닌 그는 어느 군종보다도 성실했다. 어느 날 상급자로부터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구타를 당하는 모습을 본 한 군종이 그를 눈여겨보고 전역할 즈음 그를 군종으로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보직변경이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임 군종이 전역하는 날까지 굽히지 않고 그를 추천, 군종이 될 수 있었다. 평상시 주말에 20여명이 출석한 교회에 그의 선교 노력으로 300명까지 늘어나자 사단전체의 교회에서 난리가 났다. 도대체 어떻게 전도했기에 그리 많은 병사들이 교회에 나올 수 있는지 그는 군종 스타가 되었다. 사실 군복무 중 군종의 경험이 그를 목회자로 인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는 전역을 하고 고시를 위해서 학교 고시원에 입소를 했다. 밤을 새워가며 부모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동기생들 중 1~2등 하며 합격의 미소를 준비했다. 그러나 동기생 7명이 합격하고 그는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고시원 동기생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만큼은 합격할 줄 알았다며 위로를 해 주었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했다. 낙방을 하고 괴로움을 삭히고 있을 즈음 군대시절 알게된 군목이 그를 찾아왔다. 그 군목은 그를 위해 3년간 기도했으며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각종 서류를 다 구비해 왔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나 완벽했다. 그는 선임 군목의 설득으로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안양시에 있는 독서실에서 6개월간 성경공부에 몰두했다. 고시를 준비한 그에게는 영어와 일반 상식 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였다.
대학원에 합격을 한 후 고향을 찾은 그는 뜻밖의 문전박대를 당했다. 부모님과 형은 교회에 나가는 것 자체는 허락하지만 목사가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일체의 생활비와 학비를 도와주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으로 헤어진 그는 차 속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부모형제와 담을 쌓는 길인지 마음속에서 갈등이 증폭되었다.
다행히 미국에 있는 한인장학회와 성적장학금으로 학비를 마련하고 아침식권을 모아 책을 사는 등 어려운 가운데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사귀였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오직 성경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영락교회에 전임전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선교부를 담당하여 군부대 교회, 지방 교회건립 등 막중한 업무를 성실하게 처리하여 행정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다시 그는 서울 시흥교회의 부목사로 임명, 심방과 교구 담당, 대학부 제2청년부를 맡아 전도에 매진했다. 그가 맡은 심방은 720세대로 초임목사로서는 부담이 되었다. 2월부터 시작한 신방은 7월이 돼서야 마무리 될 정도로 막대했다. 그리고 그는 제1청년부 5명을 80명까지 확대하여 젊은 성도확대에 큰 사역을 했다.
 
사회구현에 앞장 서다.
서울영락교회와 시흥교회에서 전도사와 부목사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던 그는 1997년 안산시에서 개척을 시작했다. 시화신도시가 생겨서 그곳이 선정, 개척 3년만에 성전을 마련하고 담임목사로 임무를 시작했다. 교회 성전을 준비하고 공사기간 중에 모든 교회 가족들은 내일처럼 현장을 방문하며 안전공사를 위해 주야로 기도를 올려주었다. 그 당시 하나님과 성도들의 은사를 평생 잊지 못한다는 그는 성도들을 섬김에 있어 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개척한 후 그는 매주 금요일 공원 일대에서 100명내지 150명 분에 대한 무료급식을 실시했으며 날씨가 좋지 않으면 교회에서 급식을 하는 등 시민중심의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 외에도 도시락과 반찬나누기, 해외교회건축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3개 겨회를 개척 했고, 온두라스에서는 3개의 교회를 건축했으며 우간다에는 새끼 밴 암소 10마리 후원, 마안마에 사랑의 집짓기 10채를 건립하여 해외선교활동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단독 선교사를 파송하여 신학교 사역과 고아원 사역을 돕고 있다.
그는 사회를 위해서 사단법인 안산미래 이사, 나눔과 기쁨재단 고문, 기아대책 이사, 안산YMCA이사, 서울관악노회 부노회장 등을 맡아 건전한 시민육성과 행복한 공동체만들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의 대외적인 왕성한 활동이 널리 알려지자 2018년 안산시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맡게 되었고 안산시 100개 교회 청소년 100명에게 장학금 50만원씩 전달될 수 있도록 기여했다.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한경직 목사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평생 고아와 노인, 힘없는 약자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했고 선종하셨을 때 6평 남짓한 조그만 거처였다는 검소와 겸허의 산증인이라며 그의 발자취를 본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역동적인 생활을 주문했다. 거짓이 없는 신선함을 바탕으로 창의적일 때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이후에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역동적인 삶을 강조해 주었다.
부모와 형제가 원했던 미래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 길로 가지 못하고 하나님 섬김으로 돌아 온 권병학 목사. 그는 미국 메코믹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성경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청년기에 동생을 잃고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 옳고 곧은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영적으로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평생 간직하며 오늘도 신의 인식으로 행복한 사회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약력
충남 부여군 출생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미국 메코믹 신학대학 박사과정 졸업
사단법인 안산미래 이사
나눔과 기쁨재단 고문
기아대책 이사
안산YMCA이사
서울관악노회 부노회장
안산기독교 총연합회 회장
하늘빛내리는교회 담임목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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