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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가능성으로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의 남경우 대표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02일
ⓒ 경기헤럴드
 
 


실낱같은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정신으로 헤쳐 나가는 개척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챙기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후회가 없다는 남경우 대표. 그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조용한 안양골에서 재능기부를 하며 행복 만들기에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가난도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동대문과 홍릉으로 유명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가 그의 고향이다. 삼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엄격한 부친의 슬하에서 독립심 강한 아이로 성장했다. 조부가 전국에서 유명한 대목으로 많은 부를 쌓았었지만 토지개혁으로 급격히 가계가 기울게 되면서 부친은 어린 나이부터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일보에 오랜 시간 근무를 해왔지만 부친은 융통성이 없는 원칙주의자로 고리타분하게 살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모친은 자상하면서도 생활력이 강하셨다. 그가 초등학교 고학년 될 때까지 모친은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 경제에 일부분을 책임지셨다. 자신의 세 아이들도 힘에 겨울 텐데 고종사촌 세 명까지 뒷바라지 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에 남다른 욕심을 보였다. 시험만 봤다하면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가족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되었다. 또한 그림에 소질이 있어 각종 대회에 나가 수상하는 등 다방면에서 뛰어나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순박하고 순했던 성품으로 인해 그의 주위에는 항상 또래들이 같이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동생들 돌보기는 물론 할머니를 도와 가사의 한 부분을 책임지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모친의 직장생활로 인해 막내 동생을 업어 키웠다고 할 만큼 장남으로서 책임감이 매우 강했다. 당시에는 문화시설이 변변찮았지만 그는 어떻게든 독서와 그림 그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공부에 남다른 욕심이 많았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해서 세상 보는 눈이 조금씩 더 커졌다. 내가 힘들어도 남이 행복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성숙한 아이로 자랐다. 중학교 시절에는 차트와 인쇄물을 담당하는 직원과 친해져 차트 제작을 도와주는 대신 탁구를 배우는 등 협력의 정신까지 갖게 됐다. 학교 직원에게 워낙 수준 높은 탁구를 배우게 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자 운동 분야에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중학교1, 2학년 때까지 영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큰 꿈을 꾸었다. 전교 1등은 물론 일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과외를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가정형편으로 어렵다는 대답뿐이었다. 이때부터 실의에 빠진 그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에도 글짓기는 잘했는지 국어 선생님이 국어시간에 그의 글을 읽어주면서 나중에 국문과로 진학하여 작가가 되어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꿈을 키우며 성공하다.
성적이 떨어진 상태에서 자신이 지망한 고등학교에 불합격을 하고 2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의 집에서 5km나 떨어진 곳에 있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고충이 말이 아니었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 다녀야 했던 가난 때문에 그는 걸으면서 어서 성공하여 이곳을 벗어나자가 목표였다.
어려서부터 남과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던 그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친구들이 과제를 부탁하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것을 뒤로하고 친구들 것부터 해주다보니 친구는 수를 받고 자신은 미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순박하고 착했던 그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잘사는 것과 못사는 사회적 형평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강한 의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아직 어린 그가 그런 불만을 해소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생각이 깊어지면 그는 그림으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사춘기의 정신적 방황을 끝내고 그는 미대 진학을 꿈꾸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미술학원은 물론 어떤 지도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미대는 수능도 중요하지만 실기가 매우 중요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두 번째 대학응시까지 낙방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용돈을 아껴가면서 미술학원 취미반에 등록했다. 입시반은 취미반에 비해 학원비가 비싸 등록할 수가 없었고 그것도 몇 개월 지나니 낼 수가 없었다.
그는 고민하다 결국 학원 원장과 면담을 신청해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원장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어 밤을 새우며 그림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집에 가고 나머지는 학원에서 새우잠을 잤다. 학원생들이 소파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곤 옷을 덮어주기도 하고 도시락을 나눠 주는 등 그에게 너무나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의 그런 노력은 6개월 후부터 빛나기 시작했고 학원 모의고사 디자인 파트에서 1등을 도맡아 했다. 도전정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살벌한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 미대에 합격을 하자 학원생들은 자신들이 합격한 것처럼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삼수를 한 덕분에 입학 후 바로 군에 입대해야 했다. 전반기 훈련이 끝나고 그는 서부 전방부대에 배치되었다. 미술과 글씨에 조예가 깊은 그는 차트병으로 차출되어 군사용 괘도, 사격장 간판 등을 그리며 자신의 전공을 살리며 군생활을 했다. 얼마나 뛰어났으면 군단까지 소문이 나 차트병 사이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전역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부친이 친척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집을 처분하고 전세로 이사를 갔던 것이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자신도 꿈을 잃을 것 같아 6개월 만에 독립을 했다. 대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고 학생지도, 학원강사 등을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 단 두 번만 등록금 도움을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이 해결했다.
학비가 가장 많이 든다는 미술대학을 독학으로 어렵게 졸업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서울극장에 취업하게 되었다. 홍보 및 디자인 기획을 맡아 동방불패, 터미네이터2, 경천12시 등 당시 유명했던 영화가 대박 흥행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욕심에 비해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다. 1년 만에 퇴사를 하고 지인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동업은 실패한다고 했듯이 그 역시 두 번의 동업 파기 끝에 마침내 자신의 디자인 회사를 차리는데 성공하였다.

