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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한 마음으로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안정규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1월 08일
ⓒ 경기헤럴드


시대의 변화에도 바뀌지 않는 정신이 봉사이다. 일시적인 보여주기 위한 봉사는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에게 불행이지만 지속적인 봉사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새마을운동이 좋아서 새마을회에 동참하여 시민들의 정주의식고취와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군포새마을지도자회 안정규 회장. 그는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며 이웃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다.

학생 농부로 칭찬받다.
신산으로 알려진 천관산과 편백나무숲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장흥군이 그의 고향이다.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농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부친 밑에서 자연의 순리를 훈육받으며 성장했다. 부친은 농사로 어렵게 생계를 책임져야 했지만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셨다. ‘남에게 신세를 지지 말라’는 가훈까지 정해 자식들에게 근면·성실한 삶을 영위하도록 주문하셨다.
반대로 모친은 열정과 도전정신이 강하셨다. 가장 먼저 일어나서 집안일을 거의 혼자 하시다시피하셨으며 동네의 크고 작은 일까지 도맡아 하신 여장부셨다. 그리고 어려운 분들이 있으면 솔선수범하여 도우시는 모습을 보고 성장한 그에게는 삶의 모태가 되었다. 더욱이 새마을부녀회 활동을 모범적으로 전개하셨고 집안의 경제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모친의 노력으로 논과 밭이 점점 늘어나 집안은 점차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
1시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는 그가 등하교하면서 자연과 더 친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또래들과 등하교시간은 놀이의 시간이었으며 순수한 동심과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주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린 그는 모친을 도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담배농사, 가마니짜기, 고추농사, 벼농사는 기본이고 소와 돼지의 꼴과 먹이도 그의 몫이었다. 동네 어른들이나 친척들도 어린 아이가 능숙한 농사일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부모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과 장남이라는 책임을 스스로 갖고 집안일을 하게 됐다.
중학교에 입학을 한 그는 부모님을 더욱 더 도와드려야 했다. 억척같은 모친이 돈이 모아지는 대로 땅을 구입해 농토로 바꾸셨다. 점점 늘어나는 논과 밭은 그의 일손을 더 필요로 했다. 겨울만이 그가 독서를 하거나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겨울철이 농한기라 많은 농부들이 쉬는 시기였지만 그는 부친과 함께 가마니 짜기와 새끼 꼬기를 하여 담배농사와 벼농사를 대비해야 했다.
강진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그는 자취를 해야 했다. 평일에도 농사일을 도와야했던 그는 타지에서 늘 가족 걱정이었다. 다행히 쌀과 반찬을 직접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주말이면 고향으로 가 밀린 일들을 마무리 하곤 했다. 농사일로 파김치가 되어서 강진으로 돌아가도 불평이나 피곤한 내색을 일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이 깊었다. 또한 학교수업이 종료되고 시간이 허락이 되는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고아원을 방문하여 청소, 빨래, 환경정리 등 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친이 고생하는 모습과 어린 동생들이 성장하면서 그는 자신을 위한 욕심을 낼 수가 없었다. 경찰관이 평소에 꿈이었던 그는 포기하고 일찍이 사회에 진출하려고 의경에 지원했다. 나중에 경찰관이 되기 위해 의경에 지원했지만 시국사건과 많은 데모진압에 동원되어 긴장의 연속이었다.

