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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헤럴드 |
시인 김종두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역사적 사실과 창작의 자유를 놓고 정치권과 여러 분야에서 찬반을 넘어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간에 극심한 대립도 영화제작자와 출연한 배우에 대한 개인적 공격도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 자제하기를 바란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예술은 다양한 해석을 허용해야 하고, 표현의 자유 역시 민주사회에서 소중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필자도 창작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다. 창작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역사를 왜곡하고, 그 과정에서 남아 있는 유가족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까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유가족이 그렇게 느낀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나 소설 등은 상상력의 산물이고 상업적인 부분이 가미되어 작가와 감독의 창작적 해석이 더해질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창작에는 최소한의 역사적 양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부모·형제의 희생이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픈 상처다.
오죽하면 친필 서신까지 내보이겠는가.
창작자에게는 한 장면의 연출과 한 줄의 대사가 창작의 일부라고 주장일 수 있지만, 그 사건을 직접 겪은 유가족에게는 평생 가슴에 묻어온 가족의 명예와 기억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픽션이니까 괜찮다’라는 말만으로 덮을 수는 없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모든 내용을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와 소설에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극적 구성을 위해 일정 부분의 각색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허구가 역사의 본질을 뒤집거나 특정 인물에 대한 인식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나아가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에 이를 때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실제 피해자와 유가족이 존재하는 경우라면 창작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으로 허용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창작자가 표현할 자유가 있다면, 그 표현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책임도 함께 존재한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것을 검열의 문제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창작물을 국가가 마음대로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창작자가 스스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관계된 사람들의 아픔을 살피며,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관객이 오해하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라면 사실과 창작을 명확히 구분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극적 상상인지 관객이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의 억울함과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영화 한 편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역사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어떻겠는가.
관객에게는 두 시간짜리 영화일지 모르지만, 유가족에게는 평생의 아픔일 수 있다. 우리가 문화와 예술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작품의 재미와 흥행성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 작품이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창작의 자유는 책임 있는 태도와 함께할 때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소재로 삼을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함부로 뒤집을 자유까지 당연하게 인정되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아직 유가족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건이라면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창작자는 상상할 자유가 있지만, 역사는 창작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희생, 그리고 유가족의 기억까지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영화와 소설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과거를 돌아보고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란다. 논란이 있는 작품을 무조건 비난하거나 반대로 ‘예술이니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 그리고 유가족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일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존중하는 일이다.
그것이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