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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국악교육의 선구자이자 대모로 칭송받는 정성자 교수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02월 03일
ⓒ (주)경기헤럴드


학문의 영역을 구축하여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문화를 함양시키는 것은 그리 평범한 일이 아니다. 잊혀지기 쉽고 소홀하기 쉬운 우리 국악을 보편화하여 어린아이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고 국악의 명맥을 이어가는 정성자 교수. 그녀는 많은 교육자로부터 어린이 국악의 대모로 칭송을 받고 있다.

스스로 재능을 연마하다.
영남지방의 정치, 경제, 교육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가 그녀의 고향이다.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성품이 온화한 부친 슬하에서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 그러나 부친이 사업관계로 이사를 몇 번 가야하는 마음고생도 있었지만 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환경을 극복했다. 모친도 식당을 운영하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그녀는 유치원에 다닐 정도로 집안의 교육열이 높았다.
그녀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모친은 사방으로 찾아봐도 찾지 못하다가 이웃집 아이가 국악학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데리고 온 일화는 그녀의 국악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그녀가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에 텔레비전에서 국악이 나오면 밥도 먹지 않고 시청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국악에 빠진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도 계속되었다.
재능과 소질을 알아본 국악학원 원장이 그녀에게 레슨비도 받지 않고 가야금, 한국춤, 소리 등을 지도해 주었다. 나중에 모친이 이 사실을 알고 학원비를 내면서 가야금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야금을 수준급으로 익힐 무렵 부친의 사업관계로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쓴 그녀는 친구들에게 놀림도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국악공부에만 매진했다.
중학교로 진학한 그녀는 부친의 사업으로 다시 중학교 2학년 초에 춘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춘천은 그녀가 국악을 하기에 환경이 너무 좋았다. 호수와 산들이 많은 춘천시를 보면서 그녀는 가야금 연습에 손이 다 터질 정도로 혼을 다했다. 그 결과 그녀는 전국대회와 강원도 음악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해 서울시장상, 교육부장관상, 강원도 도지사상 등을 받아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다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었지만 고등학교는 중학교 친구들이 같이 진학을 하여 많은 친구를 사귈 수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그녀는 서울로 1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으며 전국대회에서 1등과 2등을 연달아 차지 해 춘천에서 유명세를 받기도 했다. 특히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운동장에서 시상을 할 때면 그녀의 마음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를 느끼곤 했다.
그녀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레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친이 식당을 운영하여 가능했다. 모친이 운영하는 식당은 춘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식당이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시장들이 맛보고 가는 식당으로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식당도 운영이 잘 되어 그녀는 편하게 서울을 오가며 가야금과 음악이론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최고의 어린이 국악 교육자가 되다.
그러나 그녀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부친이 돌아가셔서 집안이 급속도로 어렵게 되었다. 모친이 가게를 팔아야하는 환경에 도달하자 그녀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그녀의 모친은 그녀에게 레슨을 그만두게 할 수 없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패물을 팔면서까지 그녀의 뒷바라지를 다 해 주었다.
모친의 정성이 하늘도 감동했는지 그녀는 서울대학교에 합격을 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녀의 학교에서는 축하의 현수막이 내걸렸고 동네사람들은 합격을 축하해 주는 등 잔치 분위기였다.
어려움을 극복한 그녀는 서울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낭만을 접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졸업하기 전에 국립국악원의 연주단원으로 취업을 했다.
그녀는 국립국악원에 근무하면서 홍콩, 대만 등 해외순회 공연과 선화 예술 중·고등학교에 강사로 나가 국악의 저변확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체계를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을 해 교육자로서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그녀는 대학원을 졸업 후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학장인 김재은 교수의 추천으로 어린이 국악교육이란 첫 저서를 창지사에서 발간하였고 부산예술고등학교의 강사로 출강도 나갔다. 그녀는 어린이 국악교육의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 작품을 위한 프로그램개발의 노력으로 300여 편 이상의 국악작품을 악보화하였고 어린이 국악교육의 실제 등 여러 종의 교재를 발간하게 되었다.
그녀의 국악에 대한 학문적 체계가 널리 알려지자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과 서울예술신학교에서 출강을 요청해 와 대학 강의와 전국 유치원 원장 및 교사연수를 20여 년간 지속하여 왔다. 그 외에도 그녀는 한국방송통신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수원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중앙대 사회과학대와 생활과학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녀는 유아국악의 대모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명지대학교 예술종합원에서 유·아동 국악과 최고과정, 실기과정의 주임교수를 맡게 되었고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에서는 아동국악과를 개설하여 최고의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녀가 학생들의 지도로써는 어린이국악을 확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원장들로 구성된 300여명의 회원으로 한국어린이국악교육연구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회원들과 국악의 우수성을 전파하면서 그녀는 회장을 맡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제자양성에도 모범을 보였다.
그녀의 능력을 인정한 교육부는 유아국악 자료개발연구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유아들이 국악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자료연구에 참여하도록 했으며 사단법인 한국음악저작권 협회 이사, 서울 무형문화재 국악 전문위원으로 선임되어 그녀의 전문성을 발휘했다.
어린이국악이 저변으로 확대되면서 협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녀는 2001년에 사단법인 한국어린이 국악교육협회 이사장 및 회장으로 피선되어 7년간 전국 지회를 구축(서울, 경기, 천안, 대전, 전주, 광주, 구미, 진주 등)하고 현장 교사 및 국악인 등 6000명 이상 자격증을 발급하는 등 명실상부한 어린이 국악의 선구자가 되는데 부족함이 없게 되었으며 현재도 군포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그녀는 어린이들을 위해 150여 편의 국악동요를 작곡하여 작곡가로서 명성도 날렸다.

