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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와 사제의 롤모델 최수재 신부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2월 13일

 
ⓒ 경기헤럴드


인위적인 행동보다 자연스럽고 조금 촌스러운 행동이 더 많은 진실을 함유하고 있다. 사회를 의식하고 가식적인 모습은 누구에게나 부자연스럽고 부담을 줄 수가 있다. 타고난 천성이 선하고 자연인으로서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안아주는 최수재 신부, 그는 사회복지의 완성을 위해 창의적인 사회복지를 제시하며 실현하고 있다.

경로사상을 익히다.
토착화정신을 기반으로 바실리카양식의 한옥건물인 대한성공회 강화읍성당과 마니산으로 유명한 강화도가 그의 고향이다.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식품 가공업을 운영하는 부친 슬하에서 해맑은 소년으로 성장했다. 강화읍에서 국수 공장을 경영한 부친은 국수를 만들고 남은 재료로 수제비를 모친에게 부탁하여 끓여 어려운 이웃에게 한 끼를 제공하는 경로 식당을 누구보다도 앞서 실행하셨다. 불행하게도 공장 터에 새로운 건물이 건립되어 사업을 정리하고 농사로 식솔들을 책임지신 부친은 성실과 근면의 본보기셨으며 자식 누구에게도 잔소리 한번 없으셨고 자식을 믿은 그런 부친이셨다.
모친은 부친을 내조하면서 지역 어르신과 어려운 이웃에게 늘 봉사로 선행을 베풀어 주셨으며 자식들의 훈육을 맡아 옳고 바르게 성장하도록 해 주셨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심한 병치레를 했다. 모친은 아들을 살리기위해 많은 병원을 업고 다니시며 아들 낫기만 기도했다. 그런 모습은 모태신앙인 성공회가 그의 마음속에 편하게 자리 잡게 해 준 동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학교에 입학해서도 담임선생님의 총애와 개인 교습을 받으며 많은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하기도 했다. 때론 미술을 하기 싫어 선생님 몰래 도망가 혼도 났지만, 대회에 출전하여 받아오는 상장은 부모님들에게는 큰 희망의 선물이었다.
부친의 사업으로 인해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닷가 근처에서 읍으로 이사를 왔다. 바다가 주는 마음의 선물은 그에게 너무나 컸다. 이마 이때 가진 마음이 자연스러운 사상을 갖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학 온 그에게 몇 명의 또래들은 배타적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도전장을 내고 결투를 벌였다. 결국, 상대방은 치아에 상처를 입어 부친은 합의금으로 농토 일부를 정리해야 했다. 그래도 부친은 그에게 어떠한 추궁도 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활동적인 성격으로 조용히 앉아서 작품 활동을 해야하는 미술이 그의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미술을 그만두었다.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토론반에 들어가 사회현상에 대해서 심도 있게 열전을 벌이며 미래의 사회학자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중학교 시절은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기였다. 고등학교에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학도호국단 임원을 맡으며 지도력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특히 인근 여고에서 열린 축제에 초대를 받아 여고 중창단의 공연을 보고 감탄을 받았다. 그는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안, 샤론 중창단이 창단됐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강화합창단이 다시 태동하게 되었고 지역공연, 장애인시설, 복지시설, 교회 등에서 공연을 하였다.

사제의 길로 가다.
우연히 교회에 스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전등사와 보문사를 방문하고 가는 길에 한옥 건물로 유명한 성공회 강화읍교회를 방문하신 스님은 그에게 성직자가 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 주셨다. 그 스님이 바로 법정 스님이셨다. 그는 법정 스님이 저술한 몇 권의 책을 구입하여 읽고 감복을 받았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으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때 합창단 활동이 생각이 나 기드온 동아리에 가입하여 회장까지 하면서 합창단의 활성화에 이바지했으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구속, 훈방되는 등 젊음의 피를 토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사회경험을 하고 싶어 선배의 조언을 듣고 은행원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해나갔다. 하지만 약 1년 가까이 준비하면서 인생의 삶 목표를 재발견하고 다시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므로 사적인 활동이 금지되었다. 그는 성경과 사회학을 병행하면서 자신을 완성해 나갔다.
대학원 졸업 후 대학로교회 전도사로 발령을 받았다. 근처 마로니에공원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벤치에서 잠자는 아이와 엄마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지도하며 새로운 삶이 되도록 했으며, 강동교회에서 부제,사제서품을 받았다. 강동교회는 재개발지역이어서 난해한 문제들이 많았다. 그는 건설사와 협상하면서 주민들에게 좋은 결과를 선사했고 부친처럼 경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하였다.
평범한 삶이 싫었던 그는 주교님을 방문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여 상주하지 않은 양평 연수리 교회로 발령을 받았다. 교회에 도착해 보니 교회가 너무나 낙후되었다. 그는 지역주민과 호흡하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청소년수련관을 설립했다. 또한, 정보화 마을을 운영하기 위해 경기도로부터 지원받게 했고, 교회 소유의 산 12,000여 평에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임대하여 더덕 농사를 위해 농림부로 5억 원을 지원받아 장수마을 지정까지 받게 했다. 여기에 슬로푸드마을 체험장까지 운영하여 약 70억 원의 지원을 받는데 기여했다.
그는 다시 평택으로 발령받았다. 그곳에서 노인요양시설인 성신은빛마을을 설립하고, 평택서부노인복지관 초대관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겸직으로 대안리 교회 관리사제로 발령을 받았다. 대안리 교회에도 상주 신부가 없었다. 그는 서평택지역 나눔과 후원, 복지실천의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위하여 민·관·기업 복지실천 통합운영기구인 서평택나눔실천연합회를 구성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교회 소유의 밭 약 500평이 풀밭으로 변해 있는 것을 새싹채소사업단을 만들고 평택시사회적일자리사업 농업법인(주) ‘평택실버들’ 대표를 맡아 어르신 일자리 창출에 앞장섰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르신들이 매니저가 되고 장애인 친구들은 실무를 맡는 위드커피 4호점을 운영하도록 했다.

