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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희생하며 최고의 공동체를 만드는 김진영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12월 27일
ⓒ (주)경기헤럴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사는 세상이 진정한 삶이다. ‘1등이 아닌 꼴찌도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라는 좌우명으로 기업을 경영하면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김진영 회장. 그는 뛰어난 아이디어로 명품 산업소재를 개발하여 국민의 안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직원들을 가족처럼 섬기며 많은 기업문화에 모범을 이루고 있다.

더불어 사는 마음을 배우다.
태교도시이면서 민속촌으로 유명한 경기도 용인시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1남 3녀 중 맏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의젓한 품행으로 칭찬을 받고 성장했다. 부친은 여러 사업을 전개하면서 가계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어도 자식들에게는 자상하고 정이 많으셨다. 모친은 차분하면서 욕심이 없으셔 늘 이웃에게 베푸는 분이었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어른스러운 행동으로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필통이 없는 친구에게는 그의 필통을 주면서 친구를 격려해 주었고 끼니를 굶는 친구에게는 그의 도시락으로 함께하는 아이였다.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는 수원시 미술대회에 나가 우수상을 받아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올라갈 즈음 부친의 사업으로 인해 군포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부친은 산본리에 양계장을 시작하였고 그는 정든 친구들을 뒤로 하고 군포초로 전학을 왔다. 산본리에서 군포초까지의 거리는 어린 그에게 먼 거리였다. 더욱이 그는 일상적으로 학교에서 끝나면 양계장의 일손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초등학교를 1년 늦게 졸업하고 안양중학교로 입학을 한 그는 부친이 운영하는 양계장에 화재가 나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결국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군포에서 다시 수원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수원에서 안양까지 통학을 하면서 그는 불량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부모님들과 대화는 점점 줄어들어 골이 깊은 사춘기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저축 상을 받는 등 자신의 생활신조만큼은 간직한 채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는 부모님이 통닭집을 운영, 아침에 학교 갈 때만 볼 수 있는 환경이라 그는 부모님과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가족과 점점 멀어진 그는 부모님에게 반항까지 하는 아이로 변했고 미래가 불투명한 환경까지 내려갔다. 어느날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에 답답한 마음으로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 근처를 가게 되었다. 마침 모친이 닭을 튀기는 모습을 본 그는 순간적으로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맏이라면 모든 것을 다 해 주신 어머니와 자신을 위해 그는 친구들을 조금씩 멀리했다. 고 2학년 말부터는 초등학교처럼 부모님과 함께하는 그런 아이로 돌아왔다. 이때 어두웠던 학창시절을 뒤로 했지만 이웃사랑은 새롭게 싹트고 있었다.

극한 환경을 극복하다.
그는 대학에 합격을 했으나 전공도 맞지 않았고 동생들을 위해 취업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물류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하면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처음에는 핀잔을 받고 말았다. 나중에 회사 측에서 그의 제안을 검토 후 현장에 적응한 결과 인원을 60% 감원할 수 있었다. 그는 사회에서 첫 번째로 제안한 것이 기특한지 스스로 아이디어 계발에 나섰다.
그의 급여로 가족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서 그도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되어갈 즈음 군 영장이 나와 그는 PX병으로 차출,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PX에서도 관리를 잘 해 군무원으로 부터 전역 후 군복지단으로 입사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하고 전역을 했다.
그의 전역소식을 들은 삼성전자로부터 재입사의향이 왔지만 그는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자신의 영역을 키워나가고 싶었다. 그는 근무를 시작하면서 하루 24시간 활용계획을 수립하고 영업부만 아니라 타 부서의 업무까지 시간 나는 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그는 기술 노하우를 익히며 전천후 영업직원이 되어 갔다. 그 결과 4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그의 노력으로 170억 원으로 늘어나 그는 4년 만에 회사 전반에 대한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나가던 그의 회사도 IMF가 오자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그는 정든 회사를 퇴사하고 유통업을 시작했다. OEM형태로 소량 생산하여 납품을 시작했지만 납품처에서 가격을 내리기 위해 품질에 대해 악의적인 제기로 그는 유통업을 접고 제조업에 뛰어 들었다. 그가 처음에 비닐사업을 하다 환경문제로 사업을 축소하고 장기적인 매출을 위해 방수시트에 사활을 걸었다. 그는 사업에 대한 자신과 투자대비 매출을 위해 시간이 없었다. 직접 개발에 참여하면서 현장과 관련업체, 현장 소장, 전문가 등 자신의 제품과 관련 있는 사람이나 기관에 뛰어다니며 하나하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갔다.
그러나 개발이 그리 쉽지 않았다. 그는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20억을 투자하고 환경문제 등을 고려하여 산업용 제조업으로 전환하면서 70억 원을 투자, 회사가 휘청해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최고의 상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그는 개발한 상품을 갖고 업체를 찾아다녔지만 품질의 우수성보다 시공이나 납품 실적을 요구하여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회사를 재정비하면서 ISO인증, KS획득, 벤처기업인증, 부설연구소 설치 등 최고의 제품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을 구축해 나갔다. 정부산하기관으로부터 제품 설명을 요구받고 그는 직원들과 밤을 새우며 준비를 한 결과 도로공사에 납품할 수 있었고, 그 영향으로 현장에서 그의 제품이 가격대비 우수성이 알려지자 대기업으로까지 납품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의 헌신적인 애사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회사직원들의 기숙사를 회사 내에 신축하고 주방장 2명을 배치, 최고의 숙식이 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회사 바로 옆에 농작물을 재배하여 가장 신선한 야채공급은 물론 각 화장실에서도 샤워할 수 있는 시설까지 설계하여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회사가 잘 될 때는 회사가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직원들의 미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놓고 있어 비록 중소기업이지만 강소기업으로 육성해 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제품이 저가가 아닌 명품제품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제품이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큰 포부를 갖고 있다.

