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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헤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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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감수하거나 외면받는 일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어온 사람이 있다. 바로 김종두 시인이다. 그는 작은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과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봉사와 문학으로 완성된 삶을 추구하고 있다.
험난한 세상을 극복하다.김종두 시인의 고향은 대둔산도립공원과 대한민국술테마공원으로 유명한 전북 완주군이다. 아름다운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엄격한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올바른 인성과 책임감을 키웠다. 어린 시절 사촌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며 배려와 협동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특히 친자식과 사촌을 차별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까지 돌보던 어머니의 삶은 그의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형제애는 서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해 어려운 형제를 도울 수 있을 때 더욱 빛난다."고 말할 만큼 생각이 깊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애늙은이 같다."며 칭찬하곤 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삶은 큰 시련을 맞았다. 집안 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고, 둘째 형은 학업을 포기한 채 생계를 위해 공장에 다니다 군에 입대했다. 깊은 절망 속에 빠진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학력고사를 두 달 앞두고 그는 전주의 작은 독서실에 들어가 마지막 승부를 시작했다. 생활비가 없어 하루 한 끼로 버티고, 친구들이 건네준 빵과 막걸리로 허기를 달래며 공부를 이어갔다. 수차례 쓰러질 만큼 힘든 환경에서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원광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하며 간절함과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합격증을 찢어 저수지에 띄웠다. 그 순간 큰형이 달려와 말없이 동생을 끌어안았다. 며칠 뒤 큰형은 가족의 생계와도 같았던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다. 김종두 시인은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한다. 형이 판 것은 소 한 마리가 아니라 동생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삶이라면 그 은혜를 세상에 갚으며 살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다.
대학 생활은 낭만보다 절박함의 연속이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학금은 반드시 필요했고,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학업에 매진했다.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도 받고, 둘째형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더욱 굳혔다. 이러한 마음은 훗날 지역사회 봉사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는 학업뿐 아니라 생활 태도에서도 모범적이었다.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주변의 신뢰를 얻었고,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대학 시절 또 하나의 목표였던 육군 ROTC에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가족의 부담도 덜고자 했던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으며, 혹독한 군사훈련과 학업을 병행한 끝에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는 자신의 삶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치겠다는 또 하나의 약속이었다.
가난했던 시골 소년은 이제 조국을 지키는 장교가 되어 당당히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소대장과 참모, 지휘관 등 다양한 보직을 수행하며 맡은 임무마다 최선을 다했다. 뛰어난 업무수행 능력과 성실한 자세는 상관과 부하들의 신뢰를 얻었고, 각종 교육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교육사령관 상장을 비롯한 국방부장관 표창 등 많은 포상을 받았다.
군 생활은 그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과 책임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만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잦은 부대 이동과 보직 변경은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했다. 수없이 갈등한 끝에 그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군복을 벗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구보다 군인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가족에게 보다 안정된 삶을 마련해 주기 위해 그는 11년간의 군 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갔다. 그가 선택한 새로운 무대는 한국복합물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그는 변함없이 정도(正道)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은 낯설었지만, 그에게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는 군에서 익힌 원칙과 책임감, 조직관리 능력을 기업 경영에 접목하며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에 뿌리 내리다.기획관리본부 관리팀에서 근무한 그는 맡은 업무를 단순히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조직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개선책을 제안하고 실천했다. 회사 로고를 경영진과 함께 기획하고 상표등록을 추진하여 기업의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특히 양산복합물류단지의 기반시설 구축과 운영체계 정비에도 적극 참여하며 회사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그의 성실함과 기획력은 경영진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그는 차장으로 승진하는 등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한국복합물류㈜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안정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김종두 시인은 또 한 번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많은 사람이 안정된 삶을 선택할 때, 그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과감히 도전했다.
그가 선택한 무대는 ING생명보험㈜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보험영업을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직업으로 생각했다. 왜 그 어려운 일을 하려 하느냐며 주변의 만류도 많았지만 김종두 시인의 생각은 달랐다.
입사 후 그는 누구보다 먼저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고객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단기적인 실적보다 고객과의 신뢰를 우선했고, 한 번 맺은 인연을 평생 이어가는 것을 자신의 영업 철학으로 삼았다.
2006년에는 Summer Contest를 달성하고, 2W 70주 연속 목표를 달성하는 등 뛰어난 실적을 거두며 회사 안팎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입사 2년 만인 2008년에는 글로벌지점 부지점장으로 승진하며 지도력과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보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 가운데 하나인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회원으로 선정되었고, 우수 매니저로도 이름을 올리며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았다.
