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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결백의 정신으로 청백리 상을 세운 한상돈 회장님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28일
ⓒ 경기헤럴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정직은 평가의 기본요소이다. 공무원으로서 청렴결백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역에 최선을 다해 해당 장관표창장을 4번이나 받을 만큼 책임감이 강한 한상돈 회장. 공무원을 퇴임하고 3,600시간이 넘는 봉사활동을 전개한 그의 성품은 청백리의 표본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효행을 몸으로 실천하다.
서울시 종로구에서 12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성장했다. 형들과 동생들도 언제나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예의범절이 바른 집안으로 소문이 날 정도로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
부친이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청렴결백을 자식들에게 훈육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려운 이웃에게 선행과 박봉의 월급으로 12남매를 반듯하게 교육을 시킨 모범 가장이었다. 공무원 퇴임 후에도 부친은 남양주시 노인회장으로 봉사를 전개하시곤 했다. 모친은 자식들에게 회초리 한 번, 잔소리 한 번 하시지 않으면서 곧고 올바르게 자식을 잘 키우셨고 어려운 분들에게는 고추와 곡식 등을 나눠주며 따뜻한 이웃만들기에 앞장 서셨다. 더욱이 조부가 이조참판을 하시면서 나라에서 하사받은 산 3천평에 조상을 모시고 농사지으며 부친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다.
그가 세살이 되던 해에 부친이 경기도 남양주시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남양주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 번 들으면 잊어먹지 않는 명석한 그는 항상 성적이 우수했다. 손위의 형들은 교육공무원으로 발령받아 일찍 고향을 떠났어도 동생들의 미래를 위해 많은 책들을 집으로 보내준 덕분에 그도 많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밭에서 홀로 일하시는 모친을 도와야 했다. 비록 셋째지만 장남의 역할을 해야했다. 또래들과 뛰어놀 나이지만 마음이 성숙한 그는 소꼴베기와 밭농사를 얼마나 잘 했는지 동네 사람들은 효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어려운 친구에게는 모친에게 허락을 받고 채소와 쌀을 건네주며 우애깊은 교유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중학교는 그의 집에서 20리나 떨어져 있었다. 3년 내내 걸어다니며 지각이나 결석 한 번 하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집안의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했다. 가축 기르기와 나무하기 등 자생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집안에서는 서울로 유학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에 그는 서울 성동고에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서울에 형이 있어 생활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형도 오직 공부만 하라는 격려와 주말에 고향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 공부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 부모님과 형들도 법조인이 되면 좋겠다는 조언에 서울법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1차에서 낙방을 하고 말았다. 12남매라 다시 재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사립보다는 국립이나 공립대학교를 가야했다. 결국 후기인 서울시립대학교에 응시하여 합격을 했다.

청백리 상을 세우다.
우애가 깊었던 형들은 그의 학비를 책임져 주었다. 대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해결해야 했다. 4년 내내 학생을 지도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학창시절의 꿈인 동아리활동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지원하여 군에 입대했다. 당시 월남파병을 모집하고 있어 그는 부모 몰래 지원하여 월남으로 파병되었다. 남들은 월남가면 다 죽는다고 힘없고 권력없는 사람들만 간다고 아우성이 높았을 때 그는 세계평화수호라는 명분하에 지원 입대한 것이었다.
그는 투요하 9이동외과 병원에 배치되어 부상당한 전우의 치료와 정신적 힐링까지 해 주며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 후 의정부에 있는 제사공장에 취업이 되었다. 서울서 의정부까지 출퇴근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도 보이지 않았다. 1년 만에 퇴사를 하고 공무원 시험준비를 시작했다. 시험준비 1년만에 국가공무원 7급에 합격하고 국립농수산물검사소 발령을 받았다.
그가 맡은 업무는 종자검사⋅농산물 원산지 단속이었다. 단속원들은 업주들로부터 언제나 유혹의 손길이 뻗어 있었다. 그는 어떠한 유혹에도 현혹되지 않고 원칙대로 업무를 수행했다. 소위 그는 업주들의 저승사자와 같았다. 많은 실적으로 농산물 원산지 불법이 근절되어 장관 표창장을 받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쌀까지 수입이 되자 국립농산물검사소는 더 바빠졌다. 국산쌀보다 몇 배 저렴한 쌀이 일부 업주들의 농간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 그는 중국으로 출장을 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부조리가 발생되지 않게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그 후 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평택안성시 출장소 소장으로 승진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농산물 품질인증 농가 증대, 농산물 수매검사,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안전성 조사강화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여 한겨레신문에서 농산물 품질인증제도를 조명하기도 했다. 또한 태풍 사오마이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벼세우기 자원봉사 등 농민우선정책과 지원사업을 전개하여 청백리의 상을 세워나갔다.
공직자로서 한 방향만 보고 달려온지 35년이 되어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국가공무원 3급으로 퇴임하면서 그동안 농림수산부장관 표창장 4회, 녹조근정훈장 수여 등이 그의 공직생활이 얼마나 모범적이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다.
퇴임후 과천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사회에 봉사를 처음 시작한 그는 서울대공원 과학관 안내, 과천시 소재 도서관 관리 등 전임 공무원이라는 자체를 잊고 평범한 시민으로 봉사를 전개해 나갔다. 마침 과천독거노인들을 위한 봉사에 참여했었다. 일방적인 후원보다는 맹지를 활용하여 생산적인 후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인근에 300평 땅을 빌려 그곳에 고구마와 채소를 심었다. 생산된 고구마와 채소는 어르신들의 곡기해결에 도움이 되었고 회원들과 후원금을 조성하여 점심제공 등 목민의 정신을 이어갔다.
퇴직후 공무원 아파트에서 나온 그는 군포시에 있는 아파트로 입주했다. 국립농수산물검사소가 안양시에 있어 군포는 낯설지 않았다. 지인들도 많이 있어 어느 도시보다 포근했다. 군포시월남참전전우회의 한 동지가 모임에 가입을 권유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얼마후 회장으로 추대되어 회원들의 복지증진에 최선을 다했다. 국가에서 전투수당을 겨우 10%밖에 지급하지 않은 것을 파악하고 하병렬 군포시 6.25유공자회 회장과 함께 참전수당을 받도록 추진했고 더불어 참전비도 세울 수 있도록 추진했다.

