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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신뢰로 여성사업가로 성공한 김진숙 대표이사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8년 04월 12일
ⓒ 경기헤럴드


개인 간의 신의는 한쪽의 신뢰보다 공동의 책임을 공유할 때 지속된다. 어려서부터 신뢰를 훈육 받으며 친구들로부터 무한한 신의를 받고 성장한 김진숙 대표이사는 봉사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여성기업가로 성공했다. 그녀는 고아원, 경로당, 복지관, 해외 오지 등 여러 곳에서 미용봉사로 따뜻한 공동체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꿈을 바꾸다.
문수산과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최고의 목재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한 경북 봉화군이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는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나 정 많은 오빠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성장했다. 부친은 대한통운에 근무하여 남보다 다소 여유 있는 경제 여건으로 어려운 이웃이나 동네 어르신 섬김에 모범을 보이셨다. 한학에 뛰어난 부친은 면사무소에 방문할 경우 민원업무도 봐주시고 어르신들이 필요한 공문서도 대신 작성해 주는 등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그런 분이었다.
모친은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셔 동네의 사랑방 주인이셨다. 특히 그녀의 집에서 TV가 동네에서 유일하게 있어 많은 마을사람들이 시청하기 위해 모여 사람 사는 동네를 연출하기도 했다. 생활이 어려운 동네 어르신이 그녀의 가게에 오면 모친은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그냥 드리기고 하고 옷이 허름하면 선물 받은 옷을 주는 등 온기가 많으신 분이었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년에서 키가 가장 컸다. 당시에는 키가 커 늘 불만이었지만 다행히 초등학교 5학년 때 성장이 멈춰 일반 학생의 키가 되었다. 또래보다 키가 큰 그녀는 학교 대표로 배구, 농구, 탁구, 여자축구 등 많은 종목의 선수로 선발되어 각종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기타 매체에서 주관한 사생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등 예체능에 능했다. 더욱이 정의에 불타는 여전사처럼 친구들이 불이익을 당하면 해결사로, 남자 또래들이 짓궂게 하면 보호자로서 역할을 하여 친구들의 중심에 서곤 했다. 더욱이 오빠 밑에서 생활을 한 그녀는 여자놀이 보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칼싸움, 총싸움 등에 더 익숙했고 여자아이로 유일하게 골목대장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곧장 모친의 가게로 달려가 매장을 돌보는 효심도 깊었다. 어린 아이로 먹고 싶은 것이 많을 때는 모친 모르게 과자를 가져가기도 했지만 어려운 친구에게는 모친 몰래 과자를 주기도 하는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 이러한 것을 다 아는 모친은 딸이 대견해 모르는 척하며 모녀의 사랑을 더욱 키워갔다.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부친의 회사문제로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고향에 살기를 원했지만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대구에 도착하자 도시규모와 문화는 봉화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구 문화에 익숙해 지다보니 1학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오빠가 농업을 하면서 인사사고가 발생되어 그녀의 집안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다. 그 어려운 생활에도 그녀는 친구들과 매달 경로당과 고아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다.
