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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과 정의로 사회를 밝게 만드는 최형원 원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06월 01일
ⓒ (주)경기헤럴드


격식과 수직보다는 보편적이면서 수평적인 관계에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은 친구가 존재한다. 나이가 같아야 친구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함께 동행하면 친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최형원 원장. 그는 치과의원을 운영하면서 장애인친구, 어려운 친구들을 후원하면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사람에게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회생활을 한다. 그로 인해 그와 만난 사람은 쉽게 그를 떠날 수 없고 그가 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끝을 같이한다.

정의가 넘치는 아이로 자라다.
석공예와 화강암으로 유명한 전북 익산시 황등면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4남1녀 중 넷째로 태어나 성품이 옳은 아이로 성장했다. 부친은 농사로 공부를 시킬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의 부친은 자식들을 믿어주고 자식이 하고 싶은 일에 신뢰와 기다림으로 믿음을 주시는 분이였고 조부를 모시는 효자였다. 모친도 부친과 같이 자식만을 위한 삶을 영위하셨고 언제나 따뜻한 분이셨다.
그가 어려서부터 리더십이 강했다. 지금의 키가 초등학교 5학년 키라서 선생님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특히 반장을 하여 선생님들은 그의 의젓함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곤 했다. 선생님의 오해로 야단을 맞아 억울함도 있었지만 그는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학교생활을 더 열심히 하여 오해를 한 선생님이 그에게 사과를 할 정도로 정신세계가 높았다.
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1학년 때 반장을 하며 친구들의 권익에 앞장섰다. 한번은 그와 친한 친구가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그는 하지 못하도록 가해자 친구에게 가서 따졌다. 그러자 가해자 친구가 10여 명의 또래를 데리고 와 그를 집단 구타하고 말았다. 그는 맞으면서도 당당하게 그의 친구를 보호해 주었다. 나중에는 가해자가 미안한지 그에게 더 잘 해 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이리상고를 가고 싶어 하는데 선생님이 다른 상고를 추천해 주셔 그의 친구는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는 선생님께 친구의 미래를 위해 이리상고로 가게 해 달라고 했다가 엄청 매를 맞고 수돗가에서 한 서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를 아끼던 영어선생님이 그에게 다가와 너의 맘을 다 안다고 격려해 주었을 만큼 선생님들도 그를 사랑해 주셨다. 이토록 그는 친구들의 아픈 마음을 만져주고 같이 아파하는 의리 있는 학생이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생활기록부를 보니 정의감이 있는 학생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중학교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책임감이 매우 강했다. 그 당시 대부분 화장실이 재래식이라 시간이 지나면 화장실에 인분이 가득 차 아버지들이 망우를 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친이 바쁜 관계로 인분이 계속 쌓이자 그는 중학생 신분으로 망우 통을 지며 깨끗하게 치우곤 했다. 중학생이 망우를 치면 친구들을 볼 때 민망할 텐데 그는 부끄러움 없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승화할 줄 아는 아이였다.

