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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의 마음으로 늘 포근한 이웃을 만드는 유한종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08일
ⓒ (주)경기헤럴드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다하는 사람, 그의 삶, 발자취는 늘 아름답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는 유한종 회장. 지역의 대소사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여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청소년가장이 되다
충청북도 정치, 경제, 교육의 중심지인 청주시가 그가 태어난 고향이다. 그는 6남매 중 위로 누님 다섯 분과 막내아들로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귀하게 성장했다. 부친은 일제 강점기 시절 시골 내수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자전거 수리·판매점포를 운영하셨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마을 주민들의 굶주림을 보살펴주는 등 마을 이장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였다. 이로 인해 주재소에 자주 불려가 많은 고초를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의 안위에 누구보다도 신경을 많이 썼다. 뿐만 아니라 그의 집에 걸인이 오면 마당이 아닌 마루에 앉게 하고 밥상에 밥을 차려주기도하고 쌀, 보리 등 추수기에는 당신도 어렵지만 마을의 더 어려운 이웃에 나눠주는 등 이웃돕기를 몸소 실천하는 나눔의 선견을 자녀들에게 암묵적으로 보여주셨다.
자전거점포 운영으로 사이클을 좋아하신 부친은 아침 식전에 서울까지 왕복을 하는 사이클 광이었다. 사실 그 시절에 유명한 엄복동 선수와 함께 선수권대회에도 수없이 출전한 바도 있다. 그렇게 부친은 끼가 넘쳐나도 가족에 대한사랑은 남달랐으며 마을사랑 또한 누구도 흉내 못 낼 정도로 대단했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 어린 나이에도 농사일에 힘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컸지만 당시에 일꾼이 한분 있었으나 농사일이란 특성상 한꺼번에 일손이 몰리기 때문에 작은 일손이라도 아쉬웠던 것이다.
그는 어려서 총명하여 집안에서도 기대가 매우 컸다. 시골의 초등학교를 마치고 하늘의 별따기에 승부를 걸고 도전해서 성공, 당당히 청주중학교에 합격,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현실을 해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쪼개야 했다. 충청북도에서는 그 당시 담배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그의 집도 예외가 아니라 담배를 재배하여 바쁜 일손을 도와야 했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담배모종부터 후에 고교시절 연초제조창에 실습 파견되어 근무로 권련이 되기까지 전 과정을 알게 되었다.
부친이 운영하는 사업도 처분하고 적은 농사도 수익성이 없어 그는 대학진학보다는 기술을 배워 일찍 산업전선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실업계인 청주공업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는 등록금 마련도 벅차서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어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늘 공부하면서 리더십을 키워나갔다. 특히 그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급실장(반장), 학도호국단 간부 등을 맡아 활발하게 소임을 다함에 학교로부터 신뢰받아 선생님들과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실업계고교에서도 공부만 잘하면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선생님의 독려로 그는 대학준비를 부모님 몰래 했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그가 고3학년 일 때 갑자기 돌아가셔 집안의 가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당장 모친과 막내누님이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대학입시를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응시하여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으나 입학금 등을 마련하지 못해 아예 포기를 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끊임없는 도전을 하다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기차통학으로 집에서 보리밥이나마 모친의 따뜻한 밥을 가족과 함께 먹고 다녀서 그나마 행복했다. 고교졸업 후 충북단양의 조그마한 공장에 취업하여 이사를 하는데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전기로 분야를 담당하며 사회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회사가 영세하여 토요일은커녕 일요일도 없이 근무했지만 그 당시엔 그런 직장도 흔치 않은 때라 말없이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첫 월급부터 마지막 월급까지 모두 모친에게 직접월급봉투를 드리는 등 효성이 지극한 청년가장으로 집안의 중심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으로는 너무 가혹한 생활이었지만 그는 가족과 자신을 위해 무조건 견디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몇 년을 시골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가 단양에서 직장 및 친구들과 적응할 즈음 군 소집영장이 나와 입대를 해야 했다. 그는 통신병과를 받아 논산훈련소에서 교육을 받고 자대에 배치되었으나 행정병으로 차출되어 행정을 보게 되었다. 그가 상병을 달고 얼마 되지 않아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되었고 모친을 모시게 됐다. 하지만 전역의 기쁨도 잠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기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취업을 해 보려고 했지만 그를 선뜻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동분서주하던 중에 그의 고향에서 가까운 부강(조치원읍과 대전시의 중간)에 대한플라스틱주식회사(대한생명계열회사)가 건설, 직원공개채용에 응시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 회사(종업원 500명)는 국내에서 처음 세우는 플라스틱 원료인 콤파운드를 제조하는 공장이라 전문기술자가 전무했다.