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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예의로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는 김영민 위원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04월 01일
ⓒ (주)경기헤럴드

자신이 태어난 고향만큼 애정을 갖고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거주하는 동안 그 지역에 애정이 많은 것처럼 포장하여 질타를 받는 정치인이 아니라 이주부터 지역의 애경사는 물론 지역의 각종 위원회에 동참하여 고향이상으로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김영민 대표이사. 그는 젊은 사업가로 성공뿐만 아니라 지역봉사에도 타의 모범이 되어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사업가의 꿈을 키우다.
3.1운동의 천안삼거리와 독립기념관으로 유명한 충남 천안시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서 사업을 하는 부친의 슬하에서 인성이 갖춘 아이로 성장했다. 자신에게는 엄하고 자식들에게는 관대한 부친은 여러 번의 사업실패로 가족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지만 늘 자상한 아버지였다. 모친은 부친의 사업으로 자식들이 무거운 마음을 갖지 않도록 언제나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한 전형적인 우리나라 어머니셨다.
그가 다섯 살 때 부친의 사업으로 안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어려서 이사를 와 고향에 대한 향수는 거의 없는 시기라 이사 온 안양에서 또래들과 잘 어울렸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어도 그는 늘 또래들을 리더 했고 그의 주위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모친의 높은 학구열로 그는 상위권의 성적으로 집안에 희망이었다.
중학교는 군포에 있는 산본중학교로 진학을 하여 초등학교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 그는 짧은 시간에 우정을 쌓았고 많은 또래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부친의 사업이 부진하여 착한 그의 마음에 멍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책과 멀어지는 생활에 익숙해 졌고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친에게는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는 자신이 목표로 세운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한 번 방황한 순간이 그에게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오직 학교생활만 잘 하는 모범생으로 생활하고 싶어도 부친의 사업이 불안전하여 그는 집에만 오면 좌불안석이었다. 그래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만은 열심히 하자는 모친의 설득에 그는 독서실을 다니며 목표를 정한 대학 진학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는 수도권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신의 꿈을 키우려고 했지만 부친이 마산에서 어렵게 시작한 사업을 위해 부친 곁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다행이 인근에 대학이 있어 그는 무역학과에 합격을 해 부친과 함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생활보다 부친 사업을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심지어 학기 중에도 부친이 운영하는 회사의 현장 노동일과 관리업무를 해야 했고 식사준비와 제반문제는 그의 몫이었다. 비록 학업에 열중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경험을 얻었던 그는 대학 친구들로부터 준사회인이라는 호칭까지 받는 어른스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헌신적인 봉사를 전개하다.
그는 대학졸업 후 모든 기업체의 기본 역량이 영업과 인맥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현대자동차의 영업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는 현장에서 열심히 뛰었고, 영업기간 대비 많은 실적을 올려 회사와 동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영업에 어느 정도 익숙할 즈음 외숙부가 운영하는 금형 제조업체에 경영수업을 받으라는 권유로 그는 퇴사를 하고 재입사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경영지원, 영업, 재무, 재고 등 회사의 모든 업무에 집중한 결과 200억 매출규모의 금형소재 제조업체인 대일스틸(주)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학창시절이나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그냥 공부만 하고 회사만 다니는 단순한 생활이 싫었다. 그는 지역사회의 구조와 현안에 항상 관심이 쏠려 있었고, 다양한 지역 단체의 활동에 직접 참여하여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당시 군포는 산본 신도시라는 새로운 대규모 주거단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은 고장이라서 유래가 깊고 규모가 큰 다른 도시들에 비해 지역에서 오래도록 살며 정을 나누고 지역발전을 고민하는 조직들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산본의 오랜 선후배들이 모이는 청년조직인 ‘산본청년회’ 라는 청년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그가 청년시절부터 지역경제활성화에 관심이 높았다. 그는 산본청년회의 회장을 맡아 회원 간의 친목과 정보교류, 올바른 세무 등 청년기업인들이 사회로부터 인정받도록 올바른 기업인상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6기 자문위원으로 추천이 되어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활동에 동참하여 안보의식계몽과 견학을 통해 투철한 안보관을 갖도록 노력했다. 학창시절 방황이 얼마나 인생에 중요한지 알고 있는 그는 태을초등학교 운영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학교발전과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행정이 되도록 모범적인 운영위원회를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스카우트 중부중등지역협의회 부회장에 위촉되어 학생들의 대외봉사활동과 건전한 활동이 되도록 그는 그의 힘이 다 닿는 범위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특히 군포시 거주 청소년들의 인재육성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군포사랑장학회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삼천만원의 장학기금을 출연하여 지역인재 육성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올바른 장학사업 수행의 선봉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감사로 선출된 이후부터는 장학회 운영이 투명하도록 감사와 후원금 계발에도 앞장 서 명실상부한 군포사랑장학회가 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가 산본중학교를 졸업한 후 동문들이 동문회를 구축하자는 제의에 흔쾌히 승낙을 하고 산본중학교총동문회 초대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학교 측과 많은 대화를 통해 학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동문회로 발전시켰고 동문회의 활성화에 누구보다도 노력을 했다.
그는 국민생활체육 군포시족구연합회 상임부회장을 맡아 군포시의 족구활성화와 족구장 설치에 기여했으며 족구동우회의 저변확대에도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산본라이온스클럽 부회장으로 재임했을 때는 어려운 어르신이나 장애인가족, 수해지역 후원 등 국제봉사단체의 회원으로서 게으르지 않았다. 군포경찰서 수사민원심의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에는 공정한 수사, 피해있는 시민이 발생되지 않도록 심의에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밖에도 산본2동 주민자치위원회, 새군포회, 재단법인 군포문화재단 이사, 사단법인 한국커뮤니티연구원 상임이사 등 지역을 위해서라면 그는 어느 위치에서든 최선을 다했다.

