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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헤럴드 |
경기헤럴드 고문 유중희
군포시 늘푸른노인복지관에서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노인복지관이 있습니다. 인구 25만 명 정도의 우리 도시에는 두 곳의 복지관이 있습니다. 60대 중반이었을 때, 처음에는 아직 노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노인시설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연로한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곳에 봉사하고자 찾아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복지관의 편의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하며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퇴직 후 10여 년간의 실업자 생활 이후 다시 3년 동안 직장에 다니다 다시 실업자가 되면서, 노인복지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노인 15명 정도가 참여하는 그룹 프로그램에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무료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었고 간식도 제공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활동하며 글을 쓰고, 자신이 잘하는 것 3가지를 적어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또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발표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내가 잘하는 것 3가지를 적어보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수학을 잘했지만, 지금은 그때 이야기를 내세우기가 민망합니다. 그래서 ①걷기 ②노래 부르기 ③끈기 이렇게 적었습니다.
걷기는 중학교 시절 왕복 20km를 걸어 다녀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습니다. 매일 4시간 이상씩 걸어야 했고, 중간에 백마강 나룻배를 타야 했기에 하루 통학 시간은 5시간이 넘었습니다. 등교할 때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하교할 때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닿으려고 쉬지 않고 걸어야 했습니다. 겨울방학 전후로 해가 짧을 때는 부모님이 마중 나올 때까지 아랫동네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걷는 속도가 빨라졌고, 걷는 것에 지치지 않는 다리 근육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로 노래를 선택했습니다. 원래 음치였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음치로 여겨지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노래 연습을 시작했고, 작은 규모의 경연대회에도 참가했습니다. 노인복지관에서 주최한 경연대회에서 첫해에는 예선에서 떨어졌지만, 다음 해에는 예선을 통과했고 3년 차에는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노래방이나 야유회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세 번째로 끈기를 선택했습니다. 눈치가 빠르거나 명석하지 못한 저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끈기를 발휘해야 했습니다. 이는 토끼형보다는 거북이형에 가까운 성격이지만, 우화에서 거북이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며 위로받곤 합니다.
다음으로,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선정하여 그 이유를 적어 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성공한 것도 아니고 출세한 사람도 아니지만,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자서전 출판기념회와 고희 잔치 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아내를 선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을 잘 보필해 주어서, 자식을 잘 키워 주어서, 모든 것을 양보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나를 남편으로 잘 받들어 주어서 등입니다.
언제나 아내는 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내를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