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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의 전령사로 활동하는 김정아 통일 맘 연합 대표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04월 24일
ⓒ (주)경기헤럴드

자유를 찾아 목숨을 내 놓고 탈북을 강행해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김정아 전 북한군 장교. 그녀는 모진 고생을 겪으면서 자신이 살아야 할 명제를 인지하고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귀순하여, 지금은 여러 방송매체에서 자유와 통일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눈물의 청소년 시절을 보내다.
북한의 제3대 항구도시이며 함경북도의 중심지인 청진시가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는 태어난지 3일만에 청진시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녀가 16살까지 입양된지 모르고 생활할 정도로 양부모는 그녀를 친딸 이상으로 키웠다. 그녀는 음악에 소질이 있어 어려서부터 음악 공부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양부모의 지원으로 다른 또래에 비해 유복하게 성장했다.
그녀를 예뻐해 주신 양부가 과로한 탓에 결핵에 걸리게 되었다. 단순한 감기인줄 알았던 병이 결핵으로 판정되었고 결핵이 합병증으로 번져 병석에 누운 지 1년 만에 돌아가셨다. 그녀의 양모도 양부의 갑작스러운 병간호와 사망이 겹치면서 육체적·정신적 고충에 처녀 때 잠깐 앓았던 늑막염이 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늑막 암으로 변해 양부가 돌아가신지 3년 만에 양모도 끝내 타계하셨다. 양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친할머니가 그녀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았지만 고모를 비롯한 친척들은 그녀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친척들의 잦은 구박에 군대에 가 있는 오빠를 찾아가 울어보기도 하고 하소연해보기도 했다. 그녀의 측은한 모습을 본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입양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한나절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출생 비밀을 안 후 부터 할머니와 고모는 네 친부모 찾아가라는 말을 자주했다. 이렇게 싸움이 잦는 속에, 그녀도 모르게 뒤에서 엄청난 일이 꾸며지고 있었다. 그것은 오빠부대 연대 정치위원과 고모 사이의 거래였다. 정치위원은 그녀를 입양하여 명예를 챙기고, 고모는 그녀가 살던 집 즉 부모님이 남겨준 마지막 재산을 갖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학교도 강제로 전학을 당했고, 법적 서류가 원만히 준비된 상태에서 억울하게 또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고모는 그녀가 살던 집을 팔아 이득을 챙기고 정치위원은 그녀를 입양한 것을 내세워 김정일의 감사문 ‘훌륭한 당 일군입니다’를 받았다.
전에 살던 할머니 집에서 식량난으로 굶주렸던 그녀는 그 집에 와서도 눈치를 보며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 집에 있는 동안 그녀는 설거지와 빨래, 방 청소부터 밭일 등 각종 일을 도맡아 하는 말 그대로 집안의 가사 도우미, 머슴 자체였다.
그녀가 입양 된지 5개월 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게 되었다. 사실 그녀의 꿈은 의사였다. 그녀의 꿈과 상관없이 그녀는 정치위원의 압박에 못 이겨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녀는 신병생활부터 혹독한 군 생활 신고식을 치렀다. 위가 좀 약했던 그녀는 입대한지 한 달 만에 급성위경련을 앓았다. 그렇다고 훈련에서 예외는 없었고 남들과 똑같이 훈련하였다.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오다.
건강하게 따라다녀도 모자랄 판에 앓기까지 하니 더더욱 곤욕이었다. 나중에 신병 훈련이 끝나고 중대에 배치된 후에도 그녀는 위병 땜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생을 많이 해야 했다. 입대한지 6개월이 지나니 그녀의 몸무게가 10kg나 감량되었다. 영양실조에 걸리면 누가 도와줄 가족도 없는 그녀였기에 살아남으려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 중에 그녀는 중대 앞에 있는 과수원으로 빈 배낭을 지고 갔다. 경비원아저씨에게 그녀는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하였다. 경비원은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녀를 도와주었다. 또 하나의 위기는 그녀가 입대한 다음 달부터 생리가 없어졌다. 그녀는 그러다 하겠지 했는데 그 생리가 무려 5년 동안이나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5년 후 군관생활을 하면서 생리가 다시 시작 되었지만 1년에 4~5번 정도하는 것이 고작 전부였다. 그만큼 그녀는 여성이라는 삶 자체를 잊고 살아야 했고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팠다.
어느날 그녀가 약초 캐러 갔다가 돌아오니 그녀에게 군사대학을 가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양아버지라는 정치위원이 꾸민 일인 것이었다. 양아버지의 목표는 오빠와 그녀를 국경경비대 어엿한 지휘관으로 키웠다고 내세워 또 다른 김정일의 표창을 노린 것이었다.
그녀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관 생활도 못해보고 병사 생활에서 바로 군사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군사대학으로 가는 그녀는 앉아서 공부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 생각과 달리 혹독한 고통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대학에 올라간 다음날부터 눈만 뜨면 열병식 훈련을 해야 했다. 결국 열병식훈련으로 그녀는 영양실조로 쇼크로 쓰러져 사체실문 앞까지 갔다가 살아왔고 열병식 후 과로 자골 신경통이라는 진단으로 하반신 마비까지 왔던 것이다. 3개월 동안 주사한대 못 맞으며 바닥을 기고도 그녀는 강한 정신으로 군사대학을 졸업했다. 군사대학을 마치고 그녀는 황해북도에 위치한 한 훈련소 산하 부대에 배치 받았다. 하지만 부대에서 봄철마다 짓는 양어장공사장에서 고된 노동에 노출되어있다 보니 또 다시 다리의 통증이 밀려왔고 그렇게 다시 또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리를 자르는 아픔과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통증으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다시 재발할 경우 앉은뱅이로 평생 살아야 할 수도 있다던 군사대학병원 원장의 말이 떠올라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끝내버리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수면제 30알을 한 번에 삼켜버렸고, 이 세상을 조용히 떠나고 싶었다. 의식을 차려보니 군부대 안은 그녀의 자살소동 때문에 난리가 났었고 다들 위로의 안부를 전해줘 간신히 용기를 다시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자살소동의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1년간의 긴 회복기간을 거치고서야 정상적인 군복무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다.

