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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는 약사로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박국서 약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10월 30일
ⓒ (주)경기헤럴드


건강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평온한 사회의 모델이다. 아무리 부와 명예가 많다 해도 건강을 잃게 되면 생의 사상누각이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시민의 건강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하며 양약과 한약의 조화로 환자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는 박국서 약사. 그는 약사로서 본분을 다 할 뿐만 아니라 개발자로서 특허를 획득하는 등 우리 식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낭만적인 청년기를 보내다.
충청도의 교육, 행정, 정치의 중심시지인 대전광역시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육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성품이 어질고 착해 그의 조모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의 조모는 간식거리를 다른 손자들에게 주지 않아도 그에게는 꼭 챙겨주며 품안의 사랑을 가득 줘 그가 명랑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셨다.
그의 부친은 철도공무원이라 전근을 자주 다녔다. 직업상으로 가정에 충실하기 어려워 자식교육이나 집안 살림은 모친이 도맡아 해야 했다. 모친은 가풍 있는 집안에서 성장하여 고리타분할 정도로 고지식하셔 자식들의 흐트러진 모습만 봐도 용서를 하지 않을 정도로 엄하게 키우셨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어도 부친의 전근으로 네 번이나 전학을 가야 했고,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친구들을 사길 수가 없었다. 타고난 머리가 우수한 그는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또한 전학 가는 곳마다 친구들 중심에 서곤 했다. 장거리 육상이나 여러 운동을 잘 한 그는 승부욕도 매우 강했다. 선배들이 싸움을 시켜도 그는 지는 법이 없었으며, 운동과 공부도 잘하며 예의범절이 깍듯한 아이였다.
당시 중학교는 시험을 보고 입학하는 시절이라 공부보다 놀기를 좋아한 그를 걱정하여 모친이 외사촌 형에게 과외를 맡겼다. 그는 짧은 기간에 대전에서 유명한 한밭중학교에 합격을 했다. 비록 입학시험은 꼴찌로 들어갔지만 첫 번째 시험에서 전교 13등을 하여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놀라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많은 전학으로 인해 바람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 그는 공부보다 학생들이 해서는 안 될 음주를 하고 말았다. 담임선생님은 그를 호출하여 부모님을 학교로 오시게 했다. 자식에게 엄한 부친이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나오시면서 그를 보고 웃으며 격려를 해 주는 것이었다. 겁에 잔뜩 질려 있었던 그는 뜻밖에 일이라 걱정이 더 되었다. 집으로 귀가한 그는 부친으로부터 담임선생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담임선생님은 의지가 강하고 머리가 좋으니 나중에 큰 일할 아이라며 칭찬 일색으로 그를 옳고 곧게 성장하도록 말씀해 주신 것이었다.
그는 반성의 의미로 부친에게 참고서를 처음으로 부탁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교입학시험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하여 충남고에 당당이 합격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 그는 타고난 기질이 있어서 인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를 게을리 했다. 아마 술을 좋아하는 부친의 유전자가 그에게 전이되어 가무를 좋아하게 된 그는 성적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학과 수학은 잘 해 당시 국영수와 선택 한 과목을 시험 보는 대입제도로 그는 조금만 노력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자만이 있었다.

