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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한 선도적인 선교를 전개하는 황용모 목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22일
ⓒ 경기헤럴드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오늘 매사에 열중하고 정직하게 부끄럼 없는 생활을 하자는 신조로 사회를 밝게 만들고 있는 황용모 목사.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목회자로 전환하여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타향생활에서 지혜를 얻다.
삼백(목화, 누에고치, 쌀)과 경천대로 유명한 경북 상주군이 그의 고향이다.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부친은 농사로 식솔들을 책임져야 했기에 늘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천주교 성도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의 집은 성당대신 예배를 보는 공소회로 유명했고 신부님 대신 부친이 집도를 하시는 등 종교인 이상이었다. 모친은 많은 손님들이 집에 와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족처럼 대해 주시는 등 동네에서 인자한 분으로 널리 알려지셨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월남전에 참전 후 귀국한 삼촌이 공부에 대해 한이 되어 똑똑한 조카 둘을 데리고 부산에서 공부를 시키겠다고 하여 그는 부모님 곁을 떠나 타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삼촌의 보살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가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삼촌이 서울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그는 같이 가자는 삼촌의 제의를 거절하고 친구들이 있는 부산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자취를 하며 새벽에 신문 배달원과 당시 만화 영어교재로 유명한 엘림출판사 세일즈를 하면서 학업에 충실했다. 공부도 잘 한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여건이 되지 않아 야간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공부만이 미래가 있다는 생각으로 주산, 타자, 부기 등 상업고등학교에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여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 나갔다.
당시 탁월한 타자실력은 그를 따라올 친구들이 없었다. 그로 인해 그는 타자학원에서 보조강사로 취업하여 생활비와 수업료를 마련했다. 새벽에는 중학교 때부터 하던 신문배달을 계속하여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결국 그는 전문대학으로 진학을 바꿨다. 전문대학의 등록금도 그에게는 부담이 컸다. 할 수 없이 야간학과의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여 공부를 계속했다.
다행히 6년간의 구독자들에게 성실한 신문배달을 하면서 인연이 된 한 분이 세차 아르바이트를 소개시켜 줘 세차와 당시 보충역 연대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야간대학 수업 등 1인 3역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전역 후 새로운 세차 사업에 대한 확장과 지금의 아내와의 가까운 만남을 위해 상경했다. 그는 새벽에 찾아가는 세차사업을 하면서 종합학원(주산부기타자, 피아노, 속셈)의 부분투자를 통해 인수를 하며 사업을 병행하였다.

미래를 위해 자신을 개발하다.
전문대학에 다닐 때처럼 젊어서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미 합작 회사인 우유팩 전문생산 회사 구매담당으로도 근무를 했다. 당시 구매로 인해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믿음으로 유혹을 이기고 직장 내 신우회를 결성하여 수요예배를 시작했다. 그는 “작은 목자”라는 신우회 회원들의 신앙심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동산교회의 김인중 목사님과 함께 약15년 간 평신도 사역자로서 훈련받으며 공단 복음화를 위해 각 회사 내에 신우회 조직운동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결혼과 함께 아내의 권유로 안산동산교회에 등록하게 되었고 그 후 김인중 담임 목사님과 함께 평신도 사역에 박차를 가하며 신앙생활을 전개했다. 개인적으로 전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1992년에 있던 일본 도쿄돔에서의 “빌리그래함 목사 초청 집회”에서 감명 받은 동기라고 한다.
사회적 경험으로는 1991년 3월 새로운 사업으로 대형 종합 학원을 준비하려다가 자금의 부족으로 포장박스제조 업체를 설립하여 경영을 하였다. 그러나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어음과 대출금등의 보증으로 인해 그의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됐다. 갑작스런 사업의 실패 이후 건강도 나빠졌고 2002년에는 아내도 암 때문에 삼성의료원 에서 긴 시간 동안 대형 수술을 받았다. 더욱이 사채시장의 협박과 감금, 생명의 담보요구, 채권자들의 협박, 집행관을 동원한 압류, 강제 집행 등으로 겨울철 전기와 가스도 중단되어 사람의 체온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엄청난 시련이 있었다.