평화통일의 전령사가 되다.
그녀는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였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을 계속 영위할 수 없어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2009년에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해도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통일부 통일 교육원에서 북한이탈주민전문 강사반을 졸업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다. 북한과 한국에서의 문화, 경제 모든 분야에서 차이가 나 그녀는 국제 사이버대학에 입학하여 한국 적응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우연히 2013년부터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걸음을 시작한 그녀가 지금은 MBC, KBS, KTV, SBS, TV조선, MBN, 채널A, 연합뉴스, YTN, 국방TV, 아리랑TV, 기독교TV 등 수많은 방송매체에 출연하여 전문적인 군사지식을 펼쳐 유명 패널로 자리 잡았다. 또한 국방부 대북심리전라디오, 국방홍보원 FM97, KBS한민족방송, 열린 북한방송, 자유아시아방송코리아, 자유 북한방송 등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 외에도 그녀는 KBS여유만만, MBC우리는 한국인, 통일전망대, TV조선 법대법, MBN 황금알, 아궁이, TV조선 모란봉클럽,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EBS통일의 길 등 예능방송에도 출연하여 타고난 끼를 발산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녀가 방송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방부 합동참모부 대북심리전, 미국하버드대학 한인학생회 , 미국 뉴햄프셔 세인트 폴 스쿨학교, 평택시·시흥시·안산시·안양시·정선군 공무원, 중원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북한의 현상과 자유의 중요성을 강의하여 많은 갈채를 받곤 했다.
그녀는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아 국민안전처 민방위강사, 뉴스전문 출연 탈북방송, (사)대한기자협회 통일만기자단 단장, (사)통일문화연구원 연구위원, (사)남북문화교류협회 교육위원으로 위촉받아 평화통일 전문가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전국 통일스피치대회 최우수상인 통일부장관상을 받았고 2015년 경기도청 우수 안보강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지금 그녀는 통일 맘 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엄마의 맘으로 통일을 품어라!라는 슬로건으로 국내뿐 아니라 제3국에서 떠도는 탈북여성들, 또한 인권유린 당하고 있는 북한의 여성들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엄마로 회복시켜서 남한의 엄마와 연합, 엄마의 사랑으로 통일한국을 만드는 당당한 통일 맘으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친자식처럼 훈육을 해 주신 첫 번째 양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자신들이 앓고 있는 병환에도 그녀를 더 걱정하고 사랑해 주신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녀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한국에서의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도 양부모들의 강한 의지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주신 교육 중 가장 인생의 초심으로 안고 살아온 것은 약속의 개념이라고 한다.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약속한 상대에 대한 모독이며 약속장소에 갈 때 옷차림은 약속장소에 대한 예의이다. 사람의 인생에 약속만 잘 지켜도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그녀의 어머니 말씀이 그녀의 인생의 기둥이 되었고 그렇게 정직하게 살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부모님께 감사한 맘으로 산다고 한다.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한다. 용기가 없는 삶은 종속된 삶에 불과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가질 수 없다고 자신의 경험을 일러준다.
부모를 잃고 부모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입양된 가련한 그녀였지만 살아야 한다는 극한 목적을 갖고 수만리 자유를 찾아 왔다. 자유의 땅에서도 억새처럼 기죽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 그녀는 찬사 받아도 부족하다.

약력
함경북도 청진시 출생
이재순 군사대학 여성소대장반 졸업
국제사이버대학 경영학과 재학
통일부 통일교육원 북한이탈주민 전문강사반 졸업
미국하버드대학 한인학생회 강의
미국 뉴햄프셔 세인트 폴 스쿨학교 강의
MBC, KTV, SBS 등 다수 방송출연
국민안전처 민방위강사
(사)대한기자협회 통일맘기자단 단장
(사)통일문화연구원 연구위원
(사)남북문화교류협회 교육위원
통일 맘 연합 대표
통일부장관상 수상
경기도청 우수안보강사 선정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6년 0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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