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0-12-01 오전 08:34:07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아름다운사람들

이웃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롤모델이 되는 남상현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09월 25일
ⓒ (주)경기헤럴드

가정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타고난 근면성실로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네 가족들 모습이 점차 희석되어 가고 있다.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이었던 1980년 이전의 가풍을 안고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남상현 회장. 그는 자수성가하여 모친을 모시고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여 우리사회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다.
고군산도열도와 새만금방조제로 유명한 전북 군산시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소년가장으로 성장했다. 부친은 영남지역에서 불화 화가로 유명하셔서 집안에 계시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성품이 온화하고 그림에 삶을 다하시는 분이라 그림에 빠져 1년에 몇 번 정도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부친대신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모친이 아버지역할과 자식들의 교육도 책임지셔야 했다. 모친이 과일가게를 하시는 덕분에 4남매는 부친 없이도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갔다. 모친이 목돈을 만들어 놓으면 부친이 그림재료비로 가져가시는 바람에 가족과 모친의 마음에는 늘 멍에가 쌓여 갔어도 그는 모친을 위로하는 등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러운 행동으로 모친은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었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도 학교수업이 끝나면 가게로 나와 배달과 판매하는 일을 도와드렸고 집에 일찍 들어가면 집안일과 동생들을 돌봐주는 듬직한 장남이었다. 하루 종일 모친 일을 도와주고 집안일을 끝내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도 그는 공부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아이로 인정받아 학급반장을 하면서 또래들과의 우정만큼은 최고였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다. 그림에 미쳐있는 부친을 늘 미움의 대상이었지만 그의 피에는 부친의 피가 뜨겁게 흘렀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미술사생대회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아 학교대표로 대회에 출전 최우수상, 특선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모친은 장한 아들을 보면서도 칭찬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림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생각에 자식만큼은 그림을 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중학교에 진학을 해서도 또래들의 추천으로 반장을 맡으며 상처받지 않는 중학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와는 다르게 중학교에서는 과목별 문제지와 참고서가 필요했다. 가정형편 상 그는 공부에 필요한 책들을 살 수가 없어 헌 책방에서 헌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수업이 끝나면 어머니 가게로 달려가 리어카로 배달을 하며 가장 아닌 가장을 해야 했다. 배달 도중에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그는 당당하게 인사도 하고 자신이 처해 있는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착한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 심한 사춘기를 겪게 되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으로는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었고 자신 밑으로 있는 동생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어른들이 해야 할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성적은 떨어졌고 모친의 상심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는 고3에 들어서야 자신이 흐트러지면 동생들도 희망을 잃고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독하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개근상을 타는 등 근면성실 자체였다.

자신의 꿈을 가족을 위해 바꾸다.
그는 노력한 끝에 전북대학교 상대에 합격을 했다. 모친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명석한 아들이 부모 잘못만나 고생만하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보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한없이 울며 그를 자랑스럽게 안아주었다. 그가 전북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동네 주민들도 효자아들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자신들의 일처럼 축하해 주었다. 남들은 대학입학만 해도 온가족이 즐거움의 도가니지만 그는 등록금과 교재비, 생활비 등으로 기뻐만 할 수 없었다. 그는 전주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전주까지 통학을 하며 과일가게를 모친과 함께 운영하면서 공부를 병행했다.
그는 대학교 3학년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했지만 4학년으로 올라갈 즈음 동생들이 대학에 입학을 하여 대학생활자체가 힘들어졌다. 그는 동생들을 위해 군에 입대를 하여 가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했다. 그가 군에서 휴가를 나와도 친구들과 휴식을 취하는 대신에 모친의 과일가게에서 과일판매와 배달에 매달렸다. 그의 효심은 온 동네가 다 알 정도로 동네 사람들은 그의 효심을 보고 자주 가게를 이용해 주곤 했다. 그는 전역을 하고 4학년으로 복학 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대한교육보험에 입사하여 서울 본사 경리부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성실한 그는 동료로부터 책임감 강하고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을 받아 대표이사 표창장까지 받으며 행복한 직장생활을 해 나갔다. 그는 동료들에 비해 빠르게 대리로 승진했으며 자신의 급여는 동생들의 학비와 집안의 생활비로 거의 사용했다.
동생들도 그의 고마움에 탈선하지 않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며 그에게 보답을 해나갔다. 그의 덕분으로 바로 밑 동생은 법무부 서기관으로 여동생은 자식 세 명 모두 의사로 키우는 등 모두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조용하고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는 그는 조직문화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는 과장진급을 목전에 두고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하기 위해 퇴직을 하고 말았다. 퇴직 후 인문계 출신이 할 수 있는 자격증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유일했다. 그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서울 마포에서 자신의 첫 번째 사무실을 개소했다.
그는 다른 업체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민형사상 문제가 없는지 사전에 파악한 후 부동산 정보를 입력하는 등 소비자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그 결과 그는 신뢰받는 공인중개사의 명성을 얻었고 점차 경제적 안정도 가져왔다. 안경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그의 아내도 사업을 하겠다는 제안에 그는 장소를 물색한 결과 안양역 지하상가를 선택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안양지하상가에서 안경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외조하고 본인은 산본에 공인중개사업을 열어 산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군포시지회 친목회장을 맡아 회원들 간의 친목도모와 애경사 등에 역점을 두고 공인중개사로서 위상을 갖도록 노력했다. 또한 윤리위원장을 맡아 공인중개사들의 품위유지와 도덕성을 강조하여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공인중개사가 되도록 역할에 충실했다. 회원들은 그의 신뢰와 높은 도덕성을 인정하고 그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군포시지회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동안 그는 군포시지회 회원으로 불우이웃돕기, 공정거래 정착 등 다양한 사업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다.

