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0-11-25 오전 06:05: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아름다운사람들

아무리 어려워도 이웃부터 생각하는 김종문 자문위원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02일
ⓒ (주)경기헤럴드

세상살이가 어렵다 해도 그 어려움 속에서 이웃과 웃고 기뻐하는 삶은 누가 뭐라 해도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늘 소외된 가족들의 마음과 몸이 되어 그들의 생활에 용기를 주고 있는 김종문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후원회 자문위원. 그는 공직에서 퇴임을 하고도 주위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자신의 일처럼 돕고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있다.

청년시절에 봉사정신을 함양하다.
천연기념물인 외면도 상록수림과 세계적인 머드축제로 유명한 충남 보령시가 그의 고향이다.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난 그는 집안에서 언제나 우선이었다. 맏이와 많이 나는 나이차 때문에 그는 형제들의 사랑을 부모보다 더 받고 성장했다.
부친은 어부 생활을 하여 경제력으로 큰 어려움 없이 식솔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가족들 간의 우애 있게 집안 분위기를 늘 만들어 주셨다. 워낙 인품이 온화하고 가정적이라 동네에서도 부러워 할 정도였다. 모친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 오직 집안일에만 몰두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였다. 그는 외할머니를 좋아해 여섯 살 나이에 돛단배를 타고 충남 보령 주포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혼자 가 집안에서는 아들 잃어버렸다고 소동을 일으킬 만큼 한 번 본 적을 잃어버리지 않는 총명한 아이였다.
그의 고향은 충남 보령시에서 떨어진 고대도였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언제나 친구였고 놀이터였다. 그 고향을 두고 삽시도에 있는 초등학교로 다녀야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담임선생님 집에서 기숙하며 3학년까지 마쳤다.
밤에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 울기도 많이 했고 혼자 고향집을 쳐다보며 고향을 그리는 애처러운 생활을 해야 했다. 3학년을 마친 그는 4학년 때부터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충남 광천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곳에서는 하숙을 하며 부모님과 형제를 뒤로 해야 했다. 낯선 타지에서의 적응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더 어울리다보니 성적도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은 더 큰 도외지로 유학을 갔지만 그는 광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 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양잠, 원예 근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근면·성실한 그는 어느 또래보다 양잠과 원예를 잘 해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당시 대학이라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한 그는 고아원, 교회, 양로원 등을 다니며 봉사활동에 동참하고 처음 사회봉사란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며 미래를 모색하던 중 군에 먼저 갔다 와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공군에 지원, 입대하여 하사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군에서도 근무 외에 시간을 할해 하여 고등학교시절처럼 지역에 있는 양로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하곤 했다. 그는 정훈하사관으로 정훈 교육과 자료정비 등을 우수하게 처리하여 공군참모총장상, 공군 군수사령관 표창, 공군 물동부장 표창을 받는 등 모범 직업군인이었다.

