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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만 파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든 김천식 고문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29일

 
ⓒ 경기헤럴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특기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오직 높은 곳만 향해 쫓아간다. 그러한 문화는 많은 낙오자를 만들기도 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산해 언제나 사회적 불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자신이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며 일반 시민의 안락한 보금자리 마련에 일조하고 그의 재능으로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김천식 고문. 그는 자신보다 이타적인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실행에 옮기고 있다.

부모의 사랑없이 성장하다.
소록도와 나로우주센터로 유명한 전라남도 고흥군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독자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부친은 6.25사변 때 육군 대위로 참전했으나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생이별을 하게 됐다.
어린 그를 보살펴 줄 사람은 조모와 그의 백부였다. 그의 백부는 일본에서 건축일을 배우고 귀국하여 사업을 전개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많은 땅을 소유한 조부의 영향으로 그가 편안한 생활을 하는데 도움도 되었다.
당시 그의 백부댁에는 일하는 사람을 두 명 둘 정도로 일손이 많이 필요했고 백부는 건설현장을 다니며 사업으로 바빴다. 그의 훈육은 큰어머니 몫이었다. 큰어머니도 그를 친자식 이상으로 자상하게 대하며 그가 옳고 곧게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 해 주셨다.
초등학교 때 그는 동네 아이들이 부모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면 그의 할머니는 그를 눈물로 안아주며 “불쌍한 내 새끼”하면서 그가 이탈되지 않도록 성심성의껏 보살펴 주었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쾌활한 그는 아이들의 놀림과 상관없이 늘 명랑하고 밝게 생활하도록 노력했다. 혹시 눈칫밥 먹고 자라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도 있지만 그는 스스로 큰댁에서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했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소꼴베기는 기본이고 들녘에 나가 소들에게 풀 먹이기 등 어린 나이에 하기 어려운 일들을 했다. 다행히 그가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친모의 친구였다. 담임선생님은 그를 불러 어머니가 계신 주소를 알려주셨다.
그는 처음 들어본 엄마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어린 나이에 감정이 이입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선생님 덕분에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자상하게 지도해 주셔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중학교에서도 모범을 보였다. 큰아버지가 일을 하고 오시면 도구같은 것을 정리하며 연장의 기능과 쓰임새를 간간히 배우곤 했다. 큰아버지도 그에게 손재주가 있다는 걸 아시고 쉽게 설명해 주며 “나중에 건설업 해라”고 용기를 주셨다.
중학교에 들어간 그는 또래보다 키가 컸다. 초등학교 때처럼 농사일 돕기, 소꼴배기, 소키우기는 그의 몫이었다. 특히 겨울철 김채취 작업은 고역이었다.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고 옷도 지금처럼 방한복이 없어 찬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금방 손이 어는 듯했다.
혹시 꾀병부린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는 무식하게 일을 해 냈다. 동네 사람들도 참 일을 잘 한다며 칭찬을 자주 해 주었다. 친부모와 같이 일을 하면 투정도 부리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일도 하지 않을텐데 그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살리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바닷가로 나가 낚시로 고기를 잡고 어패류를 주워 반찬거리로 이용할 수 있도록 큰어머니를 먼거리에서 많이 도와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기도 했다. 큰어머니는 알아서 일을 하며 귀여운 짓을 하는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아 모정을 잊게 해 주었다.
그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큰댁에 대학교까지 보내달라는 용기가 없었다. 사실 건축과에 입학을 하여 큰아버지처럼 건축일을 하며 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또는 공휴일에는 큰아버지의 공사현장을 따라 다녔다. 건설은 현장중심이 가장 중요했다. 기초부터 큰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을 착실히 배워나갔다. 더욱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 현장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 덕분에 기능사자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었다. 학교생활에서도 활동적인 그는 친구들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친한 친구들이 극장이나 밤에 놀자하면 거부할 수 없는 순둥이였다.
이러한 생활에도 집안일 도와주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다.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 때도 김수확은 정말 고역이었다. 중학교 때보다 덩치가 더 큰 덕분에 궂은 일들은 그의 몫이라도 그는 묵묵히 일을 잘 했다.
그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등록금이나 수업료 한 번 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그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자식보다 먼저 챙기는 훈육에 완벽을 기해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입대신체검사를 먼저 받았다. 당시 북한에서 남파된 김신조 사건으로 예정보다 일찍 입대한 그는 공병대로 차출되었다. 그는 전공이 건설이라 군사시설과 방카건설 등 전방부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설물 건설현장에 투입되어 많은 공을 세웠다. 또한 GP를 구축하는데 투입되어 공사기간보다 빨리 건설이 종료되어 포상휴가까지 다녀올 정도로 근면성실했다.
그가 군복무 기간에 나온 휴가 때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대신해서 농사일을 거들고 집안 정리 등을 하고 귀대하는 효자였다. 전역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제대로 된 회사도 없고 취업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큰아버지와 의논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막상 서울로 왔지만 그를 당장 고용해 주는 회사는 없었다.
한 지인이 지하철 공사현장을 소개시켜주는 덕분으로 그는 현장에서 목수로 일할 수 있었다. 그는 홀로된 몸으로 첫급여를 탔지만 부모님에게 선물도 할 수가 없었다. 소중한 월급봉투를 갖고 은행으로 곧장 가 적금을 들었다. 숙식은 회사에서 제공해 주기 때문에 그는 낭비하거나 소비할 곳이 없었다.
몇 년 동안 급여 대부분을 적금을 부은 그의 통장에는 어느 덧 목돈이 되어 있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가 안양에 내려가서 작은 사업을 시작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는 흔쾌이 좋다며 안양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는 작은 사무실을 임대하여 건축사업을 시작했다. 독립된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일이 바쁠 때 인부들이 속을 썩이기도 하고 공사완료후 공사비를 주지 않는 사람, 불량한 자재를 공급하는 업체 등등 그가 살아온 양식과 상이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됐다.

