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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섬김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정국 박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12월 31일
낮은 곳에서 섬김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정국 박사
ⓒ 경기헤럴드

어려서부터 우리는 우둔할 정도로 노력하면 반드시 꿈이 이뤄진다는 우공이산을 익혀왔다. 작금에는 도전하는 분야가 다양한 반면에 도전정신이 빈약하여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극빈의 환경을 극복하고 낮은 곳에서 어려운 이웃을 섬김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정국 박사. 그는 우공이산의 본보기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희망을 찾다.
1004개의 섬과 흑산도로 유명한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도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해야 했다. 부친은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여 생계를 유지했지만 가족들의 안전한 생활과 교육에 만전을 기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폐결핵으로 한쪽 폐가 정상이 아닌 모친도 부친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품삯을 팔아 자식들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눈물 나는 노력을 하셨다.
특히 우이도는 벼농사가 되지 않아 그의 부모는 약초와 수확한 해초 등으로 쌀을 바꾸는 물물교환으로 먹을거리를 해결해야 해 그는 초등학교 시절 잡곡이 없는 쌀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글을 썼다고 한다.
어린 그는 가난이라는 굴레를 잊으려고 모범적인 생활에 앞장섰고 또래들은 그를 반장으로 추천하여 줄곧 졸업할 때까지 반장을 맡아 리더십도 키웠다. 방과 후에는 바닷가로 나가 미역이나 톳을 채취하고,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길러오는 등 모친을 도와주는 효자였다. 더욱이 집에서 키우는 염소와 소의 꼴은 그의 몫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우이도에 중학교가 없어 목포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부친은 그의 누이를 목포로 같이 가게 하여 1학년 1학기까지만 자취를 도와주도록 했다. 고향에서 목포까지 쌀과 반찬을 가져오는 그는 아침 8시에 출발하면 오후 2시경에 도착하는 긴 시간에도 부모에 대한 불만보다는 성공하여 부모님을 모셔야겠다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주말에는 독서로 고향을 잊으려고 노력했고 반찬이 떨어질 때는 김치조각 하나로 끼니를 해결하는 등 처절한 자취생활에도 학생의 신분을 이탈하는 행동은 일체 하지 않았다.
성적이 상위권에 있었던 그는 목포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친구의 참고서를 빌려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항상 정의로운 그는 친구들의 추천으로 2학년과 3학년 때 반장을 맡아 어른스런 일들을 하곤 했다. 같은 반 친구가 결석을 하면 친구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이견이 있으면 늘 양보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친이 그를 찾아 오셨다. 부친은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줄 수 있지만 대학은 보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며 취업준비를 하라는 절망의 말씀만 하시고 가셨다. 이 소식을 들은 큰 형이 그를 찾아와 대학을 보내 줄 테니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그러나 대입이 다가왔을 때 큰형의 사정이 좋지 않아 큰형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에 그는 가난에 한탄하며 처음으로 소주를 먹고 며칠을 괴로워했었다.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다.
그는 야간대학이라도 가서 대학을 졸업하겠다는 신념으로 건국대학교 야간학부에 응시하여 합격을 했다. 합격증을 가슴에 품고 서울에서 목포까지 11시간 30분이 걸리는 완행열차 속에서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한없이 울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들어가지 않는 국립세무대학을 목표로 목포에 있는 동생의 자취방에서 1년동안 재수를 했다. 그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국립세무대학에 당당하게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기숙사가 완비되어 있는 학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는 2기로 입학하여 학교가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는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다양한 봉사활동과 학교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부천세무서에 발령을 받았다. 그는 첫 월급을 받고 꿈만 같은 현실에 만족하며 6개월 후 군에 입대를 했다. 그가 전역 후 수원세무서에 발령을 받았다. 7년 동안 연애한 집사람과 결혼하며 가난의 그늘을 벗어날 즈음 둘째 아이로 인해 그의 인생에 새로운 고뇌가 다가 왔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위급하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되지 않는 장애아가 되었다. 병원 측에서는 치명적인 장애라 생존에 대해서도 장담할 수 없다고 그에게 절망적인 말을 전해 주었다. 그와 그의 부인은 새벽에 교회를 가 절규의 기도를 드리며 회복을 바랬지만 지금까지 28년 동안 그의 부부는 아이의 보살핌에 빈틈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생활로는 세무공무원을 계속 할 수 없었다. 자식을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는 부인 모르게 감정평가사 공부를 4년 동안 했다. 그는 감정평가사에 합격을 하고 정든 세무공무원직을 내려놓고 감정평가법인에 취업을 했다. 그의 첫 급여가 세무공무원보다 몇 배 많아 둘째의 보살핌에 조금 더 수월해 졌다.
