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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헤럴드 |
이학박사·시인 임종호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인의예지신 정신을 갖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실수해도 사람이라면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한다. 우리 선조들은 기본에 맞춘 삶을 추구했다. 그 기본이 인의예지신이다. 인간을 존경하는 경천사상도 유교에서 기본 사상으로 하는 인도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과 은사도 모두 인의예지신에 다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사상을 무장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 정치를 하든 공무원을 하든 회사원을 하든 간에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은 공히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영역의 확보이다.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는 사회 구축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라는 목표이다. 하물며 인지력이 있는 동물들도 인간과 다름없는 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다. 벌과 개미를 보더라도 미물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매일 규칙적이고 필사적이다. 그들의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 목숨도 불사한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는 그러하지 않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세상이 되었다. 부모·형제도 능력이 되어야 서로 인정하는 세상이다. 부모가 능력이 없으면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한다. 이러한 사회가 된 것은 도덕 교육의 붕괴도 있지만 가정 교육 자체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오직 부모들이 목표를 향해 ‘공부 공부’, ‘출세 출세’만을 외쳐 된 결과가 오늘의 사회 모습이다. 불행의 씨앗을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버렸다. 망가진 사회를 탓하고만 있다. 개선이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망쳐 놓은 사회와 가정을 원상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높은 곳만 추구하는 세상은 이미 지나갔다.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회로 전이되었다. 좋은 집, 좋은 차 타고 다녀도 자기의 삶에 명분이 없으면 허상이다. 아무리 사회 저명인사와 교류해도 허무하다. 나 자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흔히 사회생활 하면서 ‘나는 인의예지신이 얼마나 겸비되어 있는지’ 가끔은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 참 좋아, 법 없이 살 사람이야 소리를 들으면 최소한 인자하다는 소리 정도는 듣는다. 의리가 있고 신의가 있는 사람이면 의에 해당할 것이다. 예의범절이 있고 예가 바른 사람이면 예에 해당한다.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야 하면 지요,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신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의예지신은 개인의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 인의예지신을 조금씩 갖추고 있다고 해서 훌륭한 인물은 아니다. 개인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최소한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욕은 먹지 않는다고 말이다. 사소한 건으로도 비판과 비난을 받는 현실에서 욕이라도 먹지 않으면 성공한 개인 생활이다. 부모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인데 자식이 말썽인 가정, 부모는 손가락질받아도 자식이 인정받는 가정, 부모·자식 모두 주변에서 피하는 가정, 반대로 부모와 자식 모두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가정 등 여러 부류의 가정이 존재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참 모호하다. 이러한 현상은 유전적 인자보다 타고난 천성과 인성의 문제이다. 부모가 부족해도 태어난 자체에 감사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며, 부모의 부족을 원망하는 자식이 있다. 같은 자식인데도 하늘과 땅 차이이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가정에서 인의예지신 교육이다. 요즘 현실을 봐라.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대화 자체도 거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가정 교육을 하려 해도 수용하려는 자세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환원하면 우리 부모들이 부모의 자격과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 늦기 전에 필자도 정신 차리고 있다. 그동안 무엇에 쫓긴 삶에서 가족의 중요성을 재차 고민하고 있다. 성인이 다 된 자식이 우리의 둥지를 떠나고 있다. 내 자식만큼은 내가 해주지 못한 가정 교육을 잘 실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