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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진정한 의사 상을 세운 황보경 의학박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06월 28일
ⓒ (주)경기헤럴드


목표를 향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대들에게는 성실보다 더 좋은 덕목은 없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근면성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사회성까지 발휘하는 황보경 의학박사.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사회활동을 통해 무의촌과 해외의료봉사를 실시해 존경을 받고 있다.

진취적 기상을 키우다.
칠보산과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군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교편을 잡고 계셔 집안의 분위기는 늘 엄숙하면서도 자녀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부친은 자상하고 책임감이 강하셔 자식들은 그러한 부친을 보고 성장하여 집밖이나 학교에서 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지시하거나 간섭하는 일이 거의 없이 자식을 믿어주는 후덕한 분들이었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학급에서 보는 시험마다 100점을 맞아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은 그를 반장으로 추천을 해서 초등학교 내내 학급반장을 맡아 리더십을 키우기도 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았던 그는 축구와 수영을 잘했다. 그의 고향이 바닷가라서 수업이 끝나면 바닷가 모래밭이 그의 놀이터였다. 그는 학교 대표로 축구선수로 선발되기도 할 정도로 근성이 강했다.
집안에서는 머리가 명석한 그를 고향에서 공부를 계속 시킬 수가 없었다. 보다 넓은 곳에서 아들의 미래를 위해 그의 부모들은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정든 고향을 뒤로 한 채 대구에서의 생활은 막막했다. 수업이 끝나면 누나의 하숙집이 그를 반겨주었고 나가 놀 친구도 많지 않아 그는 홀로 독서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또래보다 성숙한 면을 가지게 되어 늘 어른스런 모습을 보여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는 영남 최고의 중학교인 경북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경북중학교는 야구가 유명하며 그에게도 유일한 운동거리가 생겼다. 야구하면서 학교 유리창을 깨어 혼나는 일이 부지기수였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어버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경북고에 합격을 했다. 그는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수영선수로 선발되어 경북대표로 출전하는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간 시간들이 허무했다. 그는 10대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자문자답하면서 깊은 사춘기를 맞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그에게 던져진 하나의 숙제로 남아 있었다. 사회 시간에 선생님이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셔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며 안창호 선생에 대한 서적을 거의 다 정독을 했다. 그 결과 안창호 선생을 통해 자신의 롤모델을 찾고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의사 상을 세우다.
방황 끝에 고3이 다가왔다.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는 부모님의 반대로 마도로스를 포기하고 조선학과에 입학하고 싶었다. 이것 또한 부모님이 반대를 하여 의대를 지망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학과는 아니지만 당시 최고의 학부로써 전공에 대해 남다른 관심으로 열심히 했다. 학과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활동과 대학 학생회 간부로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였다. 또한 그는 토론문화를 조성하여 후배와 선배간의 건전한 독서문화를 확산시키는데도 일조했다.
그는 의학공부를 하면서 과에서 진행하는 무의촌 봉사활동에도 빠짐없이 동참하여 귀감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 밝고 선도적인 활동을 하는 그에게 다소 무거운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가 대학입학 할 즈음 가세가 기울어 자신이 읽고 싶은 전공서적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없었다. 그는 대학 도서관이나 친구들의 책을 복사하며 다른 친구들보다 늘 의학전문성도 앞서갔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응시해야 했다. 중학교 때 처음 서울을 구경한 이후 서울땅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무조건 서울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당 시 의료수준이 가장 우수한 국립의료원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중학교 시절에는 비포장도로이어서 매우 불편했지만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어 그에게 선각적인 사고를 갖게 해 주었다.
그는 서울역에서 을지6가 까지 걸어가면서 서울의 빌딩을 구경하면서 자신이 최고의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험을 본 결과 합격을 했다. 그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바람에 언어소통이 잘 되지 않아 웃음도 주었고 주임교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간호사들에게 다시 물어보는 어려움 속에도 그는 점점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당직을 섰던 5월 5일 한 어린이가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심장이 거의 멈춘 상태였다. 그는 혼신을 다해 응급처치를 했지만 그 아이는 소생하지 못했다. 그는 자괴감을 갖고 그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다시는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몇 배 이상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인턴을 마치고 전공의에 들어갔다. 전공의는 군대 보다 군기가 더 센 곳이었다. 어느 때는 수술을 36시간 동안 해야 했고 수술환자를 돌보기 위해 퇴근이라는 것은 하나의 사치였다.