효심으로 화목을 만들다.
그를 찾아 온 손님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것이 다반사였고 주위에 힘든 사람들에게는 쌀과 라면 등 다양한 후원도 하고 있다. 그가 군포에서 호평을 받고 있을 즈음 보청기체인사업을 하고 있는 동서가 청각이 좋지 않으신 환자를 위해 운영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경제적 이득보다 청각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보청기사업도 하게 되었다. 그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많은 도서와 전문기관에서 강의를 들으며 청각사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평소에 장애인 후원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그는 1+1사업을 전개하여 보청기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또한 그는 지역언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터에 지역언론의 이사로 권유받고 경기헤럴드 이사도 흔쾌히 승낙, 지역언론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는 군포시에 많은 장애인가족이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에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후원회 당연직 이사와 청소년문학사업, 청소년문화사업 등 다양한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20년 전부터 홀로 계신 노모를 자신의 집으로 모시는 효자라는 것이다. 평생 남편 덕을 받아보지 못한 모친을 그는 부친의 몫까지 효심으로 섬기며 자식들과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군포시 약 120개 경로당에 라면 한 박스씩 전달하며 어르신 섬김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김구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그는 살아서도 조국, 죽어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승화한 김구 선생의 삶을 자신의 거울로 삼고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어렵고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목표와 노력이 있는 한 언젠가는 자신이 바라는 삶이 성취될 것이며 그로 인해 이웃과 웃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된다고 경험을 일러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모친을 도우며 동생 네 명의 학비와 가정의 생활까지 책임지며 자수성가로 화목한 가정을 만든 그는 부친의 마지막 유작을 동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며 형제간의 우애를 당부하기도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었더라면 자신의 능력을 더 넓은 곳에서 발휘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갔더라면 목적을 달성했겠지만 가족이 가장 우선으로 한 그는 자신의 목표를 낮추고 자신 중심으로 화목한 가정을 만든 것에 늘 감사하고 만족해 하고 있다.
그는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한자공부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본 자식들도 그를 따라 공부하며 집안에서부터 면학분위기를 조성, 그는 그 어려운 한국어문회한자1급 자격증을, 자식들도 수준 높은 한자등급을 받도록 했다. 그만큼 자식들 앞에서는 모범을 보이고 실천을 통해 자식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 그의 자식들은 예의 바르고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가족의 화목을 좌우명으로 삼은 그는 지천명에 이루었고 모든 이의 표본이 되는 효행도 그는 실천하고 있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덕목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

약력
전북 군산시 출생
전북대학교 상대졸업
대한교육보험 대리 역임
공인중개사자격취득
청각사자격취득
한국어문회한자1급취득
한국공인중개사 군포시지회 회장
리더공인중개사 대표
금강보청기 대표
대한교육보험 대표이사 표창장
스타키보청기 한국지사상 표창
칭찬합시다 중앙회 표창장
군포시노인회 감사장
국회의원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09월 25일
- Copyrights ⓒ경기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안양시의회 정완기 의원 “안양시청 부지 재개발해야”
송정지구 중학교 유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요양보호사는 또 하나의 가족
고향과 모교에 책보내기운동(13)-2,000개 기관목표(현재 814 여개 기관 배포)
새안양로타리클럽, 사랑의 손길로 회원을 위한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 실시
군포시 중앙도서관, 2020년 ‘책 읽는 가족’ 시상
군포시 소재 SM파워텍(주) 병역특례기업으로 선정
군포시의회, 시민향한 의원발의 봇물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은 합헌
경기도노인종합복지관협회, 제8대 윤호종 회장 취임
경기도·의회
조광희 도의원, “코로나 잡고 경제 살..
조광희 도의원, “코로나 잡고 경제 살리는 경기도민운동” 제안 경기도의회 건.. 
정희시 도의원, 군포시 장수마.. 
경기도의회, 전국 지방의회 최.. 
경기도의회 경기교통공사 인사.. 
박근철 대표의원 더민주당 전.. 
성남·양주·의왕, ‘2020 시.. 
경기도의회 김판수 위원장, .. 
아름다운 사람들
진인사대천명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엄다.. 
만인의 꿈을 안고 작은이들의 벗이 되고 있는 심.. 
긍정과 가능성으로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의 남경.. 
민본사상으로 변호사상을 세우고 있는 박경훈 변.. 
제호 : 경기헤럴드 / 주소: (15865) 경기도 군포시 산본로323번길 20-33 대원프라자 801호 / 발행인 : 임종호
편집인 : 임종호 / mail: ggherald@naver.com / Tel: 031-427-0785 / Fax : 031-427-1773
정기간행물 : 경기다01029(2007년 09월 17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증 : 경기아 51770(2017년 12월 22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호
Copyright ⓒ 경기헤럴드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17,710
오늘 방문자 수 : 6,968
총 방문자 수 : 17,049,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