기업가로 변신하다.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년시기에 국민과 시민, 학생들과의 대립되는 현장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방송에서 연속되는 시위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은 노심초사였다. 시위자와 경찰, 의경들도 다치는 보도가 많다보니 부모님들의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기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경찰의 꿈을 접고 전역 후 직장인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됐다.
그가 입사한 회사는 전자회사였다. 그는 영업부로 발령을 받았다. 처음 진출한 사회에서 영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부친을 닮아 조용하고 내성적인 그에게는 대인관계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 직장동료들과 영업을 다니면서 영업의 노하우를 터득하고 난 후부터 당당한 영업인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성장을 하자 교육이 문제였다. 가정형편으로 대학을 포기한 그는 자식들에는 그 멍에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영어열풍이 불고 영어를 못하면 인생도 좌절된다는 의식이 강했던 시기라 그도 자식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안사람과 상의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 낯선 미국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2년여 정도 되었을 때 미국의 거지가 그에게 1불만 달라는 요구를 했다. 거지는 당당해도 너무 당당하여 그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그 거지가 영어를 너무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고 어디에서나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 사업을 모색하던 중에 교보문고에서 한 권의 책을 보게 되었다. <24시간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는 제목의 책이었다. 당시로는 기막힌 사업이었다. 그 다음 날 그는 소위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구상하고 선배가 생산하는 화장품을 모델로 삼았다. 지금은 힐링 상품과 그의 브랜드 이름으로 제조하여 판매하는 회사로 육성했다.
어느 정도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한 지인이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해 보라고 권유를 하여 처음 봉사에 동참한 것이 안양경안로타리클럽이었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열손가락 지체장애인단체에 후원, 장애인주간보호센터 지원, 배식봉사, 고등학생 장학금 지원 등에 동참하고 있으며 캄보디아에 보건소를 건립하는데도 일조했다.
그 후 지인이 운영하는 마실봉사회에 가입하여 주민들의 위생관리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당시 군포지역에는 약수터가 많아 시민들이 이용을 많이 했지만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약수터 주변 청소, 표주박 설치를 하여 시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약수터를 찾게 했고 어르신들을 위한 영정사진 촬영에도 동참했다.
범계중학교 운영위원회 지역위원으로 추천을 받아 학교발전과 청소년선도 등 자신의 역량을 학교발전에 기여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늘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을 옆에서 지켜본 군포새마을회 서정규 회장이 군포시새마을회에 추천하여 군포새마을회와 인연을 갖게 됐다. 그는 군포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역동적인 새마을회가 되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사실 어려서부터 모친이 전개한 새마을운동을 보고 성장했기 때문에 새마을회가 잠재적으로 친숙해져 있어 흔쾌히 가입하게 됐다.
산업화로 인해 잊어가는 민속놀이의 계승과 회원들의 화합을 위해 매년 동별로 개최되는 척사대회를 군포새마을회가 중심이 되어 군포시 11개동 연합으로 개최되도록 일조하여 윷놀이는 물론 제기차기 기타 민속놀이가 계승되도록 했다.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다.
새마을회의 자산은 정신운동이다. 매년 연수를 통해 사회봉사자의 명분을 갖게 했으며 새마을운동의 정신이 퇴색되지 않도록 솔선수범을 하여 모범 새마을회가 되는데 노력했다. 또한 매년 국토청결운동을 실시하여 수리산 일대 환경정화와 환경보호운동, 감투봉과 능내정으로 가는 등산로에 고사된 나무 제거하기, 쓰레기 청소, 산불조심 현수막 설치 및 보수, 반월호수 일대의 청결운동 등 군포시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의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회원들과 정화운동을 전개했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소외계층과 독거어르신들의 겨울나기가 그에게는 걱정거리였다. 군포시새마을회, 새마을지도자회, 새마을부녀회와 함께 군포시청에서 배추 1만포기를 김장하여 김치박스에 담아 각 동에 배분, 독거어르신이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되도록 일조했다. 그 외에도 평화나눔운동 반찬만들기 사업에 동참하여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사업으로 월 2회 실시, 군포시 11개동 주민센터와 연계하여 차상위계층 가정에 지원하는데 참여하고 있다.
설이 되면 설 맞이 사랑이 가득 담긴 만두만들기를 실시하여 어려운 가정에 만두와 떡을 전달하는 등 따뜻한 이웃만들기에 언제나 앞장섰다. 특히 새마을회는 이웃돕기 바자회를 실시하고 있다. 행사에서는 건강식품, 생활용품, 의류, 신발, 기호식품 등의 노점을 열어 장사를 실시하고 군포시새마을회에서는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요기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바자회의 수익금은 추후 이웃돕기사업을 전개했다.
여름철에는 휴경지에 감자를 심어 회원들이 순회하며 관리하고, 수확한 감자 판매 금액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의미있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회원들을 격려하며 동참하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가운데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효도잔치를 개최하고 있으며 ‘독거어르신 칠・팔순 효도잔치’를 개최, 저소득 독거어르신에게 자식대신 효행을 전개하여 지역에서 칭송이 자자하다.
그는 모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모친은 부지런함은 물론이고 책임감이 강하여 가족중심의 행복을 만들어 주신 분이었다. 그 외에도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가족처럼 섬기는 자애심이 너무 크기 때문에 모친의 삶은 그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또한 이웃을 생각보다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셔 모친 주위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가 올바른 사회생활과 한 번 몸담은 단체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모친의 훈육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생각에 머물지 말고 실천으로 옮기라고 일러주고 있다. 많은 생각으로,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해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경험을 말해 주고 있다.
부모님에게 걱정거리 하나 주지 않으며 성장했고 동네에서 효자로 소문났던 안정규 회장, 그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지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만 집중적으로 전개하며 책임을 완수하고 있다. 타고난 인품이 본래 선한지라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자신이 더 아파하는 애민사상을 가진 그는 경쟁과 이율배반적인 삶보다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약력
전남 장흥군 출생
마실봉사회 이사
경안로타리클럽 이사
범계중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가가몰 대표이사
군포시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20년 0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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