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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로서 미래지향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윤해동 박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3년 06월 03일
ⓒ 경기헤럴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된다는 낭중지추를 좌우명으로 오직 공명한 사회 구현을 위해 소명 의식을 발휘하는 윤해동 박사. 그는 자발적인 사고로 미래를 개척하며 선견지명의 학자로서 사회의 규범이 되고 있다.

자존감 강한 아이로 성장하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비와 윤선도의 생가인 녹우당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해남군이 그의 고향이다. 2남 5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농부인 부친의 슬하에서 스스로 개척하는 정신을 함양했다.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부친은 일밖에 모르는 시골 농부 그 자체였다. 공부에 한이 되셨던 부친은 ‘아들만큼은 나의 눈이 되도록 하겠다.’라며 자식 공부에 전념하셨다.
그가 성장한 고향은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정다운 곳이다. 그의 부친은 가난으로 셋방을 살며 자식에게까지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품삯은 물론이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으신 분이었다. 모친은 성격이 부친보다 여유롭고 인자하셨으며 6남매의 애환을 평생 같이 해 주신 따뜻한 분이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그는 명랑해도 너무 명랑해서 교실 칠판의 가장 윗부분에 항상 떠든 사람 명단으로 포함되는 철부지였다. 자존심이 워낙 강해서 지시 자체를 거부, 그로 인해 손위 형들과는 놀지 않고 아래 또래들과 놀며 대장 노릇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래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솔방울 주워 오기, 모내기 못줄 넘기기, 소꼴 베기 등은 그의 몫이었다. 당시 부친은 지금처럼 살다가는 식구가 다 굶어 죽겠다는 생각으로 지인의 추천으로 담배 농사를 시작했다. 담배 농사는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담배 모종 심기, 잎 따기, 잎 나르기, 잎 건조하기 등 어린 나이에 하기 힘든 일들을 능숙하게 잘해 동네 어른들은 타고난 농부라고 그의 성실과 근면을 칭송해 주었다, 그 덕분에 집안의 경제가 조금씩 좋아졌고 그의 미래도 보이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대화할 때 다른 사람의 눈도 쳐다보지 못하는 내성적이고 민감한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용하지 않는 성격으로 부모님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형이 그의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다. 마침 중학교 3학년 때 형이 결혼하면서 전북 익산시(당시 이리시)에 신혼집을 차렸다. 동생의 미래를 위해 그를 익산시로 데리고 와 익산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시킨 것이다. 모범생으로 중학교를 마감하는 3학년 겨울방학이 그에게는 잠재적 철학을 심어주는 시기였다. 겨울방학이 약 2개월 정도였다. 고향 해남의 옆 동네에 서당이 있었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서당에 입교시켜 천자문과 서예를 익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한자나 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신혼생활을 하는 형 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그동안 나태한 생활에서 공부하는 환경으로 바뀌게 되었고 공부도 상위권 수준까지 올라와 호남의 명문고등학교인 익산 남성고에 입학했다. 건축설계를 하는 형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익히면서 그의 성격도 조금씩 외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때 게임에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한 달 게임비가 약 10,000원이 필요했다. 형과 형수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에 게임비까지는 염치가 없었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내놓은 묘책이 형 몰래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는 것이었다. 새벽 4시에 나가 신문을 배달하고 오면 녹초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신문을 비닐에 넣어야 하기에 시간이 배 이상 걸려 번 용돈이 17,000원이었다. 땀 흘려 번 용돈을 게임에 탕진하는 철없는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와 학자로서 존경받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하반기에 찾아온 사춘기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대학도 포기하고 무작정 고향 친구가 있는 서울로 상경했다. 2년 동안 부모님과 가족에게 한이 맺게 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손가락질 받는 인생이 될 것 같아 모든 것을 정리하고 군에 입대해 버렸다. 다행히 모친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운전을 배워두면 먹고는 살 수 있다.’라는 조언으로 운전면허를 일찍 따 놓았었다. 그 덕분에 운전병 보직을 받아 전역할 때까지 운전병으로 근무하며 시간 나는 대로 대입 시험 준비를 했다.