그녀가 중학교 3학년이 될 즈음 인문계와 실업계를 두고 많은 갈등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과 장학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업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꿈 많은 여고시절 그녀는 외롭고 힘들 때 독서로 마음을 달랬다. 중학교3학년부터 시작한 또래 과외를 연속적으로 실시하여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성숙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모 영화감독의 길거리 캐스팅을 받아 잠시 연극을 하면서 교회나 학교에서 공연을 하여 찬사를 받기도 했고 다행히 졸업을 앞두고 유명 전자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입사동기 세 명이 같은 부서로 발령을 받았지만 그녀의 학력이 가장 낮아 상사로부터 궂은일들을 강요받는 사건들이 빈번했다. 그녀는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갖고 입사 2개월 만에 퇴사를 하고 말았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퇴사를 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할 일이 없어 무료하게 집에서 있다 인형극단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직접 배경을 만들고 현수막, 탈인형 등을 직접 제작하며 인형극의 저변확대에 기여했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다 지인의 소개로 네트워크 사업을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30명의 직원을 모집하여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나중에 다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어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직원들에게 빚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자신의 이익금을 전부 분배해 줘 일부는 그 자금으로 사업을 하여 성공한 사람도 있다고 소식을 들어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사업을 접은 그녀는 새로운 직장에 취업을 하고도 인형극, 과외지도 등 20대 중반까지 하루에 3시간이상 잠자지 않고 열정적인 삶을 추구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한국방송통신대학 불어과에 입학을 하여 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인형극이 프랑스와 연관이 많아 불어 공부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그 과정을 눈여겨 본 지도교수가 프랑스로 유학을 권했지만 부모님들의 완강한 반대로 포기를 하고 말았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공부대신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서도 그녀는 소외지역에 봉사를 꾸준히 하면서 미용봉사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머리손질을 해 주는 봉사가 미약하여 그녀는 직접 미용봉사를 위해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료 학생들보다 몇 배 연마하며 우수한 실력으로 미용실을 개원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그녀는 맞춤조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두피케어 시스템 제품 연구에 몰두하여 자신만의 두피탈모 관리제품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탈모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 중년 여성이 중앙에 머리카락이 있고 주변에 탈모가 심해 유명배우처럼 붙임머리를 해 주면서 자신이 만든 탈모 팩을 제공해 주었다. 몇 달 후 탈모 여성이 가발을 벗고 새로 자라난 머리카락을 보여줘 그녀의 실력이 삽시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많은 단체와 기업에서는 그녀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강사로 초빙했다. 전문대학에서 학부강의,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초청강의, 초빙교수와 대기업의 화장품관련 외래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해외에서까지 그녀를 초청하여 두피클리닉, 컬러링 분야의 전문강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여성기업가로서 모범을 보이다.
몇 년이 지나 수요량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도저히 맞춤조제로는 공급해 줄 수가 없어 2012년 K1-CURE브랜드를 런칭하게 되었다. 그녀는 OEM으로 탈모제품을 생산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 필리핀 등에 수출을 하고 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녹색어머니회에 가입하여 급식봉사, 시험감독, 안전교통질서 등 아이들을 위한 봉사에 빠짐없이 동참했다, 그리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신문사와 연계하여 필리핀의 빈민촌에서 미용봉사, 홍천군에서 열린 이웃나눔행사에서의 미용봉사를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 주변의 쉼터와 노인정, 특수학교, 복지관 등에서 정기적으로 미용봉사를 실천했다.
그녀의 제품이 널리 인정을 받자 각종 뷰티박람회에서 후원사로 요청을 받아 여러 대회의 공식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16, 2017년도 충북오성뷰티박람회의 공식후원사로 지정되어 충청북도 도지사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고, 여성기업가로서 사회봉사참여의 공로가 인정되어 경기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아 그녀의 노고를 덜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의왕시 1인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 입주기업으로 획기적인 생산과 판매로 의왕시로부터 생산왕의 상을 받아 두피케어의 산실로 인정받고 있다.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었던 방송통신대학 불어공부 대신에 그녀는 세계사이버대학교와 국제디지털대학교를 다니며 자신이 부족한 지식을 채워 나갔다. 두피케어로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지식은 자신이 터득해야하기에 밤늦도록 학구열을 태웠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사회와 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위해 여러 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강하면서 올바른 경영자의 양식을 터득하기도 했다.
그녀는 국민대학교 미용예술아카데미에 출강하여 제자양성과 제자들의 사회진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것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자신의 노하우를 쉽게 전수하며 다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여장부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인내심도 많고 자상하며 감동을 주는 동반자로서 최고다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청년들이 자신만 알고 감동이 없다. 어디에서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일러주고 있다. 우리 삶에 나누는 정에는 감동이 기본이며 그 감동에 의해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가 된다고 경험을 말해 주었다.
시골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꿈을 키우며 여성사업가로 봉사자로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는 김진숙 대표이사. 그녀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업을 전개하며 보답이 필요 없는 봉사에 솔선수범하기에 더 아름다워 보일지 모른다.

약력
경북 봉화군 출생
세계사이버대학교 졸업
국제디지털대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외 다수 대학교 강사역임
뉴우먼클럽 제2대 회장
국회의원 표창장
경기도지사 유공자 표창장
충북도지사 감사패
의왕시장 표창장
경기중소기업청장 표창장
칼럼리스트
컬러링CD 1집,2집 출판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아로니아 원료 공동기술개발 및 논문발표
대한민국 新한국인 사회인부문 선정
최우수 전문가 두피모발부문 선정
현대한국인물사 등재
가라사대(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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