김종두 시인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가족과 이웃의 도움으로 오늘의 자신이 있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받은 사랑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을 삶의 소명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군포희망포럼 사무국장을 맡아 군포시노인복지관 등 여러 복지시설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급식 봉사와 도시락 배달을 꾸준히 실천했다. 음식을 나르는 일은 물론 배식과 설거지까지 마다하지 않았고, 봉사가 끝날 때까지 한결같은 미소로 어르신들을 대했다. 그 따뜻한 마음은 많은 어르신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그의 따뜻한 시선은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겨울철에 먹이가 없어서 굶주리는 수리산의 야생동물 소식을 접한 그는 직접 콩과 벼 등을 마련해 먹이 주기 운동을 펼쳤다.
또한 지역 언론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기자들을 대상으로 언론의 공공성과 신문의 가치에 대해 강의하며 자기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강의를 마친 뒤에는 받은 강의료를 다시 지역신문사에 기탁하며 언론이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응원했다. 재무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도 봉사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사단법인 경기원로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재무설계와 노후 준비에 관한 강연을 열어 안정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왔고, 군포시민간기업유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기업 유치에도 힘을 보탰다.
배움을 향한 그의 열정 또한 멈추지 않았다. 2022년에는 냉장고 문에 손가락이 끼어 골절상을 입는 어려움 속에서도 소방안전관리자 2급 자격증에 도전해 취득했다.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도전은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삶의 신념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그리고 평소 독서와 사색을 즐기던 그는 바쁜 직장생활과 봉사활동 속에서도 틈틈이 시를 써 왔다. 그에게 시는 문학적 기교를 뽐내기 위한 작품이 아니었다. 삶을 견디게 해 준 기억을 기록하고, 받은 사랑을 언어로 되돌려 주는 또 하나의 봉사였다.
봉사와 문학으로 완성된 삶을 추구하다,오랜 시간 묵묵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지역사회에서 정신적 스승인 임종호 박사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2024년 종합문예지 『문학공간』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시인으로 정식 등단하는 영예를 안았다. 늦은 나이의 등단이었지만, 그의 작품에는 젊은 날의 화려한 감성이 아닌 인생의 사계절을 모두 지나온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는 깊은 울림이 배어 있었다.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부모를 향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 그의 시는 많은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등단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2025년 8월 첫 시집 『사계의 향연』을 펴냈다. 출판기념회는 단순한 출간 행사가 아니라, 어려운 시절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가족과 ROTC 선후배, 지역사회의 선배 문인들과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그는 말한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가장 따뜻한 언어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시를 쓰고 봉사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 편의 시를 쓰고, 또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희망과 위로가 되는 봉사를 실천한다.
김종두 시인의 삶은 화려한 성공을 향한 여정이 아니었다. 받은 은혜를 세상에 갚아 가는 긴 여정이었다.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사회에서는 성실한 직업인으로 책임을 다했으며, 지역사회에서는 봉사로 사랑을 실천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는 문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말보다 행동으로 삶을 증명하며, 봉사로 사랑을 나누고 문학으로 희망을 전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것이 김종두 시인이라는 한 사람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일 것이다.
그가 자녀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가장 큰 유산도 재산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부모의 삶은 말보다 행동으로 자녀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김종두 시인의 삶이 그러했다. 아버지의 성실함과 책임감, 그리고 국가를 향한 충성심은 자연스럽게 두 아들에게도 이어졌다.
그 결과 그의 가정은 흔치 않은 '삼부자 장교 집안'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루게 되었다. 장남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장교로 국가 안보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차남 역시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뒤 ROTC 장교로 임관하여 군 복무를 성실히 마쳤다. 중위로 전역한 후에는 현재 포스코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모두 장교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이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한 가정 안에서 국가를 향한 책임감과 헌신의 정신이 세대를 넘어 이어졌음을 보여 주는 소중한 증표이기 때문이다.
김종두 시인이 평생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단순한 역사 속 영웅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와 원칙을 지키며 국가와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참된 지도자로 기억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의 삶을 반복해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라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개인의 안위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했던 충무공의 충절과 책임감, 그리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신념은 그의 인생관과 국가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도 자주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이야기한다. "환경이 어렵다고 꿈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운 순간에도 자신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온 진심 어린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김종두 시인은 지금도 정의와 의리, 성실과 책임을 삶의 지표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에게 이순신 장군은 역사 속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평생 자신이 따라가고자 했던 삶의 나침반이며,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잡아 주는 정신적 스승이다.
김종두 시인은 정직과 책임, 배려와 봉사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의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삶 자체였고, 두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그가 걸어온 정도(正道)의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약력전북 완주 출생
원광대학교 법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석사학위 취득
육군ROTC 예비역 소령
한국복합물류(주) 차장 역임
ING생명(주)글로벌지점 부지점장 역임
(사)경기원로회 교육국장 역임
군포희망포럼 사무국장 역임
군포시민간기업유치위원회 위원 역임
시인 등단
시집 ’사계의 향연‘ 출간
대통령 부대표창
국방부장관 표창
교육사령관 교육우수상
군단장급 표창장
군단장급 상장
사단장급 표장장
연대장급 표창장
적십자기장
6.25 40주년 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