전역 몇 개월을 남기고 휴가를 받아 수능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한 번 보거나 읽으면 잘 기억하는 재능을 가진 그는 수능시험을 매우 잘 봤다. 전역 후 가족이 생활하는 익산시에서 대학을 다녀야 하기에 원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원광대학교 캠퍼스는 그를 가장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4년 내내 장학생으로 등록금은 면제되었지만, 용돈과 전공 서적 구입은 자신이 해결해야 했다. 여름에는 얼음 배달, 겨울에는 떡을 배달하며 시장 사람들이 사는 냄새를 맡으며 성숙해져 갔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대학 4학년 때 건축기사 1급을 취득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공부를 할수록 재미와 흥미가 증가하였다. 그동안 갖지 못했던 꿈을 처음 갖게 되었다. 학생과 어울리며 미래를 설계해 주는 교수, 그것이 그가 가진 첫 번째 희망이었다. 그는 다시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석사와 박사과정을 단 5년 만에 마친 그는 원광대학교 건축공학과의 전설이 되기도 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동안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여러 전공 서적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꿈이 실현되지 못했다. IMF의 영향으로 많은 대학에서 교수 채용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꿈을 뒤로하고 31살 나이로 한국 굴지의 건축설비 회사에 취업했다. 근무하면서 회사에 특허 취득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제공해주었다. 당시에는 한국 설비설계 매뉴얼이 부재했다. 외국 문헌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그는 한국 실정에 맞는 설비설계 표준 매뉴얼을 개발하여 업계 전체에 놀라움을 주었다. 그가 만든 매뉴얼이 현재까지 업계에서 바이블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사고를 가진 그에게 지시와 명령은 고통이었다. 갈수록 쌓여가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6년 동안 정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건축분야의 틈새시장을 늘 아쉬워했다. 그는 친환경・에너지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건설 시장에서 조금씩 확장해 나갔다. 그의 뛰어난 기획이 시장판도를 바뀌어 놓았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2~3년 후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에서는 친환경・에너지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면서 그의 사업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사업을 하면서 서초구에서 지역 활동을 병행했다. 우솔지역발전위원회를 출범하여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지역에 관심을 두고 있는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들과 만남이 잦아지고 서로 교류를 하게 됐다. 미래지향적인 그에게는 정치인들의 기치관이나 현실에 대해 진부한 면이 있었다. 일종의 시간 낭비였다. 그때부터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강남에 거주한 그의 자식들에게는 불행이었다. 공부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자 그는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은 그는 부인과 상의하여 아이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고향 친구들이 다수 거주하는 안양시 동안구 평촌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평촌은 부인과 가족이 만족한 곳이다. 교육, 문화, 주거, 교통 등 부족하지 않았다. 그는 가정의 평온이 찾아오자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경쟁자들은 그가 안양시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곤 했지만, 그는 안양시의 전문가로서 손색이 없었다. 정치 입문 2년 6개월 만에 안양시의회 의원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미래지향적인 삶을 개척하다.
그는 건축분야의 전문가로서 안양시 공동주택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안양시 공동주택 경비원 인권 증진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 안양시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등을 대표 발의했으며 안양시 전자파 안심지대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안양시 학생복지 지원 조례안, 안양시 이동노동자 쉼터 설치 및 운영 조례안 등을 공동 발의하여 행복하고 안심하고 살수 있는 도시 안양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안양시 동안갑지역구 교육연수위원회 위원장, 안양시동안갑지역구 운영위원·상무위원·지역대의원·전국대의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더불어민주당 주거복지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제20대 대통령선거 안양동안갑 지역조직본부장·선대본부 부본부장·교육연수위원장 등을 맡아 정치발전에도 적극 동참하여 더불어민주당 대표 1급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정치 이외에도 안양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안양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위원, 안양시 도시계획·건축위원회 심의위원, 용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서울시 금천구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평가위원, 경기도 안전관리자문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거나 맡아 쾌적한 공간이 되도록 일조했다.
또한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자문위원, 평촌역상가연합회 자문위원, 한가람신라아파트 리모델링추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전문적으로 자문을 하여 그가 속한 단체는 언제나 열정적이었다.
이동 및 탈부착이 용이한 무배선 전원스위치(특허 제 10-0723640)에 관한 특허를 출원한 그는 건축설계와 후학들을 위해 건축설비(1999), 실무에 적용되는 건축설비관계법규(2000), 쉽게 배우는 AUTOCAD(2000).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급배수위생설비(2000),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공기조화설비(2001), 건축기사 총정리(2008), 건축산업기사 총정리(2008), 지구환경과 미래의 에너지(2014) 등을 저술했으며 그동안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뒤돌아보기 위해 자서전 윤해동의 들꽃(2022)을 출간하기도 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그는 부안중학교와 부림초등학교 운영위원을 하면서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가 되는데 노력하였으며 군산대학, 청운대학, 유한대학, 원광보건대학, 백제예술대학, 순천청암대 등에서 외래교수와 원광대학교 건축공학과 겸임교수에 위촉되어 후학들에게 박식한 전문지식과 삶의 지혜를 전해주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머슴처럼 일하며 자식을 위해 숭고한 헌신의 모태인 부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시골에서조차 집이 없어 셋방을 살면서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이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신 부친을 언제나 마음속에 담고 있다는 그의 효심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크다.
공부를 잘하면 성공할 확률은 높다. 그렇지만 모두 행복하지는 않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청소년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해라. 재능을 살려 열심히 해라. 그리고 건강한 삶을 영유하라.’고 일러준다.
가난해도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에 대해 불만조차 없었던 효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며 많은 시민이 행복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뛰는 윤해동 박사, 어려운 신혼생활부터 지금까지 조력자로서 동반자로서 한 몸이 되어준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인터뷰 내내 전해주었다. 사업, 정치, 아내의 사랑 모든 분야에서 낭중지추를 보여주는 그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기를 바라본다.

약력
전남 해남군 출생
원광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건축설계 기사 1급 취득
건축공학 박사
에코빌 E&G 건축사사무소 대표 역임
원광대학교 건축공학과 겸임교수 역임
부안중·부림초등학교 운영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자문위원
용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서울시 금천구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안양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평가위원
경기도 안전관리자문단 자문위원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자문위원
안양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
안양시의회 의원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3년 06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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