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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모시듯 이웃을 섬기는 효녀 윤순섭 대표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5월 08일
ⓒ 경기헤럴드


힘이 든다고 포기하면 미래와 희망이 없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도래해도 노력으로 극복하고 14년 동안 부모를 모시며 효녀로서 이웃을 섬기는 윤순섭 대표. 그녀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차별을 받았어도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모시며 인본사상을 실천하는 롤모델이 되고 있다.

소녀가장으로 생활하다.
선비의 고향, 교육의 도시 충남 공주시가 그녀의 고향이다. 1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그리 어렵지 않은 환경에서 여장부로 성장했다. 농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친은 천식으로 인해 힘든 일을 하지 못해 모친이 집안일을 책임졌다.
조용하고 이웃과 언짢은 소리조차 하기 싫은 선비의 인품을 가진 부친은 오직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외아들 교육에만 치중하셨다. 이에 반해 모친은 모든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부친 모르게 공부라도 더 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다. 또한 동네에서 너무나 착하고 모범적이어서 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선하셨다.
부친은 아들의 미래를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그녀가 5살 때 안양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동네 골목대장이 되었다. 고무줄 놀이하면서 또래 남자 아이들이 줄을 끊고 가져가면 끝까지 따라가서 찾아오는 등 어떤 일이든 놀면서도 잘못된 일에는 양보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핸드볼, 육상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고 팔씨름은 전교에서 가장 잘 하는 아이로 통했다.
하지만 시합이 있는 날에 집에서 고추나 모내기를 하면 학교대신 농사일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시합에 출전하지 못하여 운동의 소질을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부친이 천식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면 병수발의 몫은 그녀의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철부지처럼 뛰어 놀아야 하는데도 그녀는 농사와 부친 병수발로 애어른이 되어야 했다.
모친은 그녀의 한 번 들으면 잊어먹지 않고 기억했다가 알려주는 명석함으로 늘 안타까워했지만 가정 형편상 공부를 집중적으로 시키지 못했다. 더욱이 손위에 있는 언니는 취업을 하여 집안일은 그녀가 도맡아 해야 했다. 특히 농사일로 피곤해서 잠을 주무시는 모친을 생각해서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것은 태반이었다. 그러한 스트레스로 그녀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때는 교회에 나가 간절히 기도드리곤 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초등학교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거나 없는 날에는 논과 밭에 나가 어른 농부들과 같이 일을 해야 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부모를 원망하는 일이 없어 모친은 그녀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다행히 그녀는 학교에서 얼굴도 예쁘고 리더십도 뛰어나 또래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반장을 줄곧하며 행복한 학급, 외톨이 없는 학급을 만들어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선생님의 사랑도 그녀에게는 큰 희망이 되지 못했다. 부친의 병세는 더 악화되어 모친 혼자서 농사와 생계를 책임질 수 없게 되자 그녀가 부친을 대신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도 새로운 꿈을 찾아야 했다. 농사를 짓다보니 자연스럽게 꽃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녀는 꽃을 활용한 작품활동과 자격증을 취득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을 했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다.
그녀는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노동부에서 주관한 대회에 출전하여 입선을 하는 기량을 발휘하여 그녀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자신이 생긴 그녀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플라워 샵을 내어 사업가로 변신했다. 작품성과 신뢰감이 높아 짧은 시간에 사업이 잘 되었고 명성이 널리 퍼지자 조선일보 플라워 강사로 위촉되어 강사활동까지 전개했다. 그녀의 사업장 2층에는 플라워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문하생들이 문전성시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할 수 있었다.
사업을 하기 전에도 아들이 다니는 안양 석수초등학교와 서중학교 학부모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교통질서지키기, 폭력예방운동, 왕따없는 학교만들기, 선풍기를 에어콘으로 교체하기 등 학교환경개선운동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잘 나가던 그녀에게 불행이 다가왔다. 모친께서 칠순잔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모친은 여러 차례 수술을 했지만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셨다. 할 수 없이 모친을 모신 그녀는 아파트에 9인미만가족시설을 유치하려고 수소문했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위생상 반대를 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이때부터 그녀는 사회복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부모를 모시는 상황이라 먼 거리에 있는 대학은 갈 수가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연성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입학을 하면서 과대표와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그녀는 이왕 시작한 공부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는 각오로 중앙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녀가 남다른 봉사에 전념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업을 전개하기 전에 교통사고로 목뼈 5번과 6번이 끊어져 전신마비가 되었다. 