사회활동에서 모범을 보이다.
그는 다른 동기보다 빠르게 상사로 진급하여 화목한 가정을 일구며 동료들 간에도 신뢰도 매우 높았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들로 인해 계속 직업군인으로서 있기에는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어 그는 정든 부대를 떠나 사회인으로 돌아왔다.
오직 명령에 움직이고 활동만 한 그는 사회에서 작은 사업을 구상하며 시작했다. 적은 자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아 지인들의 자문을 받아 시작한 사업이 거듭 실패로 돌아왔다. 노후대책과 아이들의 학비, 생활비 등등 그의 앞에 놓인 것은 경제적 고통뿐이었다. 그는 한국자유총연맹 4개 시(과천, 시흥, 군포, 의왕)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북한과 극한 대립관계에 있어 안보가 최우선이었다. 그는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땅굴견학, 안보교육, 귀순용사 강연 등 안보에 초석이 되어 시민들에게 계몽운동을 모범적으로 전개했다. 그는 헌신적인 업무처리로 내무부장관(현 행자부장관) 표창을 받아 그동안의 노고를 풀어주기도 했다.
그는 장애인가족들이 어떠한 조직 없이 활동하는 것을 보고 여러 지인들과 함께 신체장애인협회 군포시지부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신체장애인협회 군포시지부의 토대가 되도록 자문과 역할을 하고 더 능력 있는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나왔다.
자식과 가족들을 위해 그는 더 안정적인 생활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는 군포시청 청원경찰로 입사하여 과적차량단속, 청원경찰관리업무, 수돗물홍보 등 자신이 맡은 업무는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사랑과 봉사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토요일이나 휴일에 불우이웃돕기, 소년소녀가장 돕기, 백혈병 환자 돕기, 군부대 위문공연, 각 노인정 , 구치소 등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광천, 홍성, 서천, 화성노인요양원 등지에서 위문공연은 그에게 더 의미가 있었다. 특히 광천은 그가 공부하던 곳이어서 고향과 같아 어느 공연보다도 더 열성적이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군사령관 감사장, 육군 부사관 학교장 감사장, 75사단장 감사장, 35사단장 감사장, 성동구치소장 감사장, 화성노인요양원장 감사장 등을 받았다.
그는 청소년들의 선도와 시민 안전질서에도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였다. 군인정신이 투철한 그는 말투에서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하려고 한다. 자신의 일보다 남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 더 가슴 아파하는 그는 군포시청에서 퇴직하고 빌딩경영관리사 군포시 지회장을 맡기도 했다. 건물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자격증을 후배들에게 권고하여 많은 관리인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안정적으로 관리업무에 종사하도록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만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부터 무선 전자기기 기능사 1급, 환경관리지도사, 빌딩경영관리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에 독려했기에 그 의미가 더하고 있다.
그의 봉사 중에 빠지면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헌혈운동에 참여하여 많은 헌혈증을 모아 어려운 사람이 수혈할 수 있도록 기증하고, 헌혈차가 오면 솔선수범해서 헌혈에 참가하도록 지나가는 시민, 학생에게 독려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봉사활동이 널리 알려지자 안양경찰서장 감사장, 군포경찰서장 감사장, 부천경찰서장 감사장, 의왕경찰서장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죽음을 극복하고 봉사에 전념하다.
얼마 전에는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헌혈증을 제공하여 그들에게 희망의 빛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김종문 자문위원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그는 남으로부터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우선 자신의 언행이 다소 과격한 면도 있지만 사리사욕을 위해 활동한다고 뒤에서 소곤대는 것을 인지할 때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사실 사리사욕을 위해 활동했다면 재산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가진 것도 거의 없다. 몸이 많이 아픈 부인과 함께 다정하게 살고 있는 그는 급할 때에는 지인에게 손을 벌려야 할 정도로 어렵다. 사실 자기 재산으로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모르지만 김종문 자문위원은 40년간 그렇게 봉사해 왔다고 한다. 그는 간경화로 간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3개월도 못사는 사형선고를 받아 자연치유법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으며 고관절, 중풍 등으로 KBS 생로병사에도 방영된 바 있다. 그가 그렇게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부인도 명마와 싸워야 했다. 많은 병원에 진료를 받아도 완쾌되지 않아 그는 몸에 좋다는 약초를 캐러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결국 그의 부인은 그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홀로 남은 그는 어르신들의 쾌적한 경로문화를 위해 여러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도록 주선하는 등 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어령 교수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한국의 대표 학자로서 언제나 나라를 걱정하고 젊은이들을 염려하는 조국사랑을 늘 본받고 싶어 한다. 비록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만 일본의 문화와 정서를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극일을 할 수 있다는 노 교수의 가르침에 감명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하라고 전해주는 것은 수많은 병마와 싸우면서 얻은 체험을 전해주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목표가 있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매우 많았다. 충남 보령시 산하 아주 작은 낙도 80여 세대 200여 명이 사는 고대도에 큰형이 보령시 대천항에서 사설 우편보급소장을 하며 우편물 배달에 기여하고 있으며 작은 형은 보령시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위원장과 보령시의회 의장을 할 정도로 그의 부친은 문명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식을 육지로 유학을 보내 자식들의 성공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서로 도우면서 활동해도 오해받기 싫어서 그만두는 사람, 자신도 앞가림을 하지 못하면서 남을 위해 봉사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 등 사회활동 자체를 폄훼하는 사례가 너무 빈번하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김종문 자문위원은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봉사라는 생각보다 상대에게 작은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약력
충남 보령시 출생
공군 상사전역
군포시 공무원 퇴직
한국자유총연맹 4개시 초대 사무국장 역임
군포시 신체장애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사랑과 봉사회 사무총장역임
칭찬합시다중앙회 표창장
군포시장애인봉사대상
육군제1군사령관 감사장
공군참모총장 표창장
안양경찰서장 감사장
의왕경찰서장 감사장
부천경찰서장 감사장
군포경찰서장 감사장
군포소방서장 감사장
군포시장 표창장 8회
국회의원 표창장 6회
내무부장관(현 행자부장관)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5년 11월 02일
- Copyrights ⓒ경기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안양시의회 정완기 의원 “안양시청 부지 재개발해야”
마미박예술단 제2회 정기공연 성황리에 마쳐
경기헤럴드·동행의릴레이, 장세창 논설위원에게 ‘일상 속의 사고’ 전달
군포신기초 혁신마인드 제고 및 1%가 100%인 교육과정 만들기 연수
유인알선 하지도 , 받지도 말자!
고향과 모교에 책보내기운동(12)-2,000개 기관목표(현재 790여개 기관 배포)
좋은친구들, 제9회 사람사랑 동행나들이 장학금 전달
뉴우먼클럽 제3대 회장에 홍주연 필로스화장품 대표이사 취임
청계초 학생자치회, ‘내 사랑 내 친구 마니또 활동
샘모루초등학교, 친구사랑주간 ‘애플데이’ 행사 성료
경기도·의회
경기도의회 경기교통공사 인사청문위원..
경기도의회 경기교통공사 인사청문위원회 1차회의 진행 경기도의회는 경기교통공사.. 
박근철 대표의원 더민주당 전.. 
성남·양주·의왕, ‘2020 시.. 
경기도의회 김판수 위원장, .. 
심규순 의원, 경기도 노인 재.. 
경기도교육청, ‘코로나19 극.. 
경기도, 2035년 의왕 도시기본.. 
아름다운 사람들
진인사대천명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엄다.. 
만인의 꿈을 안고 작은이들의 벗이 되고 있는 심.. 
긍정과 가능성으로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의 남경.. 
민본사상으로 변호사상을 세우고 있는 박경훈 변.. 
제호 : 경기헤럴드 / 주소: (15865) 경기도 군포시 산본로323번길 20-33 대원프라자 801호 / 발행인 : 임종호
편집인 : 임종호 / mail: ggherald@naver.com / Tel: 031-427-0785 / Fax : 031-427-1773
정기간행물 : 경기다01029(2007년 09월 17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증 : 경기아 51770(2017년 12월 22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호
Copyright ⓒ 경기헤럴드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19,897
오늘 방문자 수 : 9,027
총 방문자 수 : 16,94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