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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지만 보이지 않게 선행을 펼치는 동행의 인사들이 많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건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풍족히 가지고 있을때는 그 개별적인 가치를 충분히 음미할 수 없다. 여기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를 비추고 나눔을 통해 풍요롭게 채워가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주식회사 드림관광의 김진관 이사이다. 김진관 이사가 안양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약 20년. 전라도 구례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와 안양권에 터를 잡은 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사연속에 지금까지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김진관 이사는 지금도 고향사람을 만나면 누구랄것도 없이 가까운 식당으로 향해 고향이야기로 밤을 꼬박 셀 정도다. 그렇게 잔정이 많은 김진관 이사는 유달리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감정이입이 빠르고 짙다. 그는 국민이 교육과 생계에 아무 걱정 없이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사회복지분야에 전략적인 투자를 해야한다고 보는 사람 중 하나다. 때문에 자신들의 영욕에 눈멀어 민생을 뒷전에 두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해 그는 분개한다. 필자가 2000년부터 알게 된 이후 김진관 이사에게 몇 번 후원금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김 이사는 웃으며 "선생님은 남을 위해 사시오!"라고 응수해 준 기억이 난다. "아따, 선생님은 나중에 좋은데 갈 것이오!"라는 걸쭉한 전라도 말투는 필자가 김진관 이사를 생각할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이 바빠 그동안 기별없이 지내가다 거의 1년 만에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의 선행을 기사화해보자는 필자의 제안에 그는 "내 나이 60세가 넘으면 그때 생각해봅시다"라며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나 필자의 거듭된 요청해 그는 마지못해 승낙했다. 김진관 이사에게 생활하면서 가슴 아픈 사연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입을 열었다.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축구를 좋아하는 한 학생과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그 학생은 형편이 좋지 않아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행실이 모범적이어서 김 이사가 장학생으로 선발했다. 이후 김진관 이사는 그 학생이 졸업 때까지 후원을 해주겠노라 굳게 약속했다. 그런데 무슨일인지 그 학생이 중간에 포기하겠다고 알려와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한편 김진관 이사의 사업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산관리 담당자가 자신에서 부인에게로 넘어갔다. 김 이사 이상으로 현명하고 자상한 그의 부인이 재산관리을 시작한 후 김 이사의 씀씀이는 더욱 알뜰해지고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이웃에게 후원을 하고 싶으면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활동비를 받는다. 그동안 여러가지 사업으로(특히 2004년도 군포시 당정동 소재 휴대폰 외자사업) 부를 축적한 김진관 이사는 드림관광회사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사실 그는 사업수단이 뛰어난 편도 아니고 잔수를 쓸 줄도 모른다. 오직 성실과 끈기로 사업을 전개하는 김진관 이사는 모든 재산은 결국 사회의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사 직함을 버리고 손수 영업을 나서기도 한다. 자신의 직책보다 회사와 고객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그는 전화기 3대를 가지고 다닌다. 투철한 책임감으로 사회에 참여하기에 그가 있는 그늘에는 항상 희망이 있고 밝다.
논설위원 송용순 sys559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