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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통한 교육으로 제자들의 미래를 만들어 준 이용길 선생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12월 31일

 
ⓒ 경기헤럴드


4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초등교육에 헌신하여 학생들의 마음의 등불이 되어 한 평생을 살아온 이용길 선생. 그의 집에는 ‘세상은 넓게 보고 마음은 밝게 하고, 희망은 크게 품자’라는 가훈이 걸려있다. 가훈처럼 지난한 시간들을 제자들과 함께해 온 이용길 선생은 인내, 끈기, 희망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교육자의 진정한 삶을 실천해 오고 있다.

어린 가장이 되다.
그는 지금의 북한 행정구역인 함경북도 김책시로 알려진 함경북도 성진시에서 출생하였다. 8.15 광복 후 그의 선친은 월남하여 부산에서 첫 거처를 마련하였다. 6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경찰공무원인 부친의 엄격한 교육으로 어려서부터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생활을 해야했다. 부친 스스로 청렴한 공무원생활을 바탕으로 가족들의 생계는 물론 지역의 치안까지 책임지는 책임감을 자식들에게 몸서 보여주셨고 자상하고 인자한 모친은 자식들의 거울 자체였다. 모친은 많은 식솔들의 생계와 교육을 부친과 늘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처하여 많은 자식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토양이 되어주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한 그는 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때부터 한자가 포함된 신문을 읽을 정도로 머리가 뛰어났다. 피난시절에도 부친은 그에게 언제나 독서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신 덕분에 또래보다 월등한 정서함양을 할 수 있었다. 더욱이 6.25사변으로 인해 피난처였던 부산은 교육환경이 가장 열악했지만 부친은 그에게 공부만이 미래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켜주셨다.
책임감 있고 근면했던 그에게 6학년 담임선생님은 부모님 이상으로 큰 언덕이 되어주셨다. 당시 성적이 중상 정도의 성적이던 그에게 헌신적인 사랑과 교육으로 지도해 주셨다. 그 결과 제자인 그는 선생님에게 부응하듯이 불과 6개월 만에 기말 일제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는 성과를 보여 스승의 헌신과 은혜에 보답하였다. 이후 전쟁이 끝난 후 그의 가족 모두 서울로 돌아와 용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용산중학교에서 전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 현재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인 이부영 등과 함께 친밀하게 교류하며 동문수학하였다.
그러나 중학교 졸업을 앞둔 3학년 그는 첫 번째 큰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그의 인생의 등불과 같은 부친이 갑자기 급환으로 별세하여, 홀로 된 어머니와 함께 6형제의 장남으로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된 것이다. 이 시기에 가족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신문 및 우유배달, 회사의 사환 등 여러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하여 당대 명문인 용산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6형제의 장남으로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낮에는 학업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였고,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늦은 밤까지 경제활동을 하며 장남으로서 책임과 어머니를 돕는 극진한 효심을 가진 아들의 삶을 영위하였다.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다.
당시 최고 수재들이 모인 용산고등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그는 어려운 경제적인 환경을 극복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과 서울교육대학교에 모두 합격하였다. 서울대학교를 나와 수의사의 삶과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 후 교육자의 삶을 고민하던 어느 날 밤 그는 10여년 전 부산 피난 시절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을 교육하시면서도 항상 미소와 격려를 잃지 않았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마음속에 깊이 투영되었다.
가정생활과 경제적인 면에서는 수의대로 가는 것이 유리하지만, 자신을 지켜보던 선생님들의 그 헌신적인 모습이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았다. 당시 서울교육대학교는 서울사범대학에서 개편 승격하여 서울교육대학교로 처음 입학생을 맞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등 교육의 큰 뜻을 품고 서울교육대학교 1회생으로 입학을 결심하였다.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한 그는 교내 한글연구 동아리와 아동교육 연구회에 가입하여 교우들과 어린이 교육에 대한 연구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울교대 졸업 후 육군에 입대하여 병역의무를 수행하면서 동료와 전우들에게도 항상 어렵고 힘든 일을 먼저 솔선수범하는 병사로 많은 귀감이 되었다.
전역 후 그는 서울 구로남초등학교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하여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근검절약’, ‘체력은 국력’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기로 은평구 자택에서 버스비를 절약하기 위해 10km가 넘는 구로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였다.
근무 교사 중 가장 먼 거리에서 통근하는 선생님이었지만 학교에는 가장 먼저 출근하여 수업 준비와 학생들을 돌보는 교사로 유명하였다. 그가 교직에 재직하면서 집안의 생계와 동생들의 교육에 숨통이 트였다.
신사초등학교 재직 시절에는 학생들의 인성지도 및 선도, 상담교사로 겸임하였다. 어느 학교에서든 환경이 열악하여 일부 학생들이 임의로 가출하거나 결석하는 사례가 많았다. 일부에서는 일탈되는 경우도 있고 수업료가 없어 학교를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어느날 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담당 경찰관이 학생들이 부모보다 선생님을 먼저 찾는다는 연락이었다. 대부분 학교나 선생님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그 학생들은 달랐다. 그는 이 사건 이후부터 학생들로부터 부모보다 먼저 찾을 만큼 신뢰와 존경받는 스승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북가좌초등학교, 장위초등학교로 전근하여, 시청각 교육 담당 업무와 담임교사로 학생 수업과 지도에 헌신하였다.
그가 학내에서 연구부장, 교무부장 교사로 학교 업무와 학생지도를 수행하면서 서울 초등교육 발전에 많은 성과와 결실을 거두게 된다. 특히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상담, 과학교육 부문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하였으며, 인성지도 교사로 많은 학생들의 학업 곤란과 심리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다.