거의 식물인간으로 3년간 병원생활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생활을 했다. 자신의 발로 흙을 밟을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은 봉사로 살겠다고 하늘을 보며 기도하면서 미아보호소에 가서 아이들 목욕을 시켜주는 봉사를 전개했다. 남들이 보면 아픈 사람이 봉사한다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그녀는 관여치 않고 봉사에 임했다. 그 결과 그녀의 몸은 조금씩 반응이 왔고 결국 완쾌되는 기적을 얻었다.
항상 낮은 마음으로 봉사에 임한 그녀의 소문이 널리 퍼지자 안양시바르게살기협의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할 것을 권유받아 거리질서 계몽운동, 불우이웃돕기, 자연재해지역 일손돕기 등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있는 안양시립노인전문요양원의 주방봉사를 하면서 어르신들의 섬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자신의 부모도 병석에 누워 계셔 더욱 더 어르신 모심에 관심을 갖게 되어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의 지평선을 열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안양시에서 처음으로 치매예방교육을 실시했다. 65세 이상 몸이 불편한 어르신과 우울증이 있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치매예방교육을 실시하여 호평을 받았다. 치매가 진전된 어르신에 대해서는 세부교육을 실시하여 어르신들의 가족들로부터 신뢰를 얻곤 했다.
일복은 타고 난다고 바쁜 와중에도 안양시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아 평화통일계몽, 견학을 통한 통일의식고취, 탈북자 안전한 정착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분과위원장으로 위촉되어 자문위원회의 활성화에 적극 동참했다.
또한 유권자연맹여성회 안양시의 감사를 맡아 여성정치지망생들의 여권확장과 신장에 기여했으며 안양시사회복지협의회 천사봉사단 단장을 맡아 요양원 급식봉사와 환경봉사, 외국에 옷보내기 운동, 거리질서 캠페인, 김치담아주기 봉사 등 어려운 이웃들의 벗이 되어주었다.
그 외에도 한국원자력여성회 안양시회장으로서 원전에 대한 안전홍보, 요양원과 어린이집 봉사, 후원사업 등에도 모범을 보였으며 한국치매예방협회 안양시지부장, 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 밝은꽃회 지회장, 안양시 시정홍보위원, 만안구 어머니자율방법대 자문위원, 산디풀꽃 예술원 원장 등도 맡아 아름다운 공동체 만들기에 앞장섰다.
그녀는 화훼장식사 이외에도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유아교육사, 심리상담사, 실버인지지도자 등 사회복지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여 최고의 사회복지전문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처럼 여장부로서 남자들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자 만안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그녀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안양시에서 처음 여성이 총동문회 회장을 맡은 이변이 생겼다. 남성 중심의 총동문회에서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서 총동문회 사무실을 마련하고 1일찻집으로 모은 모금으로 어려운 동문들에게 후원하는 등 한결같은 마음을 동문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녀는 부모님에게 꼭 해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많은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모 정당에서 시의원으로 공천을 받았지만 제도권에 입성하지 못했다. 그녀는 생전에 부모님이 바라던 제도권입성을 보여드리지 못해 미안함이 크다고 한다.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국의 대열에 오를 수 있게 만든 고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가난으로 인해 배움의 왜곡이 있었고 자신의 꿈을 조금 뒤로 해야 했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박정희 대통령의 애민사상을 본받고 싶다고 한다.
아울러 청소년들에게 자립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일러주고 있다. 누구에게 의지하는 마음은 미래를 포기하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 수 없다며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기개를 가지라고 자신이 겪은 경험을 말해 주었다.
지금도 안양시 108개의 경노당을 일주일에 3곳씩 순회하면서 소외된 어르신, 치매에 걸린 어르신, 무릎수술이나 허리수술한 어르신 등 혼자 생활하시기에 어려운 어르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늘편안한 주야간보호센터를 운영 중인 그녀는 늘 부모님 모시듯 어르신을 섬기고 있다. 14년을 병석에 누운 부모님을 모시는 효심과 부모님의 소원을 못 이룬 채 선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여장부로서의 당당한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들의 영원한 효녀였다.

약력
충남 공주시 출생
교육학 석사취득
화훼장식사∙사회복지사∙평생교육사∙유아교육사∙
심리상담사∙실버인지지도자
만안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역임
안양서중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역임
안양시지역사회보장협의회 위원
안양시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바르게살기운동 경기도협의회 부회장 역임
안양시평화통일자문위원회 위원 역임
한국치매예방협회 안양시지부장
산디풀꽃 예술원 원장
늘편안한주야간보호센터 대표
국회의원 표창장
안양시장 표창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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