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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정신으로 기업가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화용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08일
이타정신으로 기업가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화용 회장

ⓒ 경기헤럴드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고는 이웃을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불가능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가능하다. 평생 자신의 것을 구분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이화용 회장, 그는 이타정신으로 기업가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자수성가의 틀을 만들다.
산천어축제와 화천댐으로 유명한 강원도 화천군이 그의 고향이다.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친의 사업관계로 서울 종로6가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성장해야 했다. 종로6가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 월남한 할머니가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여 포근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과 공부를 잘한 그는 선생님으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올바르게 잘 성장했다. 노래도 잘 해 합창단에 들어가 또래들과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고 학급 환경정리 등에서는 언제나 솔선수범하여 인기가 많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특수반에 선발되어 누구보다도 공부에 매진했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동네 선배가 공부도 잘 하고 착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 버스표조차 낼 수가 없었다. 이해심이 많은 그는 계속해서 선배 차비를 대신 내어주며 선후배 간의 우정도 돈독히 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였다.
시간이 흘려 그는 단기사병으로 성남시에 있는 동사무소에 근무하던 중, 집안에서 참한 색시가 있다며 결혼을 권하여 젊은 나이에 일찍 결혼을 했다. 신부는 당시 회사에 다녔는데 급여가 몇 만에 불과했다. 그는 1만원짜리 월세로 시작하지만 자수성가로 자신을 성공시켜 보고 싶었다. 부인도 그의 생각에 동조하고 회사를 퇴직한 후 작은 슈퍼를 시작으로 사업일선에 들어섰다. 가게에서 얻은 이윤은 회사 급여보다 좋았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전역 4개월을 남기고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1주일 입원 후 병원에서는 회복 불가능하다며 퇴원을 종용했다. 신혼부부에게 청천병력같은 소리였다. 그의 부인은 낙심 대신에 그의 손을 잡고 가까운 교회로 인도했다. 부부는 간절히 기도했다. 오직 살 수만 있다면 내 삶보다 이웃을 위해 더 살겠다며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그의 정성이 통했는지 그의 몸은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덩달아 가게의 수입도 늘어나면서 부부는 사고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한 쪽 손은 완쾌되지 않았지만 전역을 한 그는 서울에 있는 대형 영어사에 입사를 하게 됐다. 바로 위 상급자의 부당함에 그는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사표를 제출했으나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그를 잡기 위해 영업부에서 근무를 해 보면 적성이 잘 맞을 거라고 권유를 해 주는 바람에 다시 근무를 시작했다. 영업근무 4일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남들은 한 달을 해도 받지 못하는 110만원이라는 수당을 받은 그는 회사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원한 동반자를 얻다.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의 인생을 맡긴 안사람을 생각하며 죽기살기로 영업전선에서 뛰었다. 그는 남들이 구상하지 못하는 영업전략으로 계속 신기록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자신의 목표에는 너무 부족했다. 때마침 지인이 화장품회사를 소개시켜 줘서 업무 외에 화장품 영업을 시작했다.
그의 신의와 신용을 믿어 준 소비자들은 흔쾌히 화장품을 구매해 줘 부가적으로 그의 수입도 늘어났다. 어느날 하루는 회사로 회장품을 주문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화장품 영업에 매진하게 됐다.
자유롭게 화장품을 판매하다보니 회사로부터 부담이 없었다. 단기간에 획기적인 판매로 여러 회장품 회사의 관계자들로부터 요청이 쏟아졌다. 할 수 없어 대형 화장품을 병행해서 영업을 이어갔다.
단순히 영업만으로는 판매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화장품 도매상을 설립하고 영업망을 구축해 나갔다. 짧은 시간에 서울에서 유명한 화장품 도매상으로 자리잡은 그는 주위로부터 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게 문제였는지 선하고 사람 잘 믿는 그는 어려운 지인이나 사업자가 융통을 부탁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또한 사업자들이 보증을 요구하면 부인 몰래 서주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결국 사단이 났다. 몇 차례 보증 서는 것이 문제가 되어 그는 사업체를 정리하고 자연인이 되어 조용한 군포시로 이사오게 됐다.
성공과 실패를 일찍 경험한 그는 낙이 없었다. 남편이 더 망가지기 전에 부인은 마음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하루에 천원씩만 용돈을 주었다. 그는 매일 소주 2명을 마시며 화를 풀어야 했다.
약 6개월이 지나자 현명한 그의 부인은 그에게 다시 화장품 도매업을 제안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인은 패물, 반지, 카드 등 모두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모아 100만원을 그에게 마련해 주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욕심내지 않고 성실하게 성공하겠다고 다짐하고 발품을 팔며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서울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 지방에 조금씩 납품을 시작했다. 많은 이윤보다는 고객확보가 우선이었다. 지방 소매점들은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에 감명받아 그에게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울 도매상 대표가 신용으로 500만원어치 물건을 줄테니 가려가라고 해도 그는 거절하며 자신에 맞는 영업을 고집했다. 그의 영업전략은 주효했다. 지방에 거래하는 소매상들은 거의 그와 거래를 하며 다시 재기하는 기회를 얻었다.
