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1-09-28 오후 03:46:36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아름다운사람들

시민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배정명 약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3일
ⓒ 경기헤럴드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이룬다. 부지런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자수성가로 이웃과 함께하는 배정명 약사. 그는 약사로서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사회 활동을 전개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와 청소년들에게는 장학사업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옹고집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다.
군항제와 벚꽃축제로 유명한 경상남도 진해가 그의 고향이다. 그의 집안은 조부의 덕분으로 일꾼을 2명이나 두고 농사를 짓는 대농이었다. 부친은 농사보다 자신의 재능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서울, 평양 등으로 유학을 다녔다. 해방 전이라 평양이나 만주 일대를 다니며 한의원을 운영한 부친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특히 부친은 친인척들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훈육하며 17명의 친인척을 공부시켰다. 무엇보다도 그의 부친은 근·현대 한의학의 대명사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한의학의 세계화와 국민건강에 선각자적인 노력을 하신 분이었다.
모친은 해방 전에 부친의 고향인 진해로 먼저 내려와 조부모를 모셨다. 인부으로는 많은 농사를 다 하지 못하자 모친은 손수 논밭에 매달려야 했다. 특히 모친은 조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효성을 다하여 지역에서 효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성장한 자식들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했고 모친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자식이 되어야 했다.
해방이 되어 부친을 만난 가족들은 행복했지만, 부친이 서울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말에 모친은 고향 진해에서 조부모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공부보다는 어린 나이에 논과 밭에서 모친을 도와야 했다. 바닷가에서 반찬을 위해 조개, 미역 등을 줍는 모친을 따라가 도와주는 등 효성이 깊었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그는 운동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머리가 명석해 공부도 잘해 또래들의 중심이 되어 일손 품앗이를 할 정도로 통솔력도 뛰어났다. 더욱이 조부는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떠한 음식도 주지 말라는 말에 그는 하루라도 농사일이나 가축의 꼴을 배기, 여물 주기, 논과 밭에서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하기엔 너무나 고된 일들이었다. 하기 싫어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모친의 몫이 된다는 것을 안 그는 눈물을 흘리며 집안을 도와야 했으며 모친에게 조금이라도 효도하는 자식이 되고 싶었다.
그는 어린 나이 아홉 살에 불행하게도 6.25사변이 발발했다. 가족들은 모친의 고향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그곳은 산골이라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했다. 온 가족이 살기 위해 죽으로 연명해도 그는 늘 책과 함께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집안의 일을 더 해야 했다. 초등학교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하여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모친이 농수산물을 시장에 판매하려고 가시면 그것을 나르는 등 피곤의 연속이었다.
그는 사업으로 인해 고향을 등한시한 부친에 대한 반감이 커갔다. 그러다 사춘기를 맞이하고 부친의 도움 없이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특히 학비가 들지 않는 사관학교에 가기 위해 체육에 온 힘을 다했다. 해병대가 진해에 주둔하고 있어 그는 해병대의 도움으로 권투를 배울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수로 출전하다 그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교사로 재직 중인 삼촌에게 걸려 중도에 그만두어야 했다. 그의 삼촌은 공부가 우선이라며 어떠한 운동도 못 하게 했다.
그래도 삼촌 몰래 기계체조 등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며 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해 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사관학교에 입시 준비를 하다 신체검사에서 키가 미달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미래를 위해 자신과 싸우다.
서울에서 약대를 다니는 누나가 집에서 빈둥대는 그를 서울에서 공부를 시키기 위해 데려왔다. 공부에 등한시 한 그는 서울 아이들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공부에 흥미를 잃은 그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자신을 조명하게 됐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너무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정식으로 학원에 등록하여 공부에 매진했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누나의 영향을 받아 그는 중앙대학교 약대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학비는 집안에서 도움을 줬지만, 생활비와 교재는 자신이 해결해야 했다. 그는 세차장에서 자동차 세차, 신문 배달 등을 하며 약사고시를 준비해 나갔다. 그가 2학년이 되었을 때 ROTC 공모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ROTC가 도입되어 그는 응시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포기하고 말았다.
약사고시에 합격하고 졸업한 그는 부산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모친은 국민을 위한 약국이 되라는 조언과 약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로 ‘민우약국’이었다.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의 약국이 너무 잘 되었다. 그러나 지역색과 알력으로 인해 그는 약국을 더는 할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는 군의학교에서 6주 교육을 받고 경주 18병원에 배치되어 영천에 있는 사관학교의 의무대 약제과에서 근무하며 의약품 보급을 관리했다. 전공을 찾아 배치를 받은 그는 대학에서 다 하지 못한 전공을 더 살릴 수가 있었다.
전역한 그는 서울에 ‘민우약국’을 개업하여 누나와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그런데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시흥군에 민영주택을 조성하는 데 약국이 필요하다며 그에게 이전을 권유해 주었다. 지인의 권유로 군포시로 이전하고 지금의 민우약국을 운영하게 됐다.
지금은 군포시지만 당시는 시흥군 소속 약사협회가 구성되어 부회장까지 역임하면서 소외계층 지원사업을 회원들과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약사의 본분을 다했다. 이후 그는 군포시약사회를 발로 뛰어다니며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걸쳐 9년간 재직했다. 약사들의 권익과 증진에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건강증진에 많은 도움을 줘 경기도약사회 대상, 대한약사회 금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군포시약사회 회장을 재직하고 있을 때 회원들이 따뜻하게 포용해 준 감사의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후 군포시약사회에서 군포경찰서와 함께 위스타트 사업 홍보 및 참여회원 수를 확대하기 위한 자선기금에도 후원했으며 군포시사랑장학회에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금을 300만 원 기탁하는 등 모범적인 활동을 했다.

