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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과 사회활동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박승용 본부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1년 08월 21일
ⓒ 경기헤럴드


왜곡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성공사례가 우리들의 거울이 된다. 어려서 중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친의 이타적인 삶을 보고 부친과 함께 환경보존 운동과 사회활동을 모범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박승용 본부장. 그는 약관의 나이에도 남다른 애정으로 환경 사랑과 어르신 섬김에 자신을 승화하고 있다.

왜곡된 유학 시절을 보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할 당시 한국수출공업단지로 유명했고 현재는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로 널리 알려진 서울 구로구가 그의 고향이다.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왜소하여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했다. 늦게 자식을 본 부모들은 그를 애지중지하며 사랑으로 훈육했다. 부친은 사업을 전개하며 경제적으로 유복했으며 지역 봉사활동과 다양한 사회사업을 하며 존경을 받으셨다. 더욱이 안양·군포·의왕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운동과 청소년 환경교육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부친의 영향을 받은 그는 어려서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다.
모친은 가정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고 외할머니를 모시는 효부셨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모친의 성품은 그가 옳고 곧게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갖게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거주하는 동네에 한학을 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동네 아이들은 한학과 붓글씨를 배우기 위해 매일 그 한학자 집에서 수양했다. 그는 또래보다 한문을 습득하는 속도가 남달랐다. 글씨도 수준 이상으로 잘 써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한문에 더 매진했다.
그는 한자 자격급수를 취득하기 위해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도 한자 익히기에 몰두했다. 그 결과로 한자 2급을 취득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지시로 매일 칠판에 사자성어를 적어 또래들에게 알려주곤 했다. 또래보다 한자를 잘 안 그는 행동에도 어른스러웠다. 간혹 부모님의 지인들이 집에 오면 자식을 자랑하고 싶은 부모님은 사자성어 외워보라며 은근히 자식을 내세우는 모습과 함께 그의 집안은 늘 웃음꽃이 가득했다. 공부도 잘한 그는 의왕시장배 수학 경시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부모님이 많은 기대를 갖게 했다.
사실 그는 구로에서 생활하다 경기도 의왕시로 어려서 이사를 하여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생활했다. 또래들은 도시지역 아파트에서 거의 생활했지만 그는 외딴집에 살다 보니 친구들과의 만남이 적었다. 또래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오직 할머니뿐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학교에서 끝나면 집으로 가기가 싫었다고 한다. 집 주위가 삭막했고 밤이면 혼자 문밖을 못 나올 정도로 무서웠다. 부모님들이라 친환경적 주거지였지만 그는 아직 어려서 단독주택문화를 수용하지 못했다.

지역봉사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다.
그런 차에 그가 5학년이 되던 해에 군포시로 전학을 가게 됐다. 의왕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군포로 전학은 더욱더 그를 힘들게 했다. 의왕에서 군포까지 통학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리도 잘 모르는 그는 오직 부모님께 의지해야 했다. 교육열이 너무 강한 모친의 영향이 컸지만, 그는 어떠한 말도 못 하고 따라야만 했다. 더욱이 산속에 있는 집으로 가기가 너무나 싫어 마음속에서는 반항이 싹트고 있었다.
다행히 그가 6학년 때 중국 초등학교와 그가 다니는 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어 상호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모친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중국을 여행하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는 중국과 왕래가 잦아 중국어를 배우는 열기가 대단한 시기였다.
그러나 중국을 다녀왔어도 그의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말았다. 장남이고 늦게 자식을 본 부친은 애지중지했던 그에게 매를 대고 말았다. 이제는 학교도 집도 싫어지기 시작한 그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다정다감했던 부모님이 개인적인 문제로 이혼을 하시게 되었다.
그는 동생과 함께 모친과 함께 살면서 오직 모친에게 의지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 그에게는 악몽 같았다. 더욱이 모친은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예고도 없이 중국으로 유학을 보내셨다. 가족과 떨어지기 싫은 그는 중국으로 가기 전까지 매일 눈물로 지내야 했고 당황스러운 일들이 연속이었다.
그의 나이 15세에 중국 수도 베이징에 도착, 교토 출신인 가정부와 생활하면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기본적인 중국어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유학을 왔기 때문에 중국어 공부가 급급했다. 중국에 있는 어학원에 등록했지만, 수강생들이 대부분 대학생이나 성인들뿐이었다.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아 학원 간다고 하고 PC방이나 버스 여행을 하면서 4시간을 보낸 뒤에 귀가했다.
이러한 사실을 안 모친은 중국인만 다니는 베이징학교에 입학을 시켜버렸다. 다행히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 중국 또래들은 의외로 잘해 주었다.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그는 중국인만 다니는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유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다 보니 그도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때 사춘기까지 와 그는 질풍노도의 절정기를 맞게 되었다. 친구들과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더 익숙했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모친이 생활비도 넉넉하게 보내주었기에 불편함도 몰랐다. 그가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 모친의 사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모친은 생활비를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통보와 대학교 1학년 등록금은 책임져주시겠다는 짧은 말만 남기셨다.
그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생활비 자체가 거의 없어지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했다. 당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대학은 어떻게 해서라도 졸업을 해야 한다는 부친의 말씀에 북경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며 버티었다. 불행 중에 다행히 간호사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 인생의 변환점이 되었다.
깊은 고민 끝에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병역이 문제였다. 중국 유학 시기에는 자동으로 연장되었던 입대 연기가 귀국 후에는 연장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최전방인 7사단에 배치, 그동안의 과오를 씻는 계기로 삼고 군생활을 모범적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훈련 도중에 목을 다쳐 의가사 전역을 해야 하는 불운을 안게 되었다.
전역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역유지이셨던 부친은 중국어를 잘하니 통역사를 추천해 주셨고 모친은 기술을 익혀야 먹고산다며 미용사를 추천해 주셨다. 평소에 패션과 배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미용 기술을 익혔다. 2년 만에 적성에 맞지 않아 미용을 그만두고 지금의 안사람과 결혼하게 됐다.