국립의료원은 외국에서 제공한 지원금으로 병원이 운영되어 대기환자가 가장 많아 환자들을 수술할 기회가 많았다. 그 영향으로 그는 수술에 대해서는 병원 내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4년 동안 전문의를 수련 받고 당당히 전문의 시험에 합격, 진정한 의사의 길로 갈 수 있었다.
그는 군의관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수도통합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수도통합병원은 군의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이라 실력이 특출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간접적으로 의술을 인정받는 기회가 되었다. 야전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의 수술과 치료, 그리고 징병검사 요원으로의 근무는 그에게 성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도록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의권 확립에 앞장서다.
그는 전역을 앞두고 지방의 모 대학으로부터 교수 제안을 받고 가기로 결심했으나 집안의 장남으로서 혼자만의 직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개인 병원을 개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울 장안동에 병원을 개원한 후 실력이 지역에 퍼지자 명의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병원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그는 안창호 선생의 일대기가 생각나서 사회활동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청년회의소에 가입했다. 불타오르는 정열로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의료봉사에 참여하여 이웃과 함께하는 동행을 시작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인지한 한 정당은 그를 중앙위원으로 위촉하고 의료법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는 중앙위원으로 대통령선거에서 핵심참모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얻고 말았다. 진솔하고 정직해야 할 정치판이 그의 생각과는 상이하게 흘러갔다. 그는 모든 정치활동을 그만두고 의사의 길로 회귀했다.
그가 의사로 본분을 다 할 즈음 모 정당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어도 그는 거절하고 오직 환자 돌봄에 열중했다. 그가 도시생활에 마음도 조금씩 조급해 지자 신도시가 건설되는 산본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는 환자들이 가장 쾌적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물을 직접 건축하고 삼경클리닉을 개원했다. 그는 병원장으로 안주하지 않고 군포시 의사협회 회장을 10년 동안 역임하면서 군포시 의사들의 권익증진에 노력했다. 경기도 의사협회에서는 수석부회장이라는 직책을 줘 경기도 의사들의 고충과 병원 활성화에 일조했다.
또한 2002년 의약분업사태 때는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의권확립에 기여했으며 신변위협을 받으면서까지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임무를 책임지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군포에 거주하는 임종호 박사의 건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임종호 박사는 몽골에 치과, 한의원, 메디컬과 함께 무료봉사를 가자는 제안에 그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는 몽골의 환자를 위해 약과 왕래 항공비, 식대 등 일체를 자비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는 외삼촌인 정대화 대구시 전 교육연수원장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교장과 대구 교육연수원장을 역임하면서 성실한 자세로 교권확립에 크게 기여하고 늘 솔선수범을 보여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위해 노력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일 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방면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며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생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군의관시절부터 투철한 국가관과 사회성을 가지고 봉사한 공로로 서울특별시장상, 경기도지사상을 받아 그동안 봉사활동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최근에 삼경클리닉을 요양병원으로 개편하고 삶을 마지막으로 하시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정성을 다해 요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꿈 많은 한 소년이 바다를 벗 삼아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어떠한 위치에서 겸허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황보경 의학박사. 그는 의사로서 덕망을 의술보다 인술을 강조했다. 그는 대외적으로 우수한 인술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위해 의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환자 우선주의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의사이다.

약력
경북 영덕군 출생
경북의대 졸업
국립의료원 일반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취득
군포시 의사회장 역임
경기도 의사회 부회장(고문) 역임
의쟁투 중앙위원 역임
외과의사회 부회장(고문) 역임
대한외과학회 이사, 부회장 역임
법률구조공단 자문위원 역임
서울시장상 수상
경기도지상 수상
삼경요양병원 원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0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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