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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 섬김을 위한 아비목회 큰스승 권태진 담임목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01일
ⓒ 경기헤럴드


복지와 섬김은 타고난 복음을 실천하는 자체이다. 일시적인 사회복지는 누구나 행할 수 있으나 평생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복지는 하늘의 복을 받지 않은 자에게는 역경의 길이 된다. 척박한 환경에서 기도로 부흥하고 한국사회의 복지와 섬김의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군포제일교회 권태진 담임목사.

가난이 준 은혜를 받다.
문경새재와 고모산성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문경시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덕망이 많았던 부친이 폐결핵으로 그가 세 살이 되던 해에 타계하셨다. 가난도 그런 가난이 없었다. 모친은 집안의 여건을 너무 잘 아시는 작은 할아버지의 재혼 권유도 마다하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 승화하셨다. 그런 모친의 뒷바라지로 동네에서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옳고 곧게 성장했다.
마음으로라도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그는 자신의 몸만이라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시작했지만 영양부족으로 인해 폐결핵을 앓게 됐다. 가난에 병까지 얻어 극도의 정신적 불안까지 왔다. 추운 방에 홀로 누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같은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 예배당의 종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다. 이상하게도 종소리는 그에게 위안이 되었고, 종소리에 끌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따라가 보니 작은 교회였다. 자신도 모르게 교회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는데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간절한 기도로 그의 병도 호전되었다. 성경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난은 아직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는 무작정 부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우연히 들린 교회에서 만난 집사의 소개로 작은 공장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몇 개월 생활하다 다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신이 허약할대로 허약해도 교회만큼은 빠지지 않았다. 그에게 오직 위안을 주는 곳은 교회뿐이었다. 보이는 현실이 암담해도 눈을 감고 기도하면 나아질거라는 희망이 샘솟았다. 말씀을 보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고, 기쁨으로 다시 일어섰다.
어느덧 군에 입대할 나이가 되었다. 배고픔과 지친 육신으로 인해 군에 입대하면 ‘조금 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대했다. 고된 훈련과 병영생활로 견디기 힘들어 교회에 갔다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참들의 기합과 구타였다. 하지만 신앙으로 무장된 그를 기합과 구타도 막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당당한 자세로 교회에 나가자 고참들도 자포자기해 버렸다.
마침 월남파병이 있다는 소식에 홀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 지원했다. 베트남에 도착하니 전사한 전우들의 유해와 유품이 소장된 상자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어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맹호부대 소속이었던 그는 포성이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도 성경을 붙들고 버텼다. 상급자의 모함으로 헌병대에 끌려간 적도 있었다. 심신이 쇠약해져 견딜 수 없을 때쯤, 한국군의 철수 명령이 내려져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회복지의 대부가 되다.
고국으로 돌아와 전역한 이후 서울 중곡동에 있는 세광교회에 출석하면서 집사와 주일교사, 재정부 일을 시작했다. 원리원칙과 책임감있는 그의 모습을 본 담임목사는 신학교 입학을 권유했다. 처음 신앙을 갖고 병이 치유됐을 때 했던 서원기도가 떠올랐다. 그 기도의 응답이다 싶어 담임목사의 권유로 신학대학에 입학했으나 소명의식이 명확하지 않았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남한산성에 있는 기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추운 겨울에 사력을 다 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 후로 그의 심신에 몰라보게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바로 자신과 용기가 충만한 새로운 사람, 권태진이었다.
세광교회의 전도사로 자리를 옮기고 지금의 아내인 김희연 사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말이 전도사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그 어려운 부분을 아내가 채워주면서 신학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 큰 시련이 다가왔다. 아내가 큰 병을 얻어 한양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수술을 하고 나온 담당의사가 기도 밖에는 답이 없다는 말에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한 기분이었다.
다소 자만했던 그에게 하나님이 또 다른 시련을 주시는 것 같았다. 삼각산에 올라가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다. 그동안 경제에 대해 욕심과 자만을 회개하는 뜨거운 눈물을 토해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했다. 그 직후 아내의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병원비로 저축한 돈과 전세금을 다 써버린 상황이었다. 더 이상 교회에 머물 수도 없었다. 결국 교회에서 나와 본동교회의 최홍 목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교육목사로 추천을 받아 목사고시를 합격할 수 있었다. 그 후 안수를 받고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시흥군 남면 당리로 와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우연히 도착한 곳이었다.
동네 한 어르신의 도움으로 천막을 쳐서 교회를 세웠다. 교회간판은 천막 앞에 걸 정도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교회였다. 아내와 자신뿐이 성도인 그의 교회 모습이었다. 찬송가로 시끄럽다는 주민의 항의, 비가 오면 비가 새서 난처했던 일, 바닥은 가마니 등등 그가 걷는 길은 최악이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진솔한 마음을 인지한 성도와 주민들은 점차 그에게 다가왔다. 성도들이 늘어나고 마침내 1986년에 군포시 당동에 교회건물을 마련했다. 벽돌 한 장 한 장을 성도들이 직접 나르고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예배당이었다. 그보다 성도들이 더 기뻐했다. 성도 간의 오해로 인해 위기도 있었지만 떠났던 성도들이 다시 돌아오는 등 교회는 갈수록 부흥이 되었다.
가난과 소외가 얼마나 아픈지 경험한 그였기에 개척 초기부터 사람을 좋아하고, 내몸 같이 도왔다. 하나님이 그에게 부어주신 긍휼의 은사였다. 짧은 기간에 많은 성도가 증가하여 더 넓은 예배당이 필요해 1998년에 군포시 금정동에 단독교회시대를 열었다. 넓어진 교회만큼 그에게 더 큰 사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사회복지였다. 같은 해 사단법인 성민원을 설립하여 대대적인 사회복지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군포에 처음 세워진 노인복지회관을 수탁하고 푸드뱅크, 밥차 등을 운영하여 획기적인 복지사업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고령사회를 내다보고 군포시니어클럽을 수탁하여 어르신들의 일자리 구축 등 생산적인 노후생활을 마련해 주었다.

