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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과 성악의 대중화에 헌신하는 유흥창 상임지휘자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15일
ⓒ 경기헤럴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여 믿음, 사랑, 소망, 3가지를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유흥창 지휘자는 서울대학교와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부모님의 가훈을 몸에 지니며 낮은 마음으로 음악의 저변확대에 자신을 승화하고 있다.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다.
조선시대 왕이 직접 경작하던 적전이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훈육받으며 성장했다. 부친은 사범대 출신으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생활고로 인하여 퇴직하고 시계점을 운영하셨다. 그 당시 시계점은 많은 수익이 나는 사업이었지만 정직을 우선으로 하는 부친은 웬만한 것은 무료로 수리를 해 주는 등 경영에 늘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래도 어린이날마다 과자와 상품을 구매하여 가난한 동네에서 노래자랑과 더불어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셨다.
모친은 현모양처로 부친 대신 자식들의 교육을 책임지며 자식 모두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더욱이 부모님은 교회 성가대원으로 연습할 때마다 그와 동행하여 어려서부터 음악을 조기에 접하는 기회를 주셨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어린이 성가대에 들어가 노래를 뽐냈다. 아마 부모님의 성가대 연습으로 많은 영향을 받아서인지 학교에서는 노래하면 그였다. 등하교 시에는 성가대 노래를 부르며 학교생활이 행복 자체였다.
초등학교 내내 반장과 회장을 도맡아 한 그는 또래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고 리더십도 돋보였다. 그는 5학년 전방부대 위문공연과 학급 대항 리코더 경연대회에서 최연소 지휘자가 되기도 했다. 또래에 비해 신장이 좋았던 그는 5학년과 6학년 때에는 농구선수로 선발되어 학교 대표로 여러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붙임성이 좋은 그는 어머니가 그를 딸처럼 시장 갈 때마다 데리고 가는 등 사랑이 남달랐다. 그 또한 부모님이 사업으로 늦게 들어오시면 설거지와 청소를 해 놓는 효자였다. 부모님을 더 기쁘게 해드린 것은 여러 동요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하는 것이었다. 학교와 교회에서 “노래 잘하는 아들 두셨다.”라고 칭찬받는 부모님은 그가 늘 자랑스러웠다.
그가 진학한 중학교는 전국에서 유명한 사격부가 있었다. 운동을 잘하기로 소문난 그는 1학년부터 사격선수로 선발되어 졸업할 때까지 학교 대표와 서울 대표로 전국 소년체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어느 날 음악 시간에 음악 선생님이 2학년 전체에서 노래를 가장 잘했다고 그를 칭찬해 주셨다. 음악 선생님은 그에게 꼭 성악가가 되라고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주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데 그의 노래를 녹음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해 주고 싶다는 제안을 해 주셔 그는 그 자리에서 녹음을 하고 1주일 후에 그의 노래가 나왔다.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가 나왔다며 선생님과 또래들의 격려가 끊이지 않았다.
경제난에 시달렸던 부모님은 그에게 형처럼 공대 진학을 희망했다. 교직이나 음악과에 관심조차 두지 못하도록 하셨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공대 진학을 준비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우연히 시내버스에서 중학교 음악 선생님을 조우하게 됐다. 음악 선생님이 성악 공부하고 있니? 라고 물으셨다. 아직 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하니, 음악 선생님은 다시 ‘너는 성악가가 꼭 되거라’며 용기를 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는 정말 성악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목표로 레슨을 듣는 3학년 선배가 있었다. 교회 앞에서 레슨을 받으러 간다고 하여 무작정 따라갔다. 선배의 레슨을 마치고 레슨 선생님이 ‘너도 한 번 불러 봐’ 하시기에 긴장은 되었지만, 평소의 마음으로 편하게 불렀다, 레슨 선생님이 그의 노래를 듣고 나서 ‘너는 1년만 레슨 받으면 서울대 가겠어’라고 충격적인 말을 해 주었다. 그냥 노래가 좋아서 불렀는데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지 그 자신도 몰랐었다.

성악의 대중화에 앞장서다.
그는 부모님의 허락 없이 레슨을 받겠다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니 집안에서는 극구 반대였다. 형처럼 공대에 가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 너무나 컸다. 그 와중에 형이 나서서 “제가 공대 다니고 있으니 흥창이는 소질을 계발해 주면 좋겠다.”라며 부모님을 설득해 주었다. 동생이 고등학교 때 중창대회에 출전하여 여러 번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여 능력을 알고 있었던 형은 동생의 미래를 밀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부모님은 맏이의 말에 수긍하시고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시기로 했다. 그는 몇 배 이상의 노력으로 서울대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그러나 예중과 예고 출신 합격자의 실력이 너무나 출중했다. 그는 1년 내내 실력을 함양하기 위해 무리하게 연습했는지 2학년 시작할 즈음 원인불명의 병을 앓기 시작했다. 대학병원, 한의원, 민간요법 등 모든 것을 활용해도 쾌차가 없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생존확률 50%, 생존해도 불구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을 했었다. 결국 군 면제가 되었고 삶의 포기가 극도로 다가왔었다.