이러한 충격으로 몇 차례 자살이란 생각도 많이 하였으나 그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의 생각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마지막 금식기도로 하나님과의 해결을 위해 기도원의 기도굴에서 7일간의 금식 기도를 할 때, 마지막 저녁 때 하나님의 강한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 새로운 힘을 얻어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서 부터 파지 수거하는 고물상, 생수 사업을 시작하여 기업체의 임원 및 전문경영인으로 근무하면서 경영 컨설팅 등을 통해 그동안의 어려움을 조금씩 헤쳐나간 불굴의 사람이다. 그 후 그는 군포에 위치하고, 당시 16년이 되었으나 출석성도는 얼마 되지 않으나 해외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작은 교회 “군포 삼일 교회‘에 등록하여 평신도로 사역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전도를 위해 가까운 금정중학교와 군포고등학교 앞에서 매주 토요일 마다 몇 년간 메가폰을 들고 교통지도를 하면서 사탕 전도, 찬양 전도를 실행했다. 그 결과 주님의 은혜로 학생회도 조직되지 않은 교회에 20명이상출석과 행사시 100명이상 모이는 학생회가 만들어졌다. 또한 “발바닥 전도 및 파라솔 전도 대회”를 진행하여 숫자적으로 작은 교회이나 군포시 중심상가에서 많은 불신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동안 침체되었던 교회의 성도들 간의 화합과 사랑을 나누는 교제의 시간이 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던 중 2005년 여름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하여 늦은 나이에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목회자의 길로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바쁜 사역 중에도 2008년 “월간문예”에 시 부문(에스컬레이터에서외2편)”에 입상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2008년 신문예에서 실시하는 “한국100인 시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지금의 원로목사님이 당시 담임목사 퇴임을 생각하고 외부에서 목사님을 청빙하는 것 보다 그를 지금의 삼일교회 담임목사 후임으로 내정해 주신 영광으로 201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사역에 임하고 있으며 베풀어 주신 은혜와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은혜에 늘 감사하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사역을 하다.
그는 특별히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2017년 5층을 리모델링해 “청소년문화예술자립센터”를 만들어 청소년들의 음악적인 재능인 드럼, 기타, 댄스, 피아노 등을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또한 2015년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한 올바른 결혼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작은 결혼식”행사에 참석하여 결혼식 장소제공 및 주례무료서약을 하고 군포시에서 유일하게 “작은 결혼식”장소로 선정되어 소외된 이웃이나 다문화가정, 올바른 결혼문화를 준비하는 결혼적령기 청년들을 위한 작은 결혼식 공간으로도 제공하고 있다.
2018년 3월에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나눔과 기쁨의 군포지부로 선정되어 탈북민돕기운동, 마을나눔사진관의 운영으로 어려운 이웃들의 영정사진촬영, 푸드뱅크,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지급 등으로 이웃을 섬기는 교회로 거듭나고 있다.
한때 그가 군포시기독교연합회 서기로 섬길 때에 일반적인 행사보다 문화적인 행사, 시민과 함께 하는 행사를 기획과 실행에 옮겨 지역 내에서 새로운 전도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했고 작은 교회를 직접 찾아다니며 목회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격려하고 작은교회 살리기 운동과 군포창업지원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실직자또는 창업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의 일자리창출에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동산교회 김인중 목사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다음세대를 위한 열정으로 동산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최고의 인재양성 교육기관으로 육성했고 미래의 동량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모습에 늘 존경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목표가 있을 때는 포기하지 말라, 끈기 있게 끝까지 도전해야 성취할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 담 너머에 있는 앞으로 펼쳐질 위대한 결과를 바라보면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향후 그는 가능하다면 물질을 보내는 선교사의 역할과 선교지에서 수고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후원, 노인복지관련 복지관계, 올바른 장례협동조합, 소년소녀가장돕기, 고아들을 위한 후원 관계 등에 대한 사역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에 앞서 그는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 연합 추진위원, 삼일교회 담임목사, 필리핀 가모티스 선교회 이사, 짚신문학회 이사, 문화포럼 운영위원, 에이블장애인 직업적응훈련센터 후원위원장을 맡아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역량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결혼상담자격 취득(한국결혼상담소협회), 두란노 목회자 아버지 학교 수료, "TEE 소그룹 공동체학습“ 리더자 과정 수료, 청소년상담,학교폭력예방지도사1급자격증, 집단상담사 1급 자격증, 가족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 등을 수료하거나 취득하여 어려운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게으르지 않게 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전도사로서 사역을, 딸은 목회비서과를 졸업한 후 서울 강남의 모교회 담임목사의 비서로서 충실한 생활에 임할 정도로 모든 가족이 사역에 충실하고 있듯이 그는 미래세대를 위한 등불이 되기 위해 오늘도 사역을 멈추지 않고 외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약력
경북 상주군 출생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총회신학교 대학원 목회학 졸업
바이블 팩케이지 대표 역임
“월간문예사조” 신인상으로 시인 등단
“신문예” 2008년“100인의 시인”으로 선정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 연합 추진위원
필리핀 가모티스 선교회 이사
청소년문화예술 자립센터 대표
(사)나눔과 기쁨 군포지부장
에이블장애인 직업적응훈련센터 후원위원장
삼일교회 담임목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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