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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청백리의 표본을 세운 백남규 전 이사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21일

ⓒ 경기헤럴드

 순간의 지혜를 가지고 매사를 처리한다면 그 일은 빙산의 일각이고, 오직 진실된 마음으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갈 수 있도록 공익을 우선하여 일한다면 지역사회 발전은 물론 온전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백남규 군포새마을금고 전 이사장.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새마을금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청백리로 존경을 받고 있다.

자수성가의 모델이 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김제 외곽의 광활한 평야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와 가까이 바다가 인접해 있는 자연환경은 어린 시절 그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베풀 줄 아는 인성을 갖고 자라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다.
부친은 농사로 가계를 책임져 늘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인자한 마음으로 그에게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셨다. 모친은 많은 식솔을 위해 품을 팔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억척같은 생활로 그의 생활에 교본이 되어 주셨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6년간 내내 반장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리더십을 돋보이며 활발하고 똑똑했던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과 30리가 넘는 중학교까지 거리가 부담이 되어 중학교의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신 집안의 농사를 도와가며 틈틈이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여 어느 특정한 분야에 편중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을 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한학은 물론 전문 지식까지 섭렵한 그는 박식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19세에 고향을 등지고 외지에서 돈을 벌겠다고 방황하다 모든 것을 잊고 군에 입대했다. 다행히 군부대에서 회계 관계 업무를 맡게 되어 그 곳에서 회계사무와 그에 따른 업무처리는 그에게 긍정적인 사고를 키워주었다. 전역 후 부모와 형에게 생활개선을 하면서 사업을 하자는 논의 끝에 대전유성에서 생활하는 사촌형의 주선으로 연탄공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경험이 부족했던 그에게는 3년만에 사업을 접게 만들었다. 이 철도국 서울 보선사무소(지금의 철도청)에 공채로 합격해서 철도청에 근무하게 되면서 군포에 정착하게 되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직장생활이었지만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7년 만에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다행히 당시는 기간산업 부흥기여서 건축 사업은 호황이었다. 어려서 고향에서 집짓는 일을 많이 경험 한 그는 건축사업에 뛰어들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는 만족할만한 사업성과를 올리며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하며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힘이 되기 위해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열게 되었다.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진 일은 자신과 같이 고향을 등지고 객지로 떠나와서 외로움을 당하고 있는 향인들의 애환이었다.

도전과 희망의 정신을 주다.
고향 지인들과 함께 군포시호남향우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는 “향우회 조직은 어떤 지역적인 파워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향인들이 서로 만나 외로움을 달래고 애경사를 당했을 때 서로 돕고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호남지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을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진실한 생활을 하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자!”라고 외쳤다. 그리고 향우회원들과 함께 지역사람들에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내기, 벼 베기 등 지역봉사활동을 전개해서 주민들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그렇게 향인들의 외로움을 달래가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앞장섰던 향우회는 더 큰 지역화합의 장을 만들어 가는데 크게 기여했다. 향우회보다 더 큰 지역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민화합을 위한 조직을 만들자는 어느 지인의 뜻에 따라 군포시민연합이라는 단체를 창설했다. 그는 회원 향우회의 만장일치로 초대 군포시민연합 회장을 맡아 편견과 불신이 없는 군포시만들기에 앞장섰다.
바쁜 와중에도 그가 빠지지 않고 사회봉사에 참여한 것이 청년일자리창출과 주례였다. 그의 나이 41살부터 78세까지 취업알선 2,000여 명, 주례를 3,500쌍을 해 주었으니 그의 사회봉사가 얼마나 정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지역봉사활동을 하는 와중에, 활성화가 되지 않은 군포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는 농협과 국민은행 등 제1 금융권을 선호하던 시대라 새마을금고 운영은 보통 내공으로는 운영이 어려웠다. 직원들과 함께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문서상으로 뚜렷한 증거가 있는 채권 200여만 원을 어렵게 회수해서 그것이 종자돈이 되어 새로운 군포새마을금고로 탈바뀜하게 됐다.
재정이 어려운 금고를 위해 문전걸식하다시피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예금을 유치하고 시장이나 도로변의 상점을 순회하면서 노력한 끝에 새마을 금고는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서 3년 만에 3층짜리 건물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직원들과 합심하여 전국 모범 새마을금고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군포새마을금고의 재건은 모든 직원들의 공이라는 그의 사고는 일반인과 차이가 있어 보였다.
군포새마을금고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그는 금고의 자산이 늘어나면서 이익이 창출되어 회원들에게 이익배당이 시작되자 다시 투자와 예금이 증가되었다. 이렇게 늘어난 금고의 이익이 모두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의 덕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익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35년 동안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이익의 환원은 물론이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학생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하여 50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한편 1998년부터 2019년까지 불우한 가정 6,382명에게 사랑의 좀도리 쌀 102,160㎏을 전달하는 등 빈민구제 사업에도 모범을 보여 이웃과 늘 함께하는 새마을금고 상을 세웠다.

