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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으로 젊은이의 롤모델이 된 김성제 전 의왕시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06일
ⓒ 경기헤럴드

도전과 미래에 대한 열정은 청년들이 지녀야 할 호연지기의 기본이 된다. 자신의 목표를 향한 무한한 도전은 비록 실패를 경험한다하더라도 아름다운 일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포기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7전 8기의 정신으로 행정고시 합격과 박사학위를 취득, 지자체 단체장으로 출마하여 성공한 김성제 전 의왕시장. 그는 도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을 주는 것인지 젊은이들에게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린 정의의 사자가 되다.
녹차와 벌교꼬막축제로 유명한 전라남도 보성군이 그의 고향이다.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교육자이신 부친 슬하에서 예의범절이 바른 아이로 성장했다. 교장으로 퇴임한 부친은 전형적인 선생님이었다. 퇴임 후에도 많은 제자들이 부친을 찾아 인사를 드릴 정도로 교육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제자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은 분이었다.
반면에 모친은 열정이 넘친 분이었다. 추진력과 친화력이 강해 지역에서 여장부로 알려졌으며 다양한 사회활동과 봉사활동으로 지역주민들로부터 많은 신망을 받으신 분이었다. 그는 모친의 성격을 많이 닮아 어려서부터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강했다고 한다.
시골고향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낸 후 부친이 광주로 발령을 받아 가족들도 광주로 이사를 가야했다. 광주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크고 힘이 강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닭싸움과 박치기는 그를 당할 친구들이 없었다. 특히 태권도로 단련된 강인한 힘과 함께 또래들로부터 의리의 친구로 통해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그림 그리기와 같은 예능에도 뛰어났다. 조선대학교 총장배와 전라남도 교육감배 미술대회에 출전하여 많은 입상을 했고 만화 그림을 잘 그려 또래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또한 리더십도 강하여 그는 친구들의 추천으로 반장을 도맡아 했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당당한 골목대장이었다. 언젠가 같은 반 아이가 여러 명에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혼자 뛰어 들어가 그들을 제압하면서 친구들로부터 일약 스타가 되기도 하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공부보다는 대외적인 활동에 관심이 더 많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하며 점심시간에 각 교실을 돌며 유세를 하였다. 의리하면 김성제로 통하던 시절이라 무난히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선후 약 2,000여명이 모인 전교생들 앞에서 소감 인사를 할 때에는 긴장이 되어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고 한다. 전교 학생회장 선거는 어릴 적 처음 선거 경험이었지만 나중에 시장 선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교 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학교 선생님들에게 전달하고 대외적으로 학교를 대표하여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더욱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어릴 적 성격이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학내에서 어떠한 구타나 폭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안관 역할을 자처하면서 소위 왕따가 없는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타고난 머리가 있어 시험공부를 집중하면 상위권을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영어가 늘 문제였다. 영어에 취미를 잃은 그에게는 시험을 볼 때마다 평균 성적을 고스란히 까먹는 과목이 되곤 하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를 증명하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반장을 하면서 선도부장을 맡은 그는 여전히 공부보다 대외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들을 할애했다. 교문 앞에서 지각하거나 복장이 불량한 학생들 지도와 교실순회 등 학교가 그의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미래의 꿈이 정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의해 상대적으로 많이 배정된 이과에서 공부를 하다가 대입에서 실패한 뒤 재수하면서 본연의 진로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는 재수를 하며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려고 부단히 도전했지만 또다시 실패로 끝나고 3수만에 경희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대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군 입대 영장이 나와 강원도 양구에서 군 생활을 하고 전역한 후 또다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다시 대입을 준비하여 정치외교학과로 입학하느냐 아니면 행정고시를 새롭게 도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결국 행정고시로 목표를 정했다. 당시 공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 행정고시를 도전한다는 것이 불가능처럼 느껴졌지만 불가능을 극복해보겠다는 당찬 결의로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는 대학 고시원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행정고시를 준비해 나갔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다.
그 사이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부친으로부터 고시를 이제 그만 포기하고 취업을 하라는 최후통첩을 받게 되었다. 생활비도 더 이상 지원해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다급한 그는 부친 몰래 모친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했다. 자존심 때문에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으니 어머니가 도와주시라고 부탁 드렸다. 자기 새끼를 포기할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모친의 응원과 도움으로 고시를 계속 준비하면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으로 입학한 후에도 행정고시 준비를 병행해 나갔다. 그가 행정고시에서 계속 실패한 원인은 중학교 때부터 소홀했던 영어가 결국 문제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성문종합영어를 다시 구입하여 하루에 7시간 이상씩 영어공부에 몰입했다. 마침내 8년 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7전 8기의 신화를 이뤄냈다.
