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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충효 · 세수인경으로 자원봉사의 롤모델이 된 이경훈 박사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20년 01월 18일
ⓒ 경기헤럴드


대대로 충과 효를 중시하고 사람과 하늘을 공경하라는 가훈을 모태로 언제나 정의롭고 진솔한 삶을 보여주는 이경훈 박사. 그는 젊었을 때 민주화에 투신, 여러 차례 어려운 과정들을 이겨내고 늦깎이로 공부에 전념하여 사회봉사의 롤 모델이 되었다. 지금도 공익활동가들과 지역문제 해결과 다양한 자원 활동을 통한 행복한 마을 공동체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적극적인 사회성을 갖다.
한강을 품고 있는 서울의 교통요지, 노량진이 그의 고향이다. 1남 3녀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출판업을 하시는 부친 슬하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옳고 바르게 성장했다. 부친은 너그럽고 긍정적인 인품으로 주위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교 하는 적극적인 분이었으며 교단 대표로 숭실대학교 이사를 역임하는 등 기독교계에서는 대외적으로 유명하셨다. 또한 기독교 전국장로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외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으로서 교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으셨다.
모친은 부친의 출판 사업을 내조하면서 교회의 권사로서 자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후원과 사랑을 베푸는 일을 마다하시지 않아 자식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되어 주셨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또래보다 키가 컸다. 특히 운동을 잘해서 또래들과 축구시합을 해도 그가 속한 팀이 늘 이기는 등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철없이 뛰어놀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의 가계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노량진 집을 정리하고 서울 변두리인 상계동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논과 밭을 처음 목격한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문화시설이나 주거환경 등이 전과 너무나 달라 집보다는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좋았다.
다행히 학교 축구선수로 발탁되어 전국대회에 출전, 우승을 하며 운동선수로 꿈도 가졌다. 누구보다도 운동을 잘하고 좋아했던 그도 책을 멀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 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어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방학 중에 또래 친구들을 설득하여 서울 남산에 있는 어린이회관까지 걸어 다니며 독서를 하였고, 독서광이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
노량진에서 서울 남산까지의 거리는 초등학생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거리였지만, 새벽에 또래들과 출발하여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책을 좋아했던 그는 나중에 시인이 되고 글을 사랑하는 바탕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체육 선생님이 축구 대신에 키가 크니 배구선수로 뛰라는 조언에 축구를 그만두고 배구선수로 뛰었다. 배구선수로 늦게 출발하여 선후배들 보다 실력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대회에 나가면 주전보다는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 점점 배구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결국 배구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러한 가정환경과 교육환경이 그를 더 빠른 사춘기로 몰아갔다. 부모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부친과 상반되는 생각까지 갖게 됐다. 특히 부친이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천당을 가지 못한다는 말씀에 성장기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왜? 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천당을 못 가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대꾸했다가 한동안 부친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중학생치고는 가치관의 충돌이 일찍 왔다. 반항의 연속이 되던 차에 그가 태어난 노량진으로 다시 이사를 가는 행운을 안았다. 초등학교 때 어울렸던 친구의 조우로 조금씩 안정을 찾고 마음의 안식처까지 찾았다. 다시 교회에 열심히 나가 성가대 활동, 학생회장 등을 하면서 그동안 그를 짓눌렸던 사회의 가치와 종교 가치가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다.
이후 영등포에 있는 성문 밖 교회(도시산업선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빨갱이 교회로 불리던 교회였지만 그에게 진보적 사고를 처음 심어준 곳이었다.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목회자가 만든 교회라 기존 교회의 설교와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그동안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하나님이었다면 이곳에서는 힘들고 고통받는 자들과 노동자들에게 안식과 구원을 우선으로 하는 등 사회성이 강했다.
그도 노동선교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행동을 같이하며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노동선교활동의 대표로 참가한 그는 격렬한 데모로 인해 큰 사고를 당했다. 여러 번의 큰 수술을 받고서야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해진 그는 뒤늦게 민주화유공자로 선정되어 보상을 받게 됐다.