자신의 책무를 완수하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어울리는 친구들로 대학 간다며 서로 만나는 기회가 적어 그도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어도 마음속으로는 서울대 공대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희망한 대학에 갈 실력이 되지 않아 당시 인기가 많았던 약사의 길로 가기로 결정하고 약대의 명문대학교인 충북대학교에 응시를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무리라고 염려를 했지만 그는 우수한 실력으로 합격을 했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공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수업시간에 다시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행히 수업시간에 한 교수로부터 지적을 당하기고 했고 그로 인해 성적은 모두 D학점이 나와 재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대학 수업에 흥미를 잃은 그는 의대와 병행하는 농촌봉사활동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을 했다. 무료진료봉사가 그에게 진짜 약사가 된 듯 한 기분을 전달해 줘 4학년 때부터 공부에 매진했다. 대학 3학년 때까지는 공부하지 않은 약대생으로 낙인이 찍혔던 그는 서울 이화여대에서 치러진 약사국가고시에서 신화를 낳았다. 대부분 교수들은 그가 합격하면 다 합격이라고 할 정도로 그를 무시했었다. 그는 보란 듯이 합격을 했다. 이상하게도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약사국가고시 등 모든 시험에서 자신은 걱정하지 않는데 남들이 걱정하게 만드는 묘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군대에서도 유명한 이력을 남겨 놓았다. 대부분 약대 졸업생들은 의무병으로 입대를 하는데 그는 일반 병과로 입대를 했다. 그는 군사령부에 배치되어 근무하다 장기복무를 신청하겠다는 소문이 부대에 퍼졌다. 군사령부 참모가 그의 이력을 보고 정신 차리라고 최전방으로 재배치를 하고 말았다. 그는 공병대로 배치되어 고생할 것으로 겁먹고 있었는데 행정병으로 차출되어 고생대신 정신을 더 헤이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관리약사로 1년을 근무하다 고향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낭만과 풍류를 좋아한 그는 부산이 너무 그리웠다. 그는 약국을 다 정리하고 부산에서 다시 개업을 했다, 부산에는 선배 두 분이 있었는데 그에게 많은 용기를 주셨다. 그는 부산에서 약국을 운영하면서 청년회의소(JC)에 가입하여 사회의 견문을 넓혀 나갔다. 청년회의소 회원들과 지역발전, 소외계층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활동을 하면서 사귀게 된 지인이 특허를 가지고 사업 투자를 권유해 그는 과감하게 투자를 했다. 결과는 투자 금액을 전부 날리는 허무뿐이었다.
그는 한 동안 실의에 빠지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한약서적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한학은 공부할수록 실력이 느는 학문이라 그는 대부분 약사들이 등한시한 한학을 독학으로 연마했다. 동양의학은 이천년 동안 임상 실험을 통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자연치료효과가 높다고 그는 약사이지만 한약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또한 한약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데 매우 유용하여 그는 양약과 한약을 병행해 환자들에게 신뢰감을 받고 있다.

앞서가는 연구와 개발을 하다.
젊은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그는 고향에 가기에도 멀고 해서 지인의 권유로 서울 용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개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용산재개발로 인해 그는 의왕시로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는 서울과 의왕에서 생활하면서 지역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국제라이온스클럽에 가입을 했다. 그는 업무로 봉사에 직접 참여를 하지 못해도 장애인가족, 독거어르신,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 후원과 약품전달은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였다. 그가 의왕에 있을 때 한 지인의 가족이 3개월 동안 의식이 없어 고민하다 그에게 왕진을 부탁했다. 그는 환자를 보고 한약처방을 내려주었다. 약 10일이 지나자 환자는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완쾌되어 전주에서 의왕까지 보약을 지러 올 정도로 그의 신의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수도권으로 이사를 온 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즈음 한 지인이 어린이교재에 투자하자며 사업계획서를 그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상세히 검토한 후 미래의 사업성이 보여 투자를 결정, 다시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접고 투자를 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돌아온 것은 아픔의 상처였다. 평소에 개발과 창의성을 높게 인정받아 왔던 그는 자신이 직접 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액체 식자재(참기름, 들기름, 식초 등) 용기들이 산소와 교류되면서 산패(산화)되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여 그는 실패를 거듭한 결과 4년 만에 한국과 일본에서 특허 등록을 했다. 지금은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 특허출원을 해 놓은 상태로 그가 발명한 공기차단형펌핑용기는 많은 국민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군포시에서 공기차단형펌핑용기를 개발하고 생산만 남겨 놓은 상태에서 사회활동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주변에서 후원금을 요청할 때는 주저 없이 후원에 동참했지만 실질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최근에 지역에서 사회봉사를 많이 하시는 분이 같이 활동을 권해 다양한 사회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그는 군포시시각장애인협회 고문약사로 위촉받아 시각장애인들의 건강증진에도 심혈을 기우리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문화소양을 위해 전국수리청소년문학대전추진위원, 소외계층과 무료책자보내기 운동을 하는 동행의 릴레이 이사로도 동참하고 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에서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을 승화한 이 장군의 정신을 그는 항상 존경하며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은 끝장을 보는 불굴의 의지를 주문했다.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할 경우에는 어떠한 성과를 얻을 수 없어 강인한 투지만이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해 준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도 자신이 맡은 일만큼은 책임을 다 하는 박국서 약사, 그는 발명가로, 한약우수성을 대외적인 홍보와 연구로 양약과 한약의 앞서가는 약사로 존경받고 있다. 건강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 평온한 공동체가 된다며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의 조화를 위해 지금도 헌신하고 있는 그는 주위에서 존경받기에 충분했다.

약력
대전광역시 출생
충북대학교 약학과 졸업
약사국가고시 합격
약사
부산JC회원 역임
국제라이온스클럽 이사 역임
군포시시각장애인협회 고문약사
동행의 릴레이 이사
한국특허등록
일본발명특허등록
미국·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 특허출원
생생당 약국 대표 약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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