그러던 중에 중학교 시절 사공의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이 환호해 주던 생각이 떠올랐다. 거의 1년 만에 미소를 되찾았다. 20살 청년이 생사에 대한 고뇌에 빠지게 되면서 얻은 것이 이타적인 삶이었다. 그는 조금씩 몸이 호전되었지만,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운 관계로 스쿠터를 타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이후부터는 방학 때마다 농활에 참여하여 아이들에게 노래와 영어 교육 봉사를 전개하곤 했다.
졸업 후 그는 성악 전공자만 입단할 수 있는 프로합창단의 오디션에 합격하고 파트장으로 선임되어 2년간 재직하다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생활비는 공연 수입과 국내기업의 통역,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부족한 것은 부모님과 처가의 도움을 받았다. 10년간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면서 북부 이탈리아 유학생회 회장을 맡게 됐다. 유학생 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비자, 운전면허, 재외국민 체류 허가 등을 지원하고 해결해 주었다. 연말에는 한인 음악회 준비와 기획을 맡았고 한인 송년 행사도 그의 몫이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생활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만삭이 되어 출산을 위해 아내가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사실 장모님이 이탈리아로 오셔 산후조리를 도와주시기로 했는데 장인이 위암 수술을 받는 바람에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탈리아 유학 10년 동안 베로나 국립음악원에서 ‘성악’, 마스티노 아카데미 ‘합창 지휘’, 오르페오 아카데미 ‘오페라 최고 연주자 과정’, 이탈리아와 독일 극장에서 다수의 오페라 주역과 솔리스트로 활동을 남기고 귀국했다.
막상 귀국해 보니 그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미래의 포부와 성악의 대중화를 목표로 유학을 다녀왔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무한한 경쟁의 연속이었다.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성악, 합창 지휘, 음악사 등을 강의하며 한국 생활에 점차 적응해 갔다. 초빙교수로는 생활 자체가 어려웠다. 그는 여러 개 직업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침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성전 성가대에서 지휘자 선발공고가 있었다.
그는 교회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며칠 후 예배 때 지휘를 해 보라고 연락이 왔다. 다른 경쟁자도 있어 선발되지 않으면 망신이었다. 그는 차분하게 지휘하며 성가대의 호흡을 최고조로 향상시켜 지휘자로 선발되었다. 성가대 회원 중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아 요양병원과 대학병원에서 재능기부로 공연을 하여 좋은 평을 받았다.

성악으로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다.
우연히 공연을 마치고 가는데 서울도봉구립합창단 지휘자를 뽑는 공고를 봤다. 아이가 성장하고 있어 가장으로서 책무가 너무나 무거웠던 차에 가족을 생각하며 지휘자 선발에 도전, 합격하여 중국과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전개했으며, 충북 제천시에서 열린 전국의림합창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능력을 인정받았다.
몇 년간 대학에서 강의하지 못해 아쉬웠던 차에 추계예술대학교로부터 초빙교수 제안이 있어 흔쾌히 승낙하고 학생들에게 인성을 겸비한 음악인 양성에 혼신을 다했다. 학생들도 그의 진심을 알고 강의 시간만큼은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2곳에서의 지휘자 계약이 종료되어 다른 곳에서 다시 지휘자직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수지여성합창단 지휘자와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음악 총감독을 맡게 되었다. 단순히 지휘자만 하다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음악 총감독을 맡다 보니 음악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음악 기기부터 무대 설치, 성도들의 반응 등은 그가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기회였다.
모태 신앙의 영향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부천시 장로님들로 구성된 부천장로합창단으로부터 지휘자 권유를 받았다. 그는 성가를 중심으로 한 부천장로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아 복음에 일진하고 있다. 또한 부천아버지합창단의 지휘자도 병행하고 있다.
지휘자로 영역을 넓혀가던 그는 군포시립여성합창단 상임지휘자 선발공고를 보고 도전하여 처음으로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군포시립여성합창단의 실력은 어느 합창단보다 우수했다. 그는 제1회 국방부 주관 군가경연대회에 참가하여 1등을 차지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군포시여성합창단의 위상이 올라갔고 합창으로 지역발전과 시민화합에 일조하게 됐다.
그는 윤동주 시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20대 청년이 빛나는 문학적 사고와 일본 감옥에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그었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 윤동주 시인의 이타적인 삶을 늘 본받고 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수백 번의 전국 순회공연을 했으며 뜨거운 호응과 초청도 수없이 받았었다. 하지만 군포시립여성합창단 상임지휘자로 오면서 지속하지 못해 앞으로 군포시에서 순회하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는 유흥창 상임지휘자, 그는 더 나아가 합창과 성악의 대중화를 위해 복합 장르의 음악회를 개최하고 싶어 하는 오늘의 지휘자로서 아내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약력
서울특별시 출생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베로나 국립음악원 졸업(성악)
마스티노 아카데미 졸업(합창지휘).
오르페오 아카데미 졸업(오페라 최고 연주자 과정)
이탈리아와 독일 극장 다수의 오페라 주역과 솔리스트로 활동
나사렛대학교·추계예술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성전 성가대 지휘자 역임
서울도봉구립합창단 지휘자 역임
수지여성합창단 지휘자 역임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음악 총감독 역임
부천장로합창단 지휘자
부천 아버지합창단 지휘자
현재 군포시립여성합창단 상임지휘자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2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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