존경받는 기업가가 되다.
지역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중소기업체 대표로서의 생활과 지역의 여러 현안에 대한 관심과 역할을 담당하는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지방자치 행정과 정치가 추진되는 과정을 보니 문제의식이 점점 커갔다.
그가 참여하는 단체는 늘 소통을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정치나 행정에 있어 시민들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독단적이고 정략적인 현상을 보고 가슴이 아파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는 새누리당 군포시갑 당원협의회 부위원장, 새누리당 군포시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 한나라당 군포시당원협의회 운영위원, 한나라당 경기도당 청년위원회 군포시지회장, 한나라당 중앙위원, 박근혜 대선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능총괄본부 특보, 이명박 대선후보 군포시 청년위원회 위원장, 유영하 총선후보 청년위원회 위원장 등 중요한 보직을 맡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이념으로 한 동안 고민에 빠진 그는 자신의 이념과 잘 맞는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군포시을 당협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정치세력에 도전을 한 바도 있다.
그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향인을 위해 새로 구성된 군포시충청향우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고 군포시충청향우회 이사를 맡아 선배향인들과 후배향인들 간의 교류역할을 원활하게 전개해 향인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다.
그 후 사업을 하면서 평소에 관심이 깊던 정치와 행정에 대한 전문지식과 소양을 키우고 싶었던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시절에 게을리 했던 학문에 대한 열망을 되살리고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자신의 교양도 더 함양하게 되었다.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우회에서 대인관계가 좋은 그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상호교류와 친목, 학교발전에 기여하도록 했다.
그는 일제침략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내며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고 해방 후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여 통일민족국가건설운동을 전개한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오직 민족과 동포를 위해 자신을 승화한 김구선생의 삶이 자신이 삶을 흐트러지지 않게 해 주고 있어 자신의 모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인성이 갖춘 인재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만 만족하고 타인의 인성이나 인격에 모독이 되지 않는 인성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사회 어디에서나 존경받고 인정받는다고 경험을 통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부친의 사업을 돕기 위해 자신의 꿈도 뒤로한 채 오직 부친 사업에 매진했던 젊은 대학생은 중견기업의 대표이사로 성공했고 그 성공을 기반으로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김영민 대표이사.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을 해야 진정한 교훈이 된다며 이타정신으로 지역발전에 헌신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의 사회사업처럼 우리 모두가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동참한다면 더욱 밝은 사회와 공동체가 될 것이다.

경력
충남 천안시 출생
산본중학교 졸업
양명고등학교 졸업
경남대학교 경상대학 무역학과 졸업 (91학번)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역임
산본중학교총동문회 초대회장 역임
태을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역임
한국스카우트 중부중등지역협의회 부회장 역임
재단법인 군포사랑장학회 감사
재단법인 군포문화재단 이사
군포시충청향우회 이사
대일스틸(주) 대표이사
군포시민대상 수상
바른정당 군포시을 당협위원장 역임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04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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