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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헤럴드 |
시인·논설위원 박혜리 음력으로 설이 지났다. 완벽하게 을사년의 해가 밝았다. ‘을사년’이라고 하면 번뜩 떠오르는 좋지 않은 역사가 있다. 을사늑약으로 길고 길었던 암흑과 고통의 시절이 시작되었다. 꼭 과거를 들추지 않더라도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의 한중간을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이번 새해에는 희망과 축복보다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을사년은 푸른 뱀의 해다. 기독교에서 뱀은 하와를 속여 죄를 짓게 한 간사한 사탄이다. 뱀이 발 없이 배로 기어다니는 이유도 하나님께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영향이 짙은 서양에서 뱀은 간사함과 배신의 상징이다. 두 쪽으로 갈라져 길게 날름거리는 혀와 날카로운 이빨 끝으로 흐르는 독이 묻은 침과 먹잇감의 몸을 조르는 길고 유연한 몸은 보는 순간 소름 끼치고 두렵게 만든다. 어릴 때 본 만화 중에 꾸러기 수비대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십이지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에게 십이지, 열두 띠 동물을 가르쳐 준 고마운 만화다. 십이지로 구성된 꾸러기 수비대에 ‘요롱이’라는 뱀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조금 크고 나니 궁금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뱀이 어떻게 십이지신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십이지 동물이 결정된 계기는 달리기 경주였다. 설화에 따르면 신이 십이지 순서를 정할 목적으로 달리기 경주를 시켰다. 영악한 쥐가 성실한 소뿔에 매달려 오다가 결승전 앞에서 뛰어들어 1등을 했고 토끼는 낮잠을 자다가 호랑이의 조언에 깨어나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뱀이 6등인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용 구름에 감겨 와서 용 다음으로 들어왔다는 설과 작은 몸을 이용하여 말 다리 사이로 민첩하게 가로질러 말보다 먼저 들어왔다는 설이다. 달리기 경주 설화의 이면을 살펴보면 애초에 십이지로 결정된 열두 마리의 동물이 있었다. 단지 동물들의 순서를 결정하기 위해 달리기 경주를 진행한 것이다. 지구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이 있다. 십이지로 선택된 동물의 기준을 떠올려본다면 친숙함과 긍정적인 상징성일 것이다. 다시 한번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뱀이 어떻게 ‘신’이라 불릴 수 있는 십이지에 선택될 수 있었을까. 과거 동양에서 뱀은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제주도를 포함한 섬 지역에서 뱀을 집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겼고, 뱀이 나오는 꿈을 길몽으로 보았다. 뱀은 두려우면서도 경이롭고 정의로우며 친숙하면서도 신성한 존재였다. 지혜와 결단력을 상징하여 뱀띠 해에 태어난 사람이 총명하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어릴 때 본 애니메이션 꾸러기 수비대에서도 뱀인 ‘요롱이’는 학사모를 떠올리는 모자를 쓰고 망토를 두르고 있다. 외모에서도 알 수 있듯 다른 십이지 동물 캐릭터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은 캐릭터였다. 십이지와 뱀과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내용이 있다. 십이지에 해당하는 동물이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이다. 십이지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공통이 되는 동물은 뱀과 말, 닭, 개가 전부다. 우리가 쥐로 알고 있는 ‘자(子)’는 볼가강 연안의 유목국가인 불가르에서는 낙타다. 소로 알고 있는 ‘축(丑)’은 동남아에서는 물소, 네팔에서는 암소다. 호랑이로 알고 있는 ‘인(寅)’은 구자라트 중심의 서인도에서 사자다. 토끼로 알고 있는 ‘묘(卯)’는 베트남에서 고양이다. 용으로 알고 있는 ‘진(辰)’은 이란에서 악어나 고래다. 양으로 정착되어 있는 ‘미(未)’는 양과 염소를 혼용하기도 하였다. 원숭이로 알고 있는 ‘신(申)’은 베트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거북이고 불가르에서는 고슴도치다. 돼지로 알고 있는 ‘해(亥)’는 일본에서 멧돼지다. 나라별로 친숙하고 상서롭게 여기는 동물이 다르니 십이지에 해당하는 동물이 다르다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 않다. 오히려 그 모든 나라에서도 뱀이 십이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예전에는 두려운 존재를 상서롭게 생각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곧잘 여겼으며 뱀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뱀이 십이지에 포함될 수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한 어린 시절의 내가 부끄럽게 여겨진다. 지혜와 결단력을 상징하는 뱀의 해가 밝았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지혜롭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