합격 후 첫 발령은 교통부에서 시작하여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건설교통부, 국토해양부에서 근무했다. 처음에는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이 강했다. 국민을 위한 정책 사업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였다. 특히 교통정책 수립과 지능형교통시스템(ITS)을 총괄하였고, 제주 국제자유도시 개발 및 경부고속철도 개통 준비, 보건복지부 저출산·고령화사회 정책본부 파견근무, 국립해양조사원 총무과장, 공공기관 지방이전 지원정책과장 등 다양한 업무를 통해 공직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한 공무원 생활에 매력을 잃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행정고시였지만 실제 자신의 목표는 정치인 되는 것이었다. 공무원보다는 대학교수로 가는 것이 정치인이 되는 데 더 유용하다는 생각으로 교수가 되기 위해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장생활하면서 7년 여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이후 교수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과 도전을 하여 보았지만 이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공무원을 그만둘 무렵 하나의 계기가 찾아왔다. 당시 그가 맡은 업무는 혁신도시 업무였다. 혁신도시 개발업무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의 핵심 공약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사소한 핑계거리를 빌미로 그는 다른 부서로 좌천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그는 2009년 세종연구소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의왕시장으로 출마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하고 2010년 2월 말에 공무원 사표를 내고 말았다. 당시 주변의 사람들이 극도로 만류를 했다. ‘너무 무리한 결정이다’, ‘정신 나간 것 아니냐’ 등 주위에서 많은 냉소도 받았다. 공천도 보장이 안 된 상황에서 의왕시장 출마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모친도 처음에는 극력하게 반대를 하였지만 결국에는 아들의 굳은 결심에 나중에는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2010년 6월 2일이 민선5기 지방 선거날이었다. 그는 정치 선배들을 몇 분 찾아가 자문을 받았다. 그에게 어떠한 부정보다 정의롭고 명분에 맞는 정치를 하라는 조언에 따라 당당히 선거 준비를 하면서 공천을 받는 행운을 얻었다. 정치입문 몇 개월 만에 시장선거에 출마하는 신인정치인이었지만 정치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는 높은 지지로 당선되었고 민선6기에 다시 출마하여 의왕시 발전의 근간을 만들었다. 그가 재임 동안 백운밸리, 장안지구, 의왕테크노파크 등 대규모 도시개발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고, 의왕레일바이크, 바라산 휴양림, 왕송호수 캠핑장 등 관광 불모지인 의왕시에서 관광명소를 조성하였다. 또한 노인전용목욕탕, 노인건강센터, 장애인복지관 건립 등 복지도시를 조성하였고, 관내 모든 고교기숙사와 글로벌인재센터 건립 등 교육도시를 조성하는 등 획기적인 도시발전의 원동력을 만들었다.

자신의 꿈을 성취하다.
그러한 공들이 인정되어 재임기간 중 대한민국 도시대상 대통령상(2017), 청소년정책 국무 총리상(2012),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2017), 위대한 한국인상(2017), 대한민국 최고경영자 대상(2016) 등 대외기관으로부터 250여 개의 기관 및 개인 수상을 하여 그의 능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후학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수원대와 수원대 대학원에서 ‘정책학’, ‘정책분석 및 평가’ 등을 강의했으며, 숭실대에서는 ‘기획론’을 강의하여 학생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의왕시장 퇴임 후에도 수원대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정책학원론’을 강의해 주고 있다.
그는 다년간의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핵심 정책학 강의(2005), 정책혁신과 정책네트워크(2005)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였으며, 의왕시장으로 출마하면서 펴낸 김성제의 희망은 깨어있다(2010), 의왕, 희망은 계속된다(2014), 김성제, 희망을 꽃 피우다(2018) 등을 저술하여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인동초와 같은 삶, 고난과 시련의 시기를 극복하고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인간의 승리사를 쓴 김대중 대통령이 그의 롤모델이었다. 김 대통령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삶을 통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뜻을 이뤘고 자기를 박해한 정적도 포용하는 큰 정치를 보여 주었다. 김 대통령은 평화통일을 위한 화해와 교류활동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조성으로 냉정시대를 화해의 무드로 바꾸고,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어 늘 본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마라고 일러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탄한 길만은 없다. 시련과 역경이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고 자신의 7전8기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하려고 3수까지 하면서 도전해보았지만 끝내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그는 공부에 대한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행정고시가 자신의 목표로 가는데 지름길이 되어 주었다. 일반인처럼 중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회에 쉽게 적응했더라면 그는 정치인이 되고자 했던 어릴 적 꿈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3수는 기본이요 7전8기로 끝을 낸 그는 무엇보다도 모친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려울 때마다 큰 언덕이 되어주시고 희망과 용기를 주신 모친의 뒷바라지가 그의 성공에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모친의 사랑이 몸에 베인 그는 의왕시장으로서 재임기간 동안 어르신들을 부모님 모시듯이 섬기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항상 큰 힘이 되어 주려고 노력하였다.
운동과 예능은 물론이고 행정고시 합격으로 능력이 입증되었음에도 언제나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생활하는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큰 이웃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약력
전남 보성군 출생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제학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행정학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행정학박사)
행정고시 합격 (제36회)
행정⋅외무⋅기술고시 통합동기회장 역임
건설교통부 서기관 역임
국토해양부 과장역임
민주당 경기도당 정책위 위원장 역임
의왕시장 (민선 5기⋅6기)
수원대 객원교수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2017)
지방자치 행정대상(2015)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대상(2013)
『핵심 정책학 강의』 출간(2005)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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