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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없는 삶을 추구하며 이웃에 모범이 되는 강익현 대표이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05월 22일
ⓒ 경기헤럴드

‘거짓 없이 열심히 살아라’ 라는 덕담은 우리네 부모님들이 자식들의 밥상교육에서 첫 번째로 실시한 내용이다. 그러나 세상생활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거짓 없는 삶이다. 그의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을 자식들에게 훈육하며 자신의 삶에서 최대한 거짓 없이 열심히 생활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강익현 대표이사. 그는 자수성가하며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이 맡은 책임을 완수하는 사업가이다.

거짓 없는 삶을 약속하다.
초의선사 태생지와 연꽃축제로 유명한 전남 무안군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6남 3녀 중 일곱째로 태어나 천진난만하게 성장했다. 부친은 많은 농토를 소유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늘 베푸는 인품이셨다. 특히 동네에서 평생 구설수 한 번 없어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으셨다. 모친은 외동딸로 성장하여 성품이 옳고 곧았을 뿐만 아니라 인자하여 그의 친구들에게는 친엄마와 같은 분이었다.
운동을 잘 한 그는 초등학교에서 배구와 육상선수로 발탁되어 성격이 쾌활하고 매사 긍정적이었다. 공부도 우등상을 받는 정도로 잘 해 친구와 선생님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던 그는 6학년 때 전교어린이 회장을 하면서 리더십도 키웠다. 어려운 친구를 보면 부모 몰래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그에게 모친은 “너는 이 어미 고갱이까지 갖다 줄 녀석”이라고 하시면서도 자식의 넉넉한 마음을 흡족해 하셨다.
착하고 착한 그는 수업이 끝나면 부진한 또래들에게 공부도 가르쳐 주기도 했고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위해 모내기, 가을추수, 담배농사, 땔감하기, 소꼴배기 등 성인들이 해도 힘든 일들을 묵묵히 잘 하곤 했다.
농사일이 없을 때는 집 앞에 펼쳐져 있는 갯벌에서 조개와 낙지 등을 잡아 반찬거리도 마련하는 등 효자아들로 곧게 성장했다. 그러나 또래들의 골목대장이었던 그는 저수지에서 멱을 감다 선생님에게 걸려 평생 혼날 것을 다 혼난 경험을 말하며 거짓 없는 삶을 살게 해 주신 선생님의 감사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마음으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며 소위 친구들의 짱이 되었다. 학교까지 10리길을 걸어 다니며 친구들의 방황을 막아주기도 하고 가출한 친구들을 설득하여 귀가시키는 등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성적이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친구들을 너무 좋아 해 어울리다 사고를 치고 말았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하듯이 그는 친구들과 무작정 서울로 가출하고 말았다. 서울에 있는 선배를 찾아가 중국집 배달을 하며 보름을 보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셔 그는 방황 보름 만에 귀가를 하였다. 집으로 되돌아 온 그는 달빛 없는 밤에 파도치는 그의 고향 바닷가에서 이제부터는 부모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과 남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굳은 약속과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의 깨우침을 회상했다고 한다.

미래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다.
형들과 누나들이 외지로 떠나게 되자 집안의 농사일은 그의 몫이었다. 그는 공부보다도 농사일에 더 재능이 있어 보였다. 다른 일꾼보다도 짧은 시간에 농사일을 더 많이 하는 등 생산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집안의 라디오나 시계가 고장 나면 전파사에 가지 않고 스스로 수리하는 등 자신의 재능에 자신이 놀라곤 했다.
즉흥적인 생각으로 난처한 일들이 생기자 그는 차분한 마음을 갖기 위해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승단했고 부유한 집안사정으로 대학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운동으로 성공하고 싶어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운동에 전념했다. 그는 검도 3단을 취득하고 사범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사범을 하면서 체력이 약한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해 지는 모습을 보며 사범생활에 만족과 더불어 농사일을 병행해 나갔다. 도장과 농사일로 모범을 보이고 있었던 그에게 지금의 아내가 그에게 나타났다. 당년 24세, 그는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결혼을 한 그는 사범의 급여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운동으로 성공을 하고 싶었지만 그는 사범을 그만두고 전남 순천에서 사업을 하는 누님의 요청으로 누님 회사 관리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는 회사의 경영부터 회계까지 하나씩 배워 가면서 사회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마침 건설경기의 붐이 불고 있어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손재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회고한 그는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형님과 누님 곁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처음엔 지인의 인테리어 회사에 보조로 들어가 각종 잔심부름을 하며 인테리어에 입문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가져오라는 도구를 잘못 가져와 야단도 먹었고 자재 재단을 잘못해 자재를 버려 숱한 혼도 맞곤 했다.
그는 인테리어에 관련된 서적을 구입하여 늦은 밤과 휴일에는 책을 보면서 직접 도면도 그려보고 실물을 만들어 보는 등 나름대로 실력을 연마해 갔다. 가정을 둔 가장으로서 고된 과정이었다. 적은 급여로 가족생계는 표현할 수 없었고 아내와 지식들 보기에 민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목공을 하다 손에 상처를 입어도 자신과 약속을 한 2년이라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드디어 그는 남들 보다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여 자신만의 사업장을 마련했다. 그는 지역에서 작은 공사부터 차근차근 신용을 쌓아갔다. 그가 완공한 공사마다 만족도가 높아 시공업자들이 그에게 많은 업체를 소개시켜주는 등 사업은 짧은 시간에 안정되었다. 특히 서울 아파트단지의 인테리어 공사는 그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그와 같이 공사를 하는 하청업체는 항상 그를 최고로 여겼다. 공사가 완료되자마자 공사비를 입금시켜줘 체납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안양이 그의 고향 같았으나 천안에 장모님이 홀로 되셔 그는 집사람과 상의를 한 다음 장모님을 모시기 위해 천안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자였던 그는 장모님의 외로운 삶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천안으로 회사를 옮긴 그는 효심이 통했는지 전국적으로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손이 부족하면 같이 공사를 한 하청업체에 요구하면 거절 없이 그의 공사에 동참하는 등 신의로 사업을 구축해 나갔다.