사회봉사자로서 존경받다.
열악한 전우회는 각종 출장이나 집회에 참가할 때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묵묵히 자비로 충당하며 전우들의 복지와 권익을 위해 헌신한 결과 참전수당과 참전비를 세우는 쾌거를 가져왔다. 또한 땅 200평을 임대하여 과천에서와 마찬가지로 독거어르신을 위해 고구마를 심어 자생적 지원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이후 군포시재향군인회에서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와서 회장을 맡게 됐다. 회장을 맡고 보니 다른 단체에 비해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지원받도록 했다. 공무원과 일부 단체에서는 재향군인회가 보훈단체가 아니라는 것이 인식되어 있어 더욱더 그를 힘들게 했다.
그는 자료를 수집하고 담당공무원과 일부 단체에 재향군인회가 보훈단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군포시에서 건설중인 보훈회관에 입주할 수 있도록 설득, 완공후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단체나 지원비가 부족하다보니 조직활성화도 미흡했다. 그는 군포시재향군인회 조직활성화를 최우선으로 하여 여성회까지 애경사를 챙길 뿐만 아니라 여성회와 함께 일일찻집을 전개하여 이웃돕기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과천시자원봉사유공자 표창장, 군포시자원봉사유공자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과천시장 표창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대한민국베트남참전유공회장 표창장, 대한재향군인회장 표창장, 대한재향군인회 공로휘장 등의 그의 노고를 덜어 주었다.
지금까지 3,600시간의 봉사활동으로 경이적인 기록을 쌓은 그는 제18차 IAVE세계대회 스페인 바로세롤라에서 개최된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기회를 얻었다. 전국 자원봉사자 중 22명이 선발되어 가는데 그는 당당히 선발되어 대외적으로 한국홍보와 우수봉사자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최초 흑인대통령이 되어 노예제도를 척결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에이부러햄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차별 없는 세상을 지금보다 앞선 세상에서 추구해 온 링컨이야말로 우리시대에 필요한 정신을 주고 있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서둘지 말고 꾸준한 노력이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일러주고 있다. 과도한 욕심은 꾸준한 노력이 없을 때 생기는 것이라 언제나 자신을 위해 피해야 한다고 경험을 말해 주었다.
그는 공무원을 시작하자마자 형님댁에서 나와 서울 강남의 지하셋방에서 시작한 후 국가에서 마련해 준 임대아파트에서 퇴임할 때까지 생활했다. 퇴임후 군포시의 아파트에서 거주하다 몇 년 전에 자신의 소유 두 번째 아파트를 마련한 그의 생활은 청렴자체였다. 공무원으로서 청백리상을, 시민으로서 모범을 보인 한상돈 회장이야말로 이 시대의 거울이다.


약력
서울시 출생
서울시립대학교 졸업
월남참전전우회 군포시 회장 역임
과천상록봉사단 고문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군포시 회장
경기도민회 자문위원
군포시통합방위협의회 위원
과천시자원봉사유공자 표창장
군포시자원봉사유공자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과천시장 표창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경기도 우수봉사자 선정
대한민국베트남참전유공회장 표창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표창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공로휘장
농림수산부장관 표창장 4회
녹조근정훈장 수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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