행복한 마음 만들기에 앞장서다.
당시의 영화계는 개인 자본으로 운영되던 시대라 영화 한 편에 대박이 나기도 하고 쪽박을 차기도 했다. 비록 1년 만에 퇴사한 직장생활이었지만 그는 그때 얻은 경험과 동업 실패의 쓴 맛이 약이 되었는지 단독으로 설립한 회사가 미디어사업의 급성장으로 대박을 쳤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과 외국 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얻게 되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어려운 학생과 독거노인들에게 10년 이상 무기명으로 후원하는 등 나름 성공한 사회인으로서의 생활을 해나갔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응이 너무 안일했다. IT사업의 세계적인 변화 속에서 그가 일해 왔던 비디오사업은 사향사업으로 변하고 있었다. 광고회사에서 쌓아온 자금으로 후배들과 무선공유기 벤처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IT분야에는 문외한이었던 그는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4년 만에 혼자 독박을 쓴 채 무너지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였고 그 후유증은 실로 컸다. 모든 희망을 잃은 그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스크린 골프에 매달렸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그는 ‘수다 골프 수다 인생’이라는 골프 에세이까지 출판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한편으로는 손가락 관절염까지 얻게 되었지만 덕분에 그는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재산을 모아 디자인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캐릭터 사업을 시작했다. 그래도 다른 사업보다는 자신이 있었다. 유아용 감성놀이책 페이스북1·2를 비롯 혼자노는 심심이, 으라차차 씩씩이, 버둥버둥 떼쟁이, 투닥투닥 심술이, 느릿느릿 엉금이, 냄새대장 킁킁이 등을 출간하며 유아들의 창의적인 감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작 캐릭터 개발지원작에 선정되어 자금 지원도 받았고, 용산국립중앙박물관 서적센터에 입점하여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마침내 그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온갖 우여곡절 끝에 캐릭터 사업 역시 잘 되지 않아 정리를 하게 되었다. 미래를 고민하던 중에 안양에서 사업을 하던 전 직원의 조언을 얻어 아내와 상의 끝에 안양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게 됐다. 안양에 오니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는 안양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은 ‘생각벌레’ 블로그 및 ‘꽃과 국수’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에게 유쾌한 정보와 글을 올리며 신개념 프리미엄 국수 전문점 ‘꽃과 국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애민사상을 평생 구현한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한글창조는 물론이고 비양반 출신의 장영실 등용, 문화예술, 과학과 백성들에게 유용한 기술을 발전시켜 차별이 없는 세상을 앞서 실현하려는 정신세계를 늘 본받고 또 그 정신을 실현하고 싶어한다.
젊어서 즉흥적인 사업투자와 동참으로 여러 번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비난보다는 격려와 사랑으로 감싸준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하다는 남경우 대표, 지금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꽃과 국수’를 운영하며 그동안의 미안함을 속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안양 해솔학교와 과천 장애인복지관에서 감성주제 초대 강의를 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재능기부를 통해 행복한 마음 만들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꿈이 아마도 모든 이들의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약력
서울특별시 출생
서울 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연구과정 수료
샘이 깊은 물 일러스트레이터 역임
과천장애인복지관 등 초대 강사 역임
웅진 일러스트레이터 역임
에세이 북 ‘수다 골프 수다 인생’ 출간
버둥버둥 떼쟁이 등 감성 동화책 6권 출간
감성 놀이 책 ‘페이스북’ 2종 기획 및 출간
㈜ 아펙스 인 대표 역임
㈜ 빅박스 대표 역임
㈜생각벌레 출판사 대표
현 프리미어 국수 카페 꽃과 국수 대표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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