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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섬김을 실천하는 김종근 대표이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18일
ⓒ 경기헤럴드


사람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타고난 천성이 선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자신의 마음을 공유하는 김종근 대표이사. 그는 크리스천으로서 섬김을 바탕으로 이웃사랑과 사업을 전개하여 주위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다. 특히 그의 부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은혜를 펼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며, 살아 있는 섬김을 하기에 오늘도 은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청년 가장이 되다.
낙화암과 서동요로 유명한 충청남도 부여군이 그의 고향이다.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늘 집안의 기둥이었다. 농사로 넉넉한 생활을 영위한 부친은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동네의 대소사를 거의 맡아 주관하셔 주민들로부터 어른으로 존경을 받으셨다. 자식들에게는 늘 자상하고 믿어주는 큰 언덕이었다.
반면에 모친은 자식들을 엄하게 훈육하셨다. 부친이 모질지 않아 버릇없는 아이, 예의 없는 아이로 손가락질 받을까 노심초사하며, 몸가짐에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성장하도록 했으며 효심을 가장 우선으로 하셨다. 모친은 조부와 조모를 결혼하시면서부터 모셨다. 조부는 100세까지 사시다 타계하셨으니 그의 모친에 대한 효심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극진하셨다. 지역에서는 효부로 알려져 군청에서 효부상까지 수상하셨다.
그는 또래보다 힘이 좋고 운동을 잘 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로 유망주였다.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을 하여 학교 명예를 드높이기도 하고, 동네에서는 뜀뛰기 잘 하는 아이로 통했다. 운동회 때에 늘 달리기는 도맡아 1등이었다. 같이 뛰는 아이들은 모두 그와 같은 조가 되지 않으려고 서로 빠지기도 했다.
다정하고 행복한 그에게 아픔이 다가왔다. 언제나 “우리 장남!”하면서 사랑을 가득 주신 부친이 간암으로 타계하셨다. 병원비로 집안이 어려워지자 누나가 동생들을 돌보아 주었다. 사실 누나 등에 업혀 자랐다고 이야기도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맑고 구김하나 없는 그는 만사가 긍정적이었다. 또래들과 장난을 하다 꾸중을 들어도 웃는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집안의 농사일은 어린 나이지만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 했다. 보리파종, 농약치기, 풀베기, 고추농사 등 힘든 일도 거뜬하게 해 내는 어린농부였다. 집안의 많은 농사로 인하여 어린 동생들 손까지 보태야 했으나 그는 동생들이 하기 전에 먼저 하는 어른스러움으로 맏형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늘이 있었다. 그럴 때는 교회에 나가 조용히 기도만 하고 돌아와 장남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중학교로 진학한 그는 운동을 그만두었다. 부친이 계시지 않아 농사일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는 집안일과 동생들을 돌보는 일로도 부족했다. 당연히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하여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말았다. 모친은 보다 못해 공주시에 있는 공주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내는 결단을 하셨다.
공주에서 자취를 하면서도 생각은 고향뿐이었다. 주말이면 집으로 와 농사일을 돕고 다시 쌀과 반찬거리를 가지고 공주로 가는 그의 마음은 늘 무거웠다. 모친이 임파선으로 병원을 다니셨기 때문에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에 전념하게 됐다. 다행히 그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누나가 집안을 돌봐주는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그는 누나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행복의 은사를 받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동생들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이사를 갔다. 막상 서울에 오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직무뿐이었다. 작은 회사에 취업을 하고 동생들 공부를 시키며 자신의 미래도 함께 설계해 나갔다.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는 자신 가족의 생계도 책임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가족 모르게 그는 자신이 기능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동차 정비공부를 시작했다. 완전히 독학이었다. 서점에 가서 자동차정비에 대한 책을 구입하여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가까운 카센타에 찾아가 물어보면서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취득했다.
들뜬 마음으로 카센타를 하기 위해 부지를 구입하고 근사하게 카센타 겸 세차장까지 구비된 사업장을 구축하고 개업했다. 너무 앞선 과욕이었는지 사업이 잘 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한 사업인데 그에게는 너무나 큰 절망이었다. 우리 큰형이 사업 시작했다고 좋아하던 동생들 얼굴이 생각나 한없는 울음이 터졌다. 그는 눈이 퉁퉁 부울 정도로 울었다. 다시 일어서자고 맹세하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사업은 운수사업이었다. 화물운송을 하면서 점차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마침 결혼을 일찍이 하여 집안의 웃음꽃이 가득했다. 차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이 20대로 늘어나고 다시 60대로 늘어났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친지들에게 인사도 하고 동창들에게도 선심을 써가며 사업가로서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갔다.