이타정신으로 사회를 지탱하다.
그의 회사가 대외적으로 성장해 나가자 동탄에 있는 선후배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한 선배가 체육회가 없어 체육회를 구성하여 회장을 맡아달라는 수차례 요구에 거절할 수 없어 그는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주민의 소통 한마당 축제를 최초로 개최하여 주민 간의 벽을 허물었고 연례행사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임기가 다 끝나자 다시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요구에 그는 주민자치위원장과 화성시 주민자치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아 화성시의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는 수원지방법원 오산지방법원 조정위원, 화성동부경찰서 집시위원회 부위원장, 사회복지(주)경산 자문위원, 사단법인 한국침대협회 등기이사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가 최고의 단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방황으로 학문을 배울 기회를 놓친 그는 늦은 나이에 아주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하여 아주대 경영대학원 49기로 수료했고 아주대 경영대학원 MBA총동문회 수석 부회장, 아주대학교 재정위원으로 모교의 발전에도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국회에서 실시하는 4기 국회 미래․창조․융합 교육에 참여하여 효율적인 기업경영을 숙지했고 삼성전자·화성 소통협의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활동 중에 있다.
그는 에이스 침대 안유수 회장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안유수 회장은 회사와 사회에 가장 이타정신으로 환원했고 오늘의 에이스침대를 있게 한 장본인으로서 청렴한 정신과 회사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에 그는 안유수 회장을 닮고 싶어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과거는 돌아오지 않지만 미래는 언제든지 온다. 그러나 시간을 분배하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자신들이 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공부와 노력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더 투자하는 기업가, 자신의 이익을 덜 하고 회사직원들에게 환원하는 기업가, 자신의 안위보다 이웃과 함께 하는 기업인을 우리는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으로 강소기업을 육성하고 있는 김진영 회장, 그는 빈손으로 시작해서 한국 최고의 토목설계와 방수시트를 개발하여 국민의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부친이 방앗간, 택시사업, 양계장, 통닭집 등 많은 직업을 바꿔가면서도 가족을 위해 헌신했어도 그에게는 많은 마음의 상처를 주었지만 그는 그 아픔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지혜가 되었다고 부친에 대해 감사한 말을 잊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밝고 희망찬 것은 김진영 회장과 같은 기업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가 뿌린 씨앗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으로 돌아올 것이다.

약력
경기도 용인시 출생
아주대 경영대학원 수료
아주대 경영대학원 MBA총동문회 수석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침대협회 등기이사
아주대학교 재정위원
수원지방법원 오산지방법원 조정위원
화성시 주민자치협의회 사무국장
화성동부경찰서 집시위원회 부위원장
화성시 사단법인 사회복지회 이사
삼성전자·화성 소통협의회 위원
(주)제이엠이엔씨 대표이사
경기도의장 표창장
화성시시장 표창장
미래·창조·교육원장 표창장
화성동부경찰서장 감사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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