우리들의 스승으로 존경받다.
이러한 공로로 서울 연은 초등학교 근무 시 서울특별시 교육감 표창으로 시작하여, 재직 기간 내 무려 3번의 서울특별시 교육감 표창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후 재직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초•중등학생 선도활동에도 앞장서서 학내 폭력, 안전사고 예방과 봉사 등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공헌을 인정받아 서울특별시장 표창을 받았다.
또한 독실한 신앙인으로 평일에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교육하고, 주말과 일요일에는 교회와 지역사회의 불우 청소년지도를 하는 교회학교 교사로 하루도 쉬지 않고 교육과 인성 지도에 노력하는 삶을 실천하였다. 이후 그는 한국교총 총회장 표창,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여, 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과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교육자로 대내외로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42년 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을 수훈하였다. 퇴임 후 대중교통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 갑자기 젊은 청년이 하차하던 정류소에 함께 내리면서, 인사하며 찾아왔다고 한다. 그 청년은 무려 15년 전 지도했던 어린 초등학생으로 그를 통해서 학업의 동기부여를 받고 성장하여 유명 언론사에 근무하게 된 기자였다. 그 제자는 공부에 등한시 했던 자신이 선생님의의 인성 교육에 감명과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면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그에게는 현직에서나 퇴임 후에도 교육자가 천직이었다. 그 오랜 기간동안 교직에 몸 담고 퇴임 후에도 청소년 선도자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또한 교원 연금액 중 일정액을 매월 사회봉사 단체에 지원하고, 교회와 지역사회의 불우 청소년의 선도와 상담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적지 않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요양보호사와 특수교사 자격증을 활용하여 특수아동과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그는 교육자로만 만족하지 않고 성남시 장년부 테니스회 회장, 예수사랑교회 청소년부 부장, 경기요양보호사협회 분당지역 회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고모인 이영숙 코모도호텔 그룹 회장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이영숙 회장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회장 출신으로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부산, 영남 지역의 현대적인 호텔사업을 선구적으로 시작한 사업가이다. 이 회장은 가족과 친지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모성애로 인자한 생활을 보여줘 늘 본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회장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6형제를 친아들처럼 거두어서 그와 형제들이 학업을 마치고, 교육자와 사회인으로 자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으로만 각인되는 것이 아니라 삶자체의 모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어린 학생들과 청소년들에게 인내, 끈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하여 성장하는 미래세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의 교육과 성장만을 위해 한 평생을 다한 이용길 선생은 지금도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 끈기, 희망’의 교육철학이 42년을 자신과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일찍이 자신의 미래였던 부친이 타계하여 모친과 다섯 동생들의 생계와 교육을 책임져야 했던 어린 중학생이 하늘이 준 고난을 극복하고 우리 교육계의 거목이 된 것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훈육과 언제나 자식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사회로부터 받은 것 이상으로 환원하며 진정한 스승으로서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한 장애인 제자들을 위해 특수교사 자격증을 그리고 어르신들의 노후를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취득을 하며 사회의 큰 언덕이 되어 준 그의 자취는 만인이 언제나 그리워 할 것이다.

약력
함경북도 성진시 출생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초등 특수교사 자격 취득
서울 초등교육 과정 새교실 집필위원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성남시 장년부 테니스회 회장
예수사랑교회 청소년부 부장
경기요양보호사협회 분당지역 회원
서울특별시 교육감 표창 3회 수상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 회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수상
교육부 장관상 수상
황조근정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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