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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헤럴드 |
이학박사·시인 임종호 지금까지 보지 못한 정치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국정감사나 각종 청문회를 봐도 올바른 정치가 아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원의 위상도 그렇고 사용하는 언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타협의 문화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목표를 정하면 그냥 밀고 들어간다. 법안도 여야의 합의가 아니라 일방적이다. 추후에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질 의원도 없다. 국민의 걱정을 국회가 만들어버려 이제는 힘의 논리에 삶을 의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문화가 왜 생겼는지는 우선 유권자인 우리의 책임이 크다. 자질 없는 정치인의 양성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버렸다. 진영논리에 빠져 그들의 잔치에 우리는 그냥 박수 보내고 웃어주었다. 잘못도 두둔하고 격려하며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승리하라고 지지해 주었다. 정당에서도 능력보다 오직 충성도에 따라 공천을 주다 보니 적과 잘 싸우는 싸움꾼을 양성했다. 과거의 허물도 필요 없었고 미래의 비전은 아예 염두도 없었다. 단지 싸워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논리에 지금도 휩싸여 있다. 그러다보니 당내에서도 서로 경쟁적으로 싸움장에 도전을 내고 있다. 엉터리 논리도 잘 통하는 것은 무조건 지지해 주는 지지층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이에 한국 정치는 후진성을 갖게 되었고 타협의 정치는 사라지고 있다. 독재 시절의 정치보다 더 타협이 없는 지경까지 도래했다. 독재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라도 여야가 타협하려는 노력은 했다. 작금의 정치권에서는 정치인은 없고 정치 동물만 존재하는 듯하다. 부끄러움은 아예 없다. 자신이 한 말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직 정치 노름에 빠져 자신들이 정치영역이 영구적이라는 사고에 사로 잡힌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또한 공천도 영원히 자신이 받을 것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지역구가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간주하여 기고만장하는 듯하다. 여기에 같은 당에서도 자신을 공격하면 바로 정치의 적이 돼 버린다. 한 예로 한 지역구에서 경선하거나 당 대표를 선출할 때 보면 극명하게 증거들이 넘치고 넘친다. 정치도 금도가 있다.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정치 철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치 동물화되어 있어서 동물적인 행위만을 추구하고 있다. 쉽게 바꿔 말하면 정치 동물은 자기주장만 옳고 남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일반화시킨다. 자신의 진영만이 인정되는 정치문화를 조성한다. 자신을 공격하면 적도 아군도 없다. 대통령이 강할 때 이름을 팔면서 지지율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떠난다. 이러한 현실이 한국 정치의 모습이다. 더 극명한 것은 동물은 싸움에서 타협이 없다. 싸우다 죽거나 도망가는 것 이외는 없어 동물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다. 호랑이나 사자 앞에서 사지를 떠는 작은 초식동물을 상상해 봐라. 정치인들이 호랑이와 사자이고 작은 초식동물이 일반 국민이라고 대입시켜 보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지지해야 하는지 쉽게 판단된다. 역으로 국민이 호랑이이요 사자인 지역도 있다. 지역 주민을 진정으로 섬기는 정치인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주류에서의 이러한 모습이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는 오류가 발생하기에 각 정당에서는 동물적 정치인들의 배척이 우선이다. 식물 정치보다는 동물 정치가 그래도 살아 있어 좋지만 결과는 후진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생산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여야의 타협 문화가 복구되어야 한다. 철면피 정치인의 퇴출은 야야 모두의 책무이다. 국민이 희망을 갖도록 타협의 정치를 구현해 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