이웃과 함께하는 사업가로 우뚝 서다.
사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그는 사회에 눈을 돌렸다. 장애인가족을 위한 장애인협회 곰돌이에 매달 후원을 시작으로 봉사에 동참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장애인가족을 위한 야학차량봉사를 매주 3회 실시하기도 했고 어울림봉사단에 가입하여 어르신요양원에 매달 1회씩 점심봉사에도 참여했다. 특히 그는 어울림 부회장을 2003년부터 맡아 장애인가족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가 천안으로 이사를 갔지만 안양에서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안양백호산악회를 2000년에 구성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동호회원들의 건강증진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9년 동안 아들의 결혼식으로 단 한 번만 빠지고 모두 참석하는 모범을 보여 회원들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얻고 있다.
그는 천안에 거주하면서 천안동남경찰서 시민경찰위원회에 위촉되어 사무총장을 맡아 합동 음주단속, 청소년선도, 우범지대 방범, 하천정화운동 등 지역지킴이로서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또한 서북의용소방대에 가입하여 시민들의 안전의식강화 계몽운동, 화재 없는 마을 만들기에 회원들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천안시 문성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 부회장을 맡아 주민들의 안전과 취약지구 보안에도 적극 참여하여 회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고 있다.
그는 안양시의 한 선배의 권유로 청소년문학과 지역언론발전에 동참하여 청소년들의 문학저변확대와 사업가들의 사회환원사업에도 모범을 보여 주위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으며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에 생색을 내지 않아 더욱 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출판사업을 전개하면서 무료책보내기 운동을 하는 동행의릴레이 이사, 어르신발맛사지와 장애인가족 바리스타 무료교육 및 장애인가족커피페스티벌 추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소위 정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어도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항상 국정을 운영한 노무현 대통령의 애민사상과 거짓 없는 삶을 닮고 싶다고 한다. 특히 그는 낮은 자세로 국민에 다가가는 모습에서 수구세력들의 비참한 공격을 받았어도,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어도 야속한 마음 자체를 갖지 않은 진정한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학창시절 학생의 범위를 넘지 말라고 자신의 경험을 일러주고 있다. 짧은 청소년 시기는 자신과 가족을 위한 미래의 준비 기간이므로 최대한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해 주었다. 더욱이 부모님에게 공경하는 학생이 된다면 어떠한 어려움에 당면해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덕담을 전해 주었다.
미래에 촉망되는 우수한 인재였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위해 대학진학도 포기한 그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가 없다고 한다. 짜여진 삶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하면서 이웃과 늘 웃음을 같이 하는 것이 삶의 행복이라는 강익현 대표이사. 그의 좌우명처럼 거짓없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그 스스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약력
전남 무안군 출생
검도 사범지도자
안양백호산악회 회장
수리청소년문학대전 추진부위원장
동행의릴레이 이사
경기생명사랑 군포시부단장
소년소녀가장돕기 어울림 부회장
천안동남경찰서 시민경찰위원회 사무총장
천안시 서북의용소방대 대원
천안시 문성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 부회장
천안 동남경찰서장 표창장
IT종합인테리어 대표이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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