다시 그는 화장품 도매 1위를 차지하며 멋지게 성공했다. 그러나 그에게 경계하는 먹구름이 다가왔다. 물건을 제공해 주는 기업에서 자신들의 멋대로 영업구역을 조정하고 갑질을 하는 바람에 그는 울분을 토하며 도매상을 그만두고 부도난 화장품 회사의 브랜드를 매입하여 자신의 상표로 화장품 생산을 시작했다.
생산 설비, 공장 부지, 직원채용 등 많은 부분에서 갈등이 생겼다.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직접 생산보다는 OEM으로 화장품을 생산하는 것이 지금과 미래에 더 용이하다고 판단하고 그 방법을 선택했다.
그의 경영방침은 정확했다. 그동안의 고생이 한 순간에 다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부부는 서로 안으며 뜨거운 눈물로 서로에게 위안을 주었다. 드디어 1999년 자신의 회사 사옥을 마련하고 개발부 활성화와 해외영업망 개척에 매진했다.

기업가로서 존경을 받다.
남들은 IMF 때 힘들었다고 하지만 그는 사업이 확장되고 사세가 커지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여기에 자녀와 사위까지 회사에 참여, 개발과 해외영업개척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소위 가족경영의 모범사례를 구축했다. 회사가 안정되고 그가 회사에 전념하지 않아도 운영되자 그는 지역 환원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부인이 한 달에 300만원 정도 용돈을 주자 사용할 곳이 없었다. 그때 우연히 군포중학교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추천이 오는 계기가 되어 사회환원과 인연이 되었다. 그는 분기별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기업의 사회환원을 시작했다. 학교 측에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전달하며 기업인으로서의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그후 그가 거주하는 지역의 새마을부녀회, 동사무소 등에 소외계층을 위한 쌀 후원을 시작하여 따뜻한 공동체만들기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부인이 먼저 주민자치위원활동을 하다 교회와 가정에 더 충실하기 위해 남편을 추천해 금정동주민자치위원회와 인연이 됐다. 그는 주민자치위원으로서 시민체육대회, 주민단합대회 등에 언제나 후원에 앞장섰다.
그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자 군포노인복지관에서는 후원회장과 운영운위회 부회장을 맡아달라는 권유로 각각 10년, 5년 이상 맡아오고 있다. 6.25참전유공자회 군포시지회 안보결의대회마다 화장품을 선사하며 노병들의 안위와 건강에도 그의 정성이 항상 같이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장애인학생들에게 장학금 전달, 탈북민 후원, 금정동 이웃돌봄 등 수많은 후원사업에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 또한 기아대책 이사, 군포시새마을회 이사 ,
군포시수도물평가위원회 부위원장, 지역사회협의회 금정동 위원장, 금정동 지역참여예산위원장, 군포시지역참여예산위원 등을 역임하거나 맡고 있어 든든한 언덕이 되어 주고 있다.
가정과 회사, 사회에 모범을 보인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장로로서 책무도 다 하고 있다. 그는 교회에서 어떠한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청년부장, 사회봉사부장까지 맡아 올바르고 곧게 성장하도록 청년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있으며 지역 소외계층을 위해 교회에서의 사역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의 헌신적인 봉사로 인해 대한민국나눔대상 수상, 군포시민대상 표창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복지부장관 표창장 등 많은 표창장 등이 그의 노고를 녹여주고 있다.
그는 록펠러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십일조를 근본으로 하는 삶과 은퇴 후 거액의 기부금으로 시카고대학과 록펠러재단을 세워 인재양성, 병원·교회·학교 등 사회사업을 한 그의 사회환원사업을 늘 존경한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간직하라고 일러주고 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을 지탱해주고 미래를 인도하는 것이 오직 희망이라며 자신의 경험을 말해 주었다.
사업이 안정된 이후부터는 돈에 욕심을 내지 않고 모으지 않았다는 이화용 회장, 그는 누가 먼저 요청하기 전에 누구에게 먼저 따뜻한 온정을 줘야하는지 걱정을 먼저 한다고 한다. 어떠한 후원을 해도 평상심을 잃지 않으며 공감대를 만들어 주는 그의 기업가 정신은 부인의 내조 덕이라며 아내의 고마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이화용 회장의 부부가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도 아름다운 선행과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약력
강원도 화천군 출생
영은교회 장로
군포시 노인복지관 후원회장
기아대책 이사
군포시새마을회 이사 역임
군포시수도물평가위원회 부위원장
금정동지역사회복지협의회 위원장
금정동 지역참여예산위원장 역임
군포시지역참여예산위원회 위원
군포노인복지관 운영위원회 부회장
금정동이웃돌봄 단장
국회의원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대한민국나눔대상 수상
군포시민대상 선행부분 봉사대상
경기도지사 표창장
복지부장관 표창장
주식회사 이너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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