사회복지의 롤모델이 되다.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신학과 사회복지를 공부했지만 그는 사회복지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일과 병행하면서 세계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세종사이버대학교 노인복지학과, 한신대학교 사회복지실천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수치심 치유 2급 상담사, 보육교사 2급, 요양보호사 1급, 사회복지사 1급, 캐어 사회복지사, 치매 전문교육과정 수료 등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단순한 성직자로 만족하지 않았다. 사회복지를 위해 평택시노인복지시설연합회 회장, 경기도노인복지관협회 부회장, 경기도사회복지사협회 운영위원, 경기복지거버넌스 제2기 노인복지실무회의 민간회장, 시립오성어린이집 운영위원장, 평택사회복지실천연구회 부회장 등을 맡아 사회복지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노력했다.
그가 근무했던 평택시를 위해 평택복지재단 인사위원, 평택시 치매안심센터지역사회협의체 위원, 평택시 행복나눔본부 운영위원, 평택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 평택시사회복지협의회 운영이사, 평택시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운영위원, 평택시지역사회복지협의체 대표협의체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평택시 사회복지를 한층 더 높이는데 기여했다.
사회복지 이외에도 서평택포럼 부회장, 성신은빛마을 운영위원, 양평군 정보화마을 정보화 지도자, 서평택발전협의회 기획위원회 위원장, 세계성공회 평화대회 준비위원회 운영위원, 안중읍 주민자치위원, 평택시 인구정책위원회 부위원장, 평택국제교류협회 부회장 등을 맡아 사회 전반에 대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군포시늘푸른노인복지관 관장으로 임명되면서 경기도노인보호전문기관 운영위원, 군포시립노인요양센터 운영위원, 군포시사회복지기금운용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다. 특히 군포시늘푸른복지관 관장으로 임명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어르신을 위한 시원한 여름나기 지원행사, 군포도시공사와 복지증진을 위한 MOU체결, 추석맞이 사랑나눔 해피데이, 소나기 바자회 개최, 티브로드 abc방송 원광대병원과 함께하는 군포실버가요제, 에버그린 봉사단, 어르신들게 무료 떡국 선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김성수 주교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김성수 주교는 사재를 털어 장애인생활시설을 만들었고 강화우리마을을 건립하여 장애인가족들의 갱생의 정신을 심어주신 분이라고 늘 본받고 싶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고 일러주고 있다. 자신을 위해 끊임없는 개발은 물론이고 자신의 약력에 자신의 역량을 채워나갈 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어려서 병으로 인해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까지 느낄 정도로 아팠던 그는 회복되어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다. 부모님의 자상하고 이타적인 생활에서 보고 배운 것이 성직자가 가져야 할 덕목을 키우는데 근본이 되어 사회운동가, 사회복지사로서 롤모델이 되고 있는 최수재 신부, 그는 합리적인 사고가 우리 사회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 주는 요소라며 언제나 자연스러운 삶이 이웃을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사제로서 발령받은 곳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개척정신은 젊은이와 우리들에게 미래를 미리 안내해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의 삶에서 보듯이 우리는 언제나 합리적인 사고와 자연스러운 삶을 배우도록 기도해 주고 있다.

약력
강화도 출생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졸업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신대학교 사회복지실천대학원 졸업
대한성공회 청소년수련관 관장역임
성신은빛마을 원장 역임
평택서부노인복지관장 역임
평택시사회복지협의회 운영이사 역임
경기도노인복관협회 부회장 역임
한국노인종합복관협회 이사
경기복지거버넌스 제2기 노인복지실무회의 민간회장
군포시사회복지기금운용심의위원
군포시늘푸른복지관 관장
경기복지거버넌스 유공 감사패(경기도지사)
사회복지 유공 경기도민상 표창(경기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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