효손으로 칭송을 받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부친이 공부에 방해되니 많은 친구들을 사귀자 말라는 조언에 공부만 했다. 익산 남성고등학교는 지역의 수재들만 입학하는 학교라 인근에서 명문고로 통했다. 그러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왜 사는 가? 에 대한 사춘기가 그를 찾아 왔다.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한 부친이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는 말씀에 큰 무리 없이 사춘기를 넘겼다.
불타는 정의는 그를 고등학교 때도 가만히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친구 한 명이 어려워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 다니기 힘들게 되자 자신의 등록금을 대신 내 주었다. 때문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학여행도 포기해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2학년 때 통학하는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에게 피우지 말라고 했다가 가방까지 잃어버리는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다. 결국 담배피운 친구가 사죄를 해서 일단락되었지만 그는 정의감을 무기로 육군사관학교를 목표로 공부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3학년이 되어서 특별전형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포기하고 병석에 누워 계신 조부를 생각하고 의대를 꿈꾸기 시작했다. 조부가 약 3년 정도 병석에 누워 계실 때 그는 조부의 변과 오줌을 다 받아 내는 효손이었다. 학생의 신분으로 병수발을 한다는 자체가 대단하여 동네에서는 효손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조부가 돌아가시자 이모부가 그를 불러 돈 봉투를 주며 그의 노고를 치하해 줄 정도로 그의 효성은 지극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학과인 전북대 치과대학을 합격을 했다. 대학에 입학을 해 보니 자신이 원하는 풍토가 아니었다. 예과 1학년 때 그는 참다못해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본과에 올라가면서 전공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도 받으며 나름대로 공부를 잘 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공중보건의사로 군복무를 시작했다. 고향과 가까운 곳에 배치 받아 환자들을 가족처럼 치료를 하여 주민들로부터 착한 의사로 통하기도 했다.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그는 고창에서 개원을 했다. 시골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임상을 중심으로 다시 전공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러다 그는 안양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배의 권유로 안양으로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안양에서 유명한 중화한방병원 건물에 치과의원을 다시 개원한 그는 어려운 분들에게 무상으로 틀니나 치료를 해 줄 뿐만 아니라 장애인단체에 후원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러나 착하고 착한 그에게 불행이 다가 왔다. 그의 아들이 장애가 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린이집 원장이 주의 깊게 보라고 해도 그의 부부는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집사람과 병원으로 바쁜 그는 설마하면서 생활에 충실했다. 그러나 아들의 장애가 심해지자 그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장애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수녀님를 예방하여 자문도 받고 온 식구가 성당에 나가 간절한 기도에 매달렸다. 한번 장애를 얻은 아들은 정상인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장애 아이들을 잘 관리하는 기관에 맡기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남편의 헌신적인 아들 사랑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던 그의 아내는 집근처 초등학교에 특수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여러 기관에 하소연하여 특수반을 만들게 했다. 아들이 입학을 하면서 아들에게 안 시킨 취미가 없었다. 우연히 아들에게 탁구를 시켰는데 두각을 조심씩 보이기 시작했다.

장애가족의 체육증진에 앞장서다.
온 가족이 아들에게 용기를 주며 장애탁구선수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경기도장애인탁구대회에 처녀 출전을 했는데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본 지도자가 방법을 알려주자 순식간에 아이가 적응하기 시작됐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아들은 평택 에바다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그의 아들은 그곳에서 지도받으며 전국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고 2016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스페인오픈대회에 출전하여 단체전동메달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아들로 그의 시름이 깊어지자 그를 존경하는 지인들이 체계적인 장애인탁구지도를 권유해 주었다. 그는 여러 지인들과 함께 군포시장애인탁구협회를 설립하여 그의 아들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가족들에게 여가를 제공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를 가까이 하던 지인들이 거의 동참하여 군포시장애인탁구협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그는 부회장의 직책을 맡아 장애가족의 체육증진에 앞장서게 되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지역 활동에 열성적으로 동참을 했다. 안양지청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의료자문과 운영위원을 맡아 피해자들의 보호에 기여했고 안양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로 활동하면서 원칙을 준수하는 자문을 하여 공단으로부터 신뢰를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그가 거주하는 궁내동의 궁내동 주민자치위원, 궁내동 지역사회보장협의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지역주민의 단합과 소외계층 지원 사업에도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솔선수범하는 의사, 양심 있는 의사로 정평이 나자 궁내중학교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사양을 했지만 자녀가 그 학교에 다니고 있어 강의를 허락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쓴 일기장의 일부를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심어주었다.
그는 그의 부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한 명에게 그 몰래 용돈과 쌀을 지원해 주셨다고 한다. 그 친구는 미국에서 성공하여 가끔 만나고 있는데 부친은 남의 자식을 자신의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신 분이라 그의 부친을 닮고 싶어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고 일러준다. 아무리 좋은 꿈도 시간이 지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며 자신들의 꿈을 향해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가 본과 4학년 때 그와 결혼한 그의 아내는 자식을 위해 교사직도 포기해야 하는 모성애가 깊다. 이제는 자신의 노후보다도 장애아들의 미래에 더 책임을 져야하기에 그의 부부는 오늘도 아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희망을 가져본다.
어려서부터 효손이었고 친구들의 억울함을 대신해 준 그에게 장애아들을 준 하느님은 그의 본성이 착하고 장애아들을 훌륭하게 훈육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사랑의 선물을 주신 것이었다. 그 사랑의 선물이 모든 장애인가족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도록 최형원 원장 부부는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약력
전북 익산시 출신
익산 남성고 졸업
전북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안양지청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의료자문·운영위원
안양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
군포시장애인탁구협회 추진·준비 위원장
군포시장애인탁구협회 부회장
궁내동 주민자치위원
궁내동 지역사회보장협의회 위원
군포시장 표창장 수상
국회의원 표창장 수상
안양 미플러스 치과원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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