환경운동과 어르신 섬김으로 미래를 설계하다.
끈기가 없었던 그에게는 가족이 생겨 무엇이라도 해야 할 지경에 도달했다. 결국 부친이 조언해 준 관광통역안내사를 준비했다. 시험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약 2년 동안 노력한 끝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자격증을 취득하면 취업이 곧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주로 화교계통의 중국인들이 거의 장악했다. 아니면 조선족 교포들이 관광통역을 맡아 한국인 출신의 관광안내사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인 관광안내사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정부가 인지하고 한국인 안내사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청년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3기로 들어가 6개월 재교육을 받고 면접 기회를 가졌고 우리나라에서 굴지의 여행사에 취업했다. 무보수 인턴이라 너무 힘들어 한국인 인턴들은 중간에 거의 그만두었지만 그는 끝까지 버티다 정식직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관광객이 오면 관광 안내뿐만 아니라 여행지나 주변에 한국상품을 판매하는 곳에 안내하여 판매까지 해야만 했다. 그는 실적이 좋아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아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팀을 배정받아 장래가 촉망됐다. 그러나 2020년에 코로나가 발생하여 관광객이 줄어 모든 직원이 업무 대기 상태라고 한다.
극한의 환경을 탈피하기 위해 고령화 사회에 있어 필수조건인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부친이 하는 사업을 옆에서 보조하며 지역 활동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다. 지금은 진영노인재가복지센터일과 녹색환경실천본부 등 봉사단체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돌봄 봉사활동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으며 녹색환경실천본부 군포시 지역본부장을 맡아 지역 환경보호와 청소년 환경교육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 시기 소외했던 문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청소년 문학 저변확대를 위해 결성된 수리청소년문학대전추진위원회에 위촉되어 모범적으로 청소년 문학증진에 기여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에 무료로 책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는 동행의릴레이 이사를 맡아 정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고향과 모교에 무료로 책보내기 운동을 실시하고 있는 고향모교책보내기추진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하여 많은 공공기관과 학교에 책보내기 운동이 활성화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청소년 시절 왜곡된 생활을 반성하기 위해 지금 폭력 없는 학교만들기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행복한 학교만들기에 최선을 다 하는 그의 모습에서 열정을 느끼곤 한다.
그는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끈기와 책임감이 부족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백성을 위해 한글 창제를 중단하지 않았던 세종대왕의 무한한 책임을 늘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창 시절은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시기로 자신이 가장 잘하고 흥미가 있는 분야를 개척하라고 반성의 의미를 부여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전문성과 끈기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일러주었다.
어려서 유학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경험하고 시간의 중요성을 상실했던 것을 가장 아쉽다는 그는 지금 부친과 함께 어르신 섬김과 환경보호 운동에 보람을 갖는다고 한다. 물질적 성공보다도 정신적 성공이 중요하다며 환경운동과 사회활동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박승용 본부장, 그의 강인한 의지와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약력
서울특별시 출생
중국 북경대학교 중퇴
녹색환경실천본부 군포시지부장
진영노인재가복지센터 상담실장
중국어관광통역안내사
투어가이드
수리청소년문학대전추진위원회
동행의릴레이 이사
고향모교책보내기추진위원회 위원
폭력없는 학교만들기추진위원회 위원
경기도의회의장 표창장
국회의원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1년 0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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