대민봉사로 희망을 주다.
이외에도 시흥군 위민 봉사위원, 군포시 시정자문위원, 안양경찰서 행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 치안과 발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군포경찰서장 감사장, 군포시장 표창장 등을 받았다. 당시에는 치안이나 대민봉사 정신이 지금보다 부족한 시기였다. 그는 위원으로서 명분을 갖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실질적인 위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수원지방검찰청 청소년 선도위원을 맡아 청소년들의 본드 흡입, 마약성 약품류의 복용 등에 대한 예방책과 계몽운동에 적극 동참했으며, 수원지방법원 보호관찰위원에 위촉되어 시민의 인권증진에 앞장섰다.
그는 약학과를 전공하여 시민들의 건강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군포시시니어클럽 운영위원, 안양시관악장애인종합복지관 운영위원, 사단법인 성민원 이사 등에 위촉되어 장애인복지사업과 어르신 건강증진에도 동참했다. 특히 행사가 있을 때는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군포시 체육회 상임이사, 국제라이온클럽 이사, 바르게살기운동군포시협의회 이사로 위촉되어 군포시에서 개최되는 각종 체육대회, 계몽운동 등에 동참하여 경기도지사 표창장, 바르게살기경기도협회의 감사장, 국제라이온스 총재 표창장이 그의 노고를 덜어 주었다.
2000년 초 군포시의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민간기업유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군포공단에서 타지역으로 공장과 회사들이 이전할 움직임이 있자 그는 지인들과 함께 기업유치활동을 전개하여 담당공무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도 했다.
80세가 넘은 그는 지금도 청소년들의 정서함양에 후원하고 있다. 전국청소년문학대전과 공공기관에 무료책보내기운동에 후원하여 젊은 추진위원들에게 격려를 주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김태길·안병욱과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김형석 교수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김 교수가 저술한 수많은 책을 읽으며 세상 보는 눈을 더 넓혔다는 그는 이웃과 늘 함께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옹고집으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을 후회하며 김형석 교수의 책에서 지혜를 얻었다고 회고했다.
청소년들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자신이 더 안정된 사고를 갖게 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일부 왜곡된 사고로 인하여 부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후회를 하며 부모님에 대한 효도도 강조해 주었다.
사관학교를 가고 싶어서 공부보다 체육에 더 많이 관심을 두었지만, 키가 미달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여 약사가 된 배정명 약사, 그는 인생에서 왜곡된 부분은 자신의 업보라며 청소년들만큼은 아무리 힘들어도 후원해야 한다며 장학금 후원 등 이타적인 삶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옹고집과 어려움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분이 있다면 용서를 구한다며 남은 인생만큼은 고향을 향해 낮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약력
경상남도 진해시 출생
중앙대학교 약학과 졸업
시흥군약사회 부회장 역임
군포시 시정자문위원 역임
군포경찰서 행정자문위원 역임
군포시약사회장 역임
군포시체육회 상임이사 역임
수원지방검찰청 청소년선도위원 역임
수원지방법원 보호관찰위원 역임
경기약사회 대상
대한약사회 탑상
시흥군수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수원지방검찰청장 감사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민우약국 대표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3일
- Copyrights ⓒ경기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정각사 정엄 스님, 중국화엄사상연구 출간
군포서 송부파출소 생활안전협의회, 추석명절 지역 나눔 행사 가져
본지 조창도 원로위원, 숭실대학교로부터 ‘조창도 강의실’ 선사 받아
원광대 산본병원, 군포시 아동학대전담 의료기관으로 지정
군포경찰서, 범죄환경 개선을 위한 `함께해요! 안전순찰`실시
국제로타리 3750지구 안양1지역 새안양·안양만안로타리클럽, 안양착한푸드마켓 쌀 100포 전달
KB국민은행, 기아대책기구와 함께하는 전통시장 사랑나눔 행사 펼쳐
안양시의회, 추석 명절 맞아 복지시설 위문하여 온정 나눠
정각사 정엄 스님, 추석맞이 자비 나눔 펼쳐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경기도·의회
조광희 도의원, 안양시 3개 학교 코로나..
조광희 도의원, 안양시 3개 학교 코로나19 방역 격려차 방문 경기도의회 건설교통.. 
경기도, 외부 회계감사 결과 .. 
김종찬 도의원, 교육기획위원.. 
조광희 도의원, 경기도 학교 .. 
조광희 도의원, 귀인중학교 운.. 
정희시 도의원, 홈페이지 장애.. 
경기도 ‘경기부동산포털’, .. 
아름다운 사람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문화예술의 미래를 설계하.. 
환경운동과 사회활동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박.. 
미술을 통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신희섭 ..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을 만들어 주는 ㈜유한킨.. 
제호 : 경기헤럴드 / 주소: (15865) 경기도 군포시 산본로323번길 20-33 대원프라자 801호 / 발행인 : 임종호
편집인 : 임종호 / mail: ggherald@naver.com / Tel: 031-427-0785 / Fax : 031-427-1773
정기간행물 : 경기다01029(2007년 09월 17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증 : 경기아 51770(2017년 12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호
Copyright ⓒ 경기헤럴드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