그것도 잠시 IMF가 그를 다시 막아섰다. 그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오직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 그에게 찾아온 것은 회사정리였다. 회사를 정리한 후에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소액뿐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마다 가족 모르게 교회에 가서 기도했던 생각이 절로 났다.
그래서 어린 시절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기도의 동력자를 모아야겠다는 신념이 생겨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실패했던 운수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한 대 시작한 운수사업이 짧은 기간에 수백 대까지 늘어났다. 그때부터 그는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사무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철칙으로 세웠다.
운수사업을 하면서 물류센타의 활용이 필요했다. 그가 운영하던 회사를 동생에게 운영하도록 하고 그는 물류센타를 새로 설립하여 운수와 물류를 함께 운영하는 회사로 육성했다. 이러한 행복이 간절한 기도의 덕분으로 그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 자원봉사를 서슴지 않고 한다. 주차봉사부터 노숙자 후원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다니는 교회에 노숙자가 찾아오면 매주 2만원씩 후원을 하고 있다. 몇 명이든 상관없이 교회를 찾아오는 모든 노숙자에게 똑같은 마음으로 후원하여 같은 교인들도 놀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베트남 빈딘성에 있는 작은 교회에 1년에 두 차례씩 500만원을 후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년에 1,000만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는 가장 기쁜 마음으로 후원에 동참하여 베트남에 있는 아이들도 그를 가장 좋아한다고 교회의 한 관계자가 말해 주었다. 그리고 매달 100만원씩 선교비로 기탁을 한다고 한다. 열악한 선교사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그가 후원하는 것은 하늘이 하는 것이라고 항상 겸손해 한다.

섬김의 롤모델이 되다.
그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자 기아대책에서 그에게 동참을 원해 기아대책 이사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어린이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며 3명의 아이에게 매달 3만원씩 10년을 넘게 후원하고 있다.
초등학교 후배면서 같이 교회를 다니는 한 지인이 지역신문발전을 위해 동참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참하여 소외계층을 위해 무료신문구독에 지원하고 있으며 청소년문학대전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소년문학증진과 저변확대에도 동참하고 있다. 또한 각 대학도서관이나 안양권 교육계에 무상으로 책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는 동행의릴레이 이사로 참여하여 문학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헌신적인 참여로 경기도화물운송사업연합회 회장상, 군포시장 표창장, 모범적인 회사운영으로 교통부장관 표창장 수상이 그의 노고를 격려해 주었다.
부모님이 결혼전에 모두 타계하셔 효도 한 번 못한 것이 한이 된 그는 결혼을 하자마자 장인과 장모를 모시면서 생활을 시작했다. 30년 이상 함께 하면서 정성으로 효를 실천했다. 두 분이 병마로 병원에 입원하시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방문을 하는 살아있는 섬김의 롤모델이었다. 두 분이 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친자식이상으로 모신 그에게 그의 부인은 늘 감사하며 고마워하고 있다.
그는 고향이 그리워 자주 못가지만 초등학교 동창회는 늘 생각이 난다고 한다. 참석이 어려울 때는 친구들을 위해 후원금으로 대신하지만 어릴 적 골목대장을 하면서 뛰어놀던 추억만큼은 고이 간직하고 싶다고...
그는 타계한 이우석 선교사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생전에 성실하게 선교와 목회활동으로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그의 삶처럼 소박하고 이웃과 늘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그가 섬김에 어긋나지 않게 정신적으로 이끌어 준 이우석 선교사가 비록 동서지간이지만 존경의 자체라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가지면 반드시 이뤄진다고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일러주었다. 가정형편으로 대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워 운수사업을 목표로 한 그는 스스로 자격증을 취득,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발자국씩 내딛은 결과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여건이라도 하늘이 준 복이라고 받아드리는 사람은 꼭 자신의 성취를 스스로 느낀다고 말해주고 있다.
비록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눈물의 결혼식이었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아내가 있어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됐다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전했다. 이제는 행복한 마음으로 섬김을 할 수 있어 하늘에 감사하고 주위에 있는 분들과 함께 동행 할 수 있어 더욱 더 은사와 은혜를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김종근 대표이사, 그의 섬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약력
충청남도 부여군 출생
새빛교회 장로
상록운수 대표이사 역임
상록물류센타 대표이사
수리청소년문학대전 추진위원
동행의릴레이 이사
경기도화물운송사업연합회 회장상
군포시장 표창장
교통부장관 표창장(회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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