청백리상을 세우다.
그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군포시의회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기고 했다. 그는 지역의 낙후된 지역과 지역발전 대안을 제시하여 많은 공무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을뿐만 아니라 군포시의정회 의장을 맡아 시의원의 사기진작과 소명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그는 평화통일자문위원 상임의원, 군포시 한국통신 고객대표 의장, 군포시의정회 의장, 군포시 시정발전위원, 전국 자전거타기 운동본부 사업본부장, 노무현대통령 선거대책 제2금융권 수석부원장,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서민금융지원단장 등을 역임하면서 단체의 목적에 맞는 활동을 전개하였고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을 하지 않는 청백리 표본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청소년 선도와 체육증진을 위해 수원검찰청 소년소녀선도위원, 군포의왕교육지원청 정화위원, 군포초등학교 체육진흥 초대 위원장 등을 맡아 교육환경개선에 기여했다. 그리고 군포시교통장애인협회, 군포시장애인복지회,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고문 등을 맡아 장애인복지증진에 기여하여 군포시장애인봉사대상을 받았을 분만 아니라 장애인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복지증진에도 동참하여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군포시노인회 등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군포시장 표창장, 경기도경찰청 청장 감사장, 경찰청장 감사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전라북도지사 표창패, 행자부장관상 등 나열할 수 없이 수많은 표창장이 그의 아름다운 행적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가정형편으로 중단한 학업을 위해 중앙대학교 고위정책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여 공부에 대한 한을 풀기도 했다. 그가 학업에 대한 한이 있을 때는 하모니카를 불면서 자신의 신세를 위로하였지만 군포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취임 이후부터는 정월에 시민들에게 사자성어를 선물로 보내 언제나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확립했고 보복보다는 포용의 정치를 전개해 국가를 하나로 만든 장본인이라며 그의 포용력을 늘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거나 원한을 갖지 않는 타고난 품성으로 만사를 지혜로운 생활과 형이상학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공부는 때가 있으니 젊었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일러준다. 자신이 평생 공부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어 그는 청소년들에게 공부만큼은 어떠한 환경이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힘든데 지역의 화합과 발전을 위하여 실천적 봉사를 아끼지 않고 헌신한 그의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표본이 되었다. 특히 군포새마을금고의 산증인으로서 전국에서 모델이 될 정도로 유명한 군포새마을금고 본점 완공은 그의 업적 중에 최고였다. 이제는 군포새마을금고의 정신적 지주로서 퇴임했지만 전 직원들은 그의 능력과 대인관계를 배우며 시민의 금고, 서민의 금고를 완성한 백남규 전 이사장, 그의 탁월한 능력과 아름다운 행보는 오늘도 군포새마을금고를 찾는 고객과 직원들, 그리고 그의 숭고한 정신을 잇고 있는 많은 시민들이 잊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중년에 갑자기 찾아 온 심근경색에 걸려도 군포새마을금고를 염려하는 마음이 더 컸고 극복 후에는 덤으로 사는 삶으로 간주하고 지역과 사회에 헌신하는 사고는 우리들의 큰 언덕이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약력
전북 김제시 출생
중앙대학교 행정대학교 고위정책과정 수료
안양시흥 호남향우회 창설위원장
군포시 호남향우회장 역임
군포시의회 시의원 역임
수원검찰청 소년 선도위원 역임
평화통일자문위원 상임위원 역임
군포시 시민연합회장 역임
군포시의정회 의장 역임
군포새마을금고 이사장 역임
새마을금고대상 수상
군포시장애인봉사대상
민주연합동지회 감사장
경찰청장 감사장
전라북도지사 표창패
경기도지사 표창장
행자부장관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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