신용과 신뢰의 사회를 만들다.
그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러다가 큰아버지가 ‘항시 남에게 욕 먹지 말고 예의범절로 매사 충실한 사회생활’을 하시라는 것과 동떨어진 생활을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에게는 신용과 신뢰를 버려서는 안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그의 신뢰와 신용이 널리 퍼지자 빌라건축, 일반 주택건축 등 많은 공사들을 하였다. 그는 자만하지 않고 고객이 만족할만한 완공으로 보답을 했다. 그로인해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주위로부터 다른 곳에 투자를 하라고 권유를 받았지만 투자대신에 땅을 매입했다.
그가 건립한 건물은 튼튼하다는 인정과 평가를 받자 그의 사업은 더 번창했다. 그가 한우물만 파며 달려온지 40년이 넘었다. 늦게서야 이웃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수성가로 성공했지만 사회공동체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러는 차에 그가 거주하는 동에서 산악회를 구성한다는 말에 동참을 하여 회장을 8년 동안 했으며 그가 회장에서 물러날 때 통장에 거금이 들어있었다. 그 산악회가 30년이 거의 다 되어가도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니 그의 인화단결을 알아줄만 했다. 그 모임에서 회장직을 그만두고도 행사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을 회원 간의 우애를 다지게 해 주고 있다.
장애인가족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경기생명 군포시지회의 고문을 맡아 행사 때마다 격려와 후원에도 동참을 하여 찬사를 받곤 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화증진을 위해 매년 개최되는 수리청소년문학대전추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원금 기탁과 청소년문학저변확대에도 일조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웃과 이웃과의 아름다운 공동체만들기와 무료 도서보내기 운동을 하는 동행의릴레이 고문으로서 회원들의 사기진작과 사업확대를 위해 언제나 솔선수범을 하고 있다. 또한 지역언론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은행으로 달려가 인출하여 지역언론사에 발전기금을 후원하는 등 적극적인 삶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윤국로 전 국회의원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그가 안양에 거주하면서 안양지역발전과 산본고가를 건설한 윤국로 국회의원이 그의 삶에서 역동적으로 비춰졌다. 지역발전이라면 가장 먼저 앞장서는 윤국로 전 국회의원의 지역사랑을 늘 본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한 우물을 파라’고 일러주고 있다. 많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가장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다며 분야와 거리가 먼 경험은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부모의 정과 사랑을 모르고 성장했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건축을 업으로 삼고 평생 따뜻한 보금자리 마련과 정이 넘치는 공동체만들기에 앞장섰다.
남들처럼 요란한 경력보다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들의 흉금을 울려주고 있다. 또한 그는 앞에서 나서는 것보다 지근에서 늘 응원과 조언으로 부담가지 않도록 자신을 낮추며 생활하기에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가 노령에도 젊은이들과 같이 궂은 일에 솔선수범을 보이고 대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살아 온 삶이 이타적인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단언하고 싶다.

약력
전남 고흥군 출생
건설업 종사
동행의릴레이 고문
수리골선비들 출간위원
수리청소년문학대전추진위원
경기생명사랑 군포시지부 고문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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