업무와 가족을 위해 일을 하다 보니 늘 부족한 공부에 대해 등한시 했던 그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에 편입을 해서 8년 만에 졸업을 했다. 이왕 공부를 시작한 김에 그는 다시 고려대학교정책대학원에 입학을 하여 비상장주식가치평가에 대한 연구를 하여 한국재정정책학회에 발표를 했다. 학회에서는 좋은 논문으로 평가를 해 줘 그는 용기를 얻어 경원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제학과에 입학을 했다. 바쁜 업무에도 그는 박사과정만큼은 풀타임으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보다 몇 배 이상 공부에 매진해 한국상업교육학회, 한국재정정책학회에 발표하는 등 학자의 길을 걸었다,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사)한국재정정책학회 부회장, (사)한국상업교육학회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학회지 발행, 학회발전에 일조했다. 또한 그는 경제학과 재정학과의 후학을 위해 강의하면서 미완성 재정학을 출간했다. 자신이 다니던 법인을 그만 두고 자신만의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는 잘못된 감정평가로 피해보는 시민이 없도록 노력했다. 그가 평가를 하던 중 내수면 어업 보상평가를 맡아 올바른 평가를 했지만 상대방에서는 잘못된 평가라면 80억 원의 소송을 제기하여 그를 압박했다. 그는 실증적 증거로 국민의 혈세를 막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낮은 곳에서 섬김의 롤모델이 되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안양시의 시민으로 안양발전에 동참하기 위해 여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국민생활체육 안양시인라인연합회의 회장에 선출되어 경기도대회에 출전하여 준우승과 우승을 일궈냈고 자체 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성화에 기여했다. (사)한국청소년운동연합안양지회 회장으로 독도탐방과 지킴이 활동, 백두산 등정, 장애인인라인스케이트대회를 개최했으며 청소년쉼터에 지원하며 서대문교도소, 고궁견학 등 문화정서함양에도 기여했다.
안양 새중앙교회 산하의 재단인 (사)돕는사람들 이사를 맡아 수리장애인복지관과 만안종합사회복지관 후원사업, 소외계층 후원사업, 어르신 섬김, 무료급식봉사 등 낮은 곳에서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안양시산악협회 회장을 하면서 회장기등산대회 2회, 시장기등산대회 1회를 개최해 안양시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하여 많은 회원들과 시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사)녹색환경실천본부 상임부총재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안양천 살리기, 환경계몽운동, 청소년 전국미술대회 등 다양한 사업이 극대화하도록 조언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안양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면서 지인들과 정당에서 선출직 선거에 출마하도록 권유를 받았다. 그는 여러 환경으로 고민을 하다 2004년 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했다. 그러나 선거는 석패로 끝났다. 많은 시민들이 선거에 도움을 주었지만 상대는 같은 호남출신의 거물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학자의 길을 가려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하지만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눈물을 회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조직을 정비하여 2008년 제 18대, 2012년 제 19대, 2016년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축복의 장으로 인도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제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조직특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더불어민주당 민생본부 부본부장 등에 위촉되어 당 발전에 자신을 헌신했다.
모범적인 활동으로 그는 통일부장관 표창장, 청정국토만들기운동본부 회장 표창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우수상 표창장,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 CEO대상 등을 받아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격려를 받았다.
그는 몇 번의 선거에서 패배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미국대통령이 된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링컨의 어린 시절이 그와 비슷하였고 틈틈이 지식을 쌓아 미국의 대통령이 된 링컨을 늘 닮고 싶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크게 가져라,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일러주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의 꿈을 조금씩 키워 나갈 때 자신이 바라는 이상의 꿈이 실현된다며 자신의 삶을 들려주었다.
자식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는 모친의 정성과 부지런하심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는지 모른다. 그런 모친의 사상을 이어 받은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에게는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기에 표본이 되어 존경을 아니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약력
전남 신안군 출생
목포고 졸업
국립세무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졸업
경원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경제학 박사
국립세무대학세무사회 자문위원
(사)한국재정정책학회 이사
제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조직특보
제 17대, 제 18대, 제 19대, 제 20대 국회의원 총선 안양 동안을 후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더불어민주당 민생본부 부본부장
(주)두요감정평가법인 대표이사
통일부장관 표창장
청정국토만들기운동본부 회장 표창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우수상 표창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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