아비목회 세상을 향하다.
그는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필요를 따라 하나씩 사업을 일으켰다. 육신 뿐 아니라 영혼의 갈급함까지 채워주는 섬김복지를 위해 군포제일선교원, 성민에듀투게더, 성민재가노인복지센터, 성민노인복지센터, 성민요양원, 군포시니어클럽, 안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군포기초푸드뱅크, 성민무료급식센터, 성민실버합창단, 성민소년소녀합창단, 경기복지뉴스, 피드 더 칠드런 등 수없이 많은 사회복지를 전개했다.
그의 사회복지는 미래지향적이라 단순한 사업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변화에 대응했다. 모든 환경과 종교를 초월한 섬김은 인도주의적 차원을 넘어, 영혼의 만족을 주었다. 시민들은 스스럼없이 이용하여 형용할 수 없는 사회성을 구축했다.
교회와 사회복지가 활발해지자 그는 제2의 도약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기독교 사회복지의 개념과 특성을 정립했다. 목회와 복지를 양립하여 든든히 세워간 공로로 세계적인 신학대학인 Louisiana Baptist University 명예철학박사(Ph.D.),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신학박사를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는 단순히 교회일만 하는 목회자가 아니다. 1993년 시인으로 등단하여 시집 16권을 출간했고 설교집, 칼럼집, 에세이 등 총 40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홀리스피리츠메달리온 문화예술부문, 짚신문학상, 문예사조 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 군포문학상 등을 받아 문학인으로서 인정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사)성민원 이사장, (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목위원장, 재단법인 아가페 법인이사, 경기복지뉴스 발행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법인이사 등을 맡아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의 큰 언덕이 되어 주고 있다.
대외적으로 그의 공적이 알려지자 대통령 표창, 보건복지부 표창, 군포시민대상, 대한민국 대 한국인 복지부문 대상 등을 받아 그동안 노고를 위로받았고, 그의 사회복지가 하나의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은 조용하게 목회를 정리할 즈음인데도, 성도들과 장로들은 차고 넘치는 사랑의 에너지가 더 멀리 전파되기를 바라며 새로운 예배당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했다. 결국 2012년 군포시 당정동에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예루살렘예배당을 완공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지역 시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연, 예술, 교육, 모임, 쉼터 등을 운영하여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사역은 이제 지역의 담장을 넘어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사회복지의 롤모델로 존경받고 있다.
가난이 지겨워 무작정 고향을 등지고 부산과 서울에서 갖은 고생으로부터 얻은 지혜와 성령으로 어려운 이웃을 섬기며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가 되도록 아비목회의 목회자로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권태진 담임목사, 그는 천막교회로 시작하여 성도들의 오해와 일부 인사의 모함도 하늘이 주신 은혜라며 항상 웃으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승화하여 우리들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약력
경북 문경시 출생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졸업
미국 Birmingham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박사(D.Min.).
Louisiana Baptist University 명예철학박사(Ph.D.)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신학박사
군포제일교회 담임목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시인 등단 (국제 PEN 회원)
사단법인 성민원 이사장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법인이사
예장 합신 96회 총회장, 한장총 30대 대표회장 역임
대통령 표창
보건복지부 표창
아비목회 등 40여 권의 저서 출간
CBS, CTS, C채널, 극동방송 등 다수 방송 출연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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