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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헤럴드 |
시인 김종두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밤낮없이 애쓰며, 그토록 바쁘게 살아가는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많은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가? 돌이켜보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성공인 줄 안다. 남보다 앞서야 했고,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인생이라는 길 위에 우리가 붙잡고 싶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 우리에게 조용히 알려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움켜쥔다고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산과 들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빛깔도 사라지고, 알곡으로 가득 찼던 황금 들판도 때가 되면 비어진다. 푸르던 하늘마저 잿빛으로 물들어 간다. 여름의 푸르름과 가을의 풍요로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비움이라는 자연의 질서가 남는다.
화려함이 사라지고 풍요로움이 비워지는 풍경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때는 넘치는 의욕으로 세상을 품고, 젊음과 열정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땀 흘려 일하고, 재산을 모으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쌓으며 그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소중한 결실이라 여긴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아무리 화려한 삶도 영원할 수 없고, 아무리 풍요로운 소유물도 끝까지 지켜낼 수는 없다.
비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이며, 내려놓음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 욕심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한때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애썼고, 한때는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도 했으며, 가족과 이웃에게 인정받고 싶어 자존심을 앞세우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나름의 삶이 있었다.
물론 열심히 산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땀 흘려 노력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삶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문제는 열심히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아직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지금의 행복을 놓치는 데 있다.
높은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그 자리가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재산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모두 가지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이 그리 억울하고 아쉬운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은 단순히 재산을 뜻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쌓아 올린 욕심과 미움, 지나친 자존심과 집착까지도 결국에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삶의 가르침일 것이다.
재산은 물려줄 수 있지만 삶의 지혜는 나누어야 전해진다. 지위는 내려놓아야 하지만,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더욱 깊어져야 한다.
비워야 할 것은 마음속의 욕심이지, 삶을 향한 의욕이 아니다. 또한 내려놓아야 할 것은 지나친 집착이지, 세상을 향한 책임감까지 내려놓으란 얘기는 아니다.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나무의 생명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는 다가올 봄을 준비한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젊음이 지나갔다고 삶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았다고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나온 세월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 주며, 후배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인생의 후반기는 또 다른 의미의 결실을 맺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산야의 화려함이 사라지고 들판이 비워지는 계절, 까치집 하나 남은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자연은 오늘도 말없이 비움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때가 되면 잎을 떨구고, 결실 후 들판을 비우며,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새로운 봄을 준비한다.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비움의 미학이자,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비움
-대현 김종두
산야의 화려함 사라지고
알곡 우렁차던 전답 비워지네.
푸르던 하늘 잿빛 되고
까치집만 덩그러니 남았구나!
모든 것을 비워내는 것이
자연의 섭리런가?
뭐가 그리 억울한가?
어차피 그대 것이 아닌 것을!
뭐가 아쉬워 뒤돌아보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