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습득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여 남보다 한발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기술자들은 기술유출방지를 위해 기술전수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고, 심지어는 기술자료, 설계도면 등을 소각시키는 등 못된 모습까지 드러냈다. 그는 독학으로 공부하여 현장에 대한 기술과 법에 규정한 필요자격증획득과 실력을 동시에 구비하게 되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자격면허시험 응시자격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응시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런 과정을 한 계단씩 밟아 전기공사, 에너지관리, 환경관리기사1급 등 10여 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자신의 능력을 함양해 나갔다. 회사에서는 노력과 연구하는 그의 자세를 높이 평가해주었다. 그러나 오래 근무한 그의 급여가 인상이 되지 않자 가계에도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그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쌍용그룹계열사인 쌍용제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 면접부터 회사간부들에게 호감을 샀다. 그는 기존의 회사보다 2배 이상의 월급을 받으며 회사발전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그는 공무부서장에 승진한 청렴강직한 직장인이었다. 회사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대표이사 표창을 몇 차례 받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배들의 인사적체 등으로 그는 명퇴를 결심하고 공무부서장을 끝으로 정든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무제의 정신으로 활동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동안 사회에 봉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지역봉사에 조금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산본신도시 탄생으로 군포시로 이사 와서 궁내동새마을지도자협의회를 만들고 초대, 2대 협의회장을 역임하면서 매년 5월 5일 새마을 가족모임의 날로 정해 새마을정신을 홍보하고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실천하였다. 그는 새마을 자율방범대를 창설하여 초대 방범대장을 역임하면서 매일 야간에 방범순찰로 주민의 안위를 돌보고 청소년선도를 위하여 우범지역을 순회하면서 조별로 순찰을 강화, 많은 범죄를 예방하기도 했다. 또한 바르게살기 군포시협의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바르게살기운동계몽, 수재민구호활동, 소외계층 특히 독거노인 후원사업, 환경개선 계몽운동 등을 전개하여 많은 실적과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기고 했다.
자연보호군포시협의회 사무국장 재임 시에는 수리산생태계보전운동 및 세미나 개최 등 쓰레기 줄이기 운동, 지구촌 환경 살리기 운동, 길거리쓰레기수거활동 및 시민계몽운동, 유공자포상 등의 운동을 전개하여 우리지역의 환경보전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 외에도 그는 군포시 새마을회 자문위원, 바른 선거감시단(선감단)의 반장, 군포시 새솔회고문, 궁내동 새마을협의회 고문, 동정자문위원(현재 주민자치위원회)친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어떠한 직책을 그만두고 갈 때는 후임에게 철저하게 인수를 해 주었고, 후임이 모범을 보이면 상부기관에 공적을 상신하여 후임들의 노고를 인정받도록 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속한 단체나 모임은 언제나 불화가 없다고 한다. 그의 후덕한 무제정신과 배려가 그를 단체의 중심에 서게 했는지 모른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그가 학교 다닐 때 끼니를 걱정하고 등록금을 걱정해야 할 시기라 누구보다도 배고픔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 박정희 대통령이라며 항상 감사하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일러주고 있다. 오늘의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내일의 일도 다 할 수 있지만 오늘의 일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실과 이유를 만들어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존경을 받을 수 없으며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해 주고 있다.
그가 옳고 곧은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내조가 컸다. 그는 월급을 받으면 봉투 체 부인에게 평생 갖다 주었다고 한다. 부인은 그의 지갑에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에 궁핍하지 않게 해 주었고, 남편이 고생해서 벌은 월급을 한 푼이라도 아껴 쓰고 저축하여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데 애썼다고 전한다. 그가 직장인으로 사회봉사자로 존경을 받은 것은 청렴과 무제의 정신이 투철했기에 가능했다.

약력
충청북도 청주시 출생
청주공업고등학교 졸업
국가기술자격면허
열관리기사 1급, 환경관리기사 1급, 전기공사산업기사 외4종
기술자격수첩, 방화관리자 외5종
대한플라스틱(주)근무
쌍용그룹 쌍용제지(주)근무
산본신도시입주자대표연합회 총무이사
새마을 지도자궁내동협의회 회장 역임
궁내동주민자치위원 역임
새마을궁내동자율방범대 대장 역임
군포시 선거관리위원회소속 선감단 반장수임
군포시새마을회 자문위원 역임
바르게살기운동 군포시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자연보호운동 군포시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새마을운동 중앙회장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국회의원 표창장
경기도지사 표창장
행정자치부장관 표창장
고희기념 자서전, 인생여로(人生旅路) CD제작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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