어린이 국악의 대모가 되다.
그녀의 화려한 국악교육자로서 먼저 알아본 곳이 매스컴이었다. 그녀는 KBS9시 뉴스, 아침의 창, EBS현장 리포터, EBS 교사를 위한 국악 방송, 안숙선의 명사와 함께 출연, 복지TV에서의 교사를 위한 국악교육, 방통대TV방송의 국악프로그램 등 수많은 방송출연으로 국악의 저변 확대에 일조했다. 라디오 방송은 KBS명사 초대 손님, 명사와 함께, FM 라디오 의 국악교육 인터뷰, 국악방송(어린이 국악), 불교방송 등에도 출연을 했다. 꼬망세, 월간유아, 일요서울, 음악신문, 에듀뮤직, 교육신문, 뮤즈월드, 시사음악신문, 예능교육신문, 여성일보, 폴라리스, 음악교육신문 등 음악에 조애가 깊은 전문지에서 그녀의 높은 국악수준을 조명하기도 했다.
그녀의 교사들을 위한 저서로는 교사를 위한 어린이 국악교육, 교사와 함께하는 어린이 국악동요, 어린이국악교육의 실제, 현장 교사의 음악인, 어린이 국악마당, 교육현장에 필요한 어린이국악 작품집, 유아국악교육, 교사와 함께하는 유아국악놀이의 이론과 실제 등 7권의 저술과 음악CD집 등을 통해 어린이 국악이론과 현장 교육자료를 집대성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연구한 실적을 학회에 발표하여 많은 지도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고 지역학교 특성화사업 모니터링 전문가 현장방문 심사, 한국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 전국 교사를 위한 국악 특별강습회 16회, 전국 어린이국악 발표회 9회 등 현장중심의 국악발전을 위해 자신을 승화하기도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친한 친구 따라 다니게 된 교회를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그녀는 현재 군포시에 소재한 은성교회의 성가대 지휘자, 중창단 단장과 이전에는 군포시민회관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전개해 지역문화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녀는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해 준 하나님께 가장 감사를 돌리고 싶다고 하였다.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목표를 세워서 정진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최고가 되는 것보다 필요한 인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며 목표를 위해서는 성실과 근면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국악에 빠져 자신의 재능을 연마하고 한국 최고의 어린이 국악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으로서 한계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의 국악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지도자와 제자들이 양성되어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우리나라 국악교육의 미래를 열게 된 그녀의 선견지명에 감사할 따름이다.

약력
대구광역시 출생
서울대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국립국악원 근무 역임, 수원여대 출강
명지대학교 예술 종합원 국악과 주임교수
명지대학교사회교육대학원 아동국악 담당교수
국악교육협회 이사 및 유아분과위원장 역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외래교수 역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원 아동국악 주임강사
전국 국악동요 대회 심사위원 역임
(사)한국어린이국악교육협회 이사장 및 협회장
한국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 중앙대 외래교수
(사)한국음악저작권 협회 이사
서울시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어린이 국악교육 외 6권 저술(창지사)
서울시의회 의장상 수상
강원도지사상 수상
서울시장상 수상
교육부장관상 수상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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