퇴원 후 여러 노동운동가와 정치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청년 김부겸을 알게 되었다. 군포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김부겸을 도와주면서 당선되는데 일조하였다. 그 인연으로 김부겸 의원의 비서관을 하면서 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그러나 김부겸 의원이 대구로 지역구를 옮기면서 그는 자생의 길로 걸어야 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 블랙박스 제조업이었다. 대외 신뢰가 높은 그는 짧은 시간에 영업 확충으로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사실 영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신뢰 구축과 상대방의 일방적인 계약파기 등 그가 있을 곳이 되지 못해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사업을 다시 구상했다. 그의 마음속에 불현듯이 스쳐 간 것이 사회복지와 자원봉사였다.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회복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체계적인 공부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그가 저술한 자원봉사에 대한 논문이 학술지에 개재되어 호평을 받았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전공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군포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으로 임명되어 다양한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우선 군포시자원봉사센터 기반구축 및 자원봉사 활성화에 목표를 두었다. 자원봉사센터의 기본 활동 틀을 재정립하고 단체와 수요처들에게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하여 자원봉사의 인식을 강화하고 청소년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 동아리 육성 및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하는 등 청소년은 물론 성인 봉사자들에 대한 역량강화에 기여했다.
또한 삼성전자와 함께하는 사랑 愛 집짓기, 자원봉사자가 만드는 자원봉사교육, 자원봉사자 리더십아카데미, 시민대학, 이동목욕봉사단 운영과 자원봉사활동 촬영 및 편집, 소식지 발간 등 자원봉사자의 재능 및 취미를 살려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미래의 꿈나무 청소년들을 위하여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여 질 높은 봉사활동 교육과 청소년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청소년 주말농장, 학교순회교육,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에 진행하는 미래의 자원봉사자 육성에도 최선을 다했다.

사회복지의 롤 모델이 되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어르신, 장애인, 와병 환자들을 위하여 12단체 221명으로 이동목욕봉사단을 구성하여 하루 1회 12개 단체가 교대로 이동목욕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동목욕봉사자들을 위하여 케어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하여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격려하기도 했다.
자원봉사 인센티브 활성화인 우수자원봉사자 문화탐방, 소식지 발간(자원봉사활동 소식지 “행복한 사람들”을 연간 6회 90,000부), 자원봉사 홍보페스티벌 등 자원봉사활동을 활성화하고 홍보하기 위한 기획도 그의 몫이었다.
2019년 군포시는 혼합직영으로 운영되는 자원봉사센터를 민간영역에게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진 자원봉사센터로 운영될 수 있도록 사단법인으로 전환하여 그는 군포시자원봉사센터 초대 민간출신 센터장이 되었다.
바쁜 일정에도 어려서부터 글을 쓰기 좋아했던 그는 2007년에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뛰어난 필력으로 신인상까지 받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연구한 ‘지역사회 자원봉사센터 교육프로그램 개선방안 연구’, ‘자원봉사센터종사자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요인 연구’ 등 수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밖에도 한국행정학회 정회원, 한국자원봉사학회 이사, (사)집단지성네트워크 이사, (재)청소년 재단 운영위원, 등을 맡아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원대학 공공정책대학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사회/자원봉사 전공을 개설되었고 그의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하여 겸임교수로 위촉, 후학 지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그는 자원봉사자로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최고의 사회봉사전문가로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그러한 공로로 경기도지사 표창장, 국회의장 표창장,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장 등을 받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제정구 전 국회의원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제 의원은 빈민구제와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개발은 물론이고 그들과 늘 함께하며 호흡한 정치인으로 늘 닮고 싶어 한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책을 많이 읽기를 권장하는 그는 체험과 독서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가 있어 청소년 시기에 적극적인 삶에 도전하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어려서부터 그의 가정은 가족예배를 위해 새벽 5시에 기상하고 아침을 먹는 습관으로 지금도 5시에 기상하여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이경훈 박사, 그는 자원봉사가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를 협치적 과정으로 해결해 나가는 사회적 신뢰의 과정이라며 이러한 과정을 위해 헌신하는 공익활동가들의 노력은 지속되고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어려서 반항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부모님에게 풀 수 없는 한을 드렸지만 뒤늦은 깨우침으로 사회봉사의 롤 모델이 되어 용서와 가훈을 성실히 이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천애인, 세수인경의 가훈으로 자원봉사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약력
서울출생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행정학회 정회원
한국자원봉사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시인
김부겸 국회의원 비서관 역임
(사)집단지성네트워크 이사
수원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주임교수
(사)군포시자원봉사센터장
행정학 박사
민주화유공자
국회의장 표창
경기도지사 표창
행정안전부장관 표창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20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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