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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세계화와 의료조합의 롤모델을 만들고 있는 장종열박사


편집부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4년 03월 07일
ⓒ (주)경기헤럴드

고인 물은 많은 사람들이 마실 수 없다. 흐르는 물은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 한의학이 한국에서만 머물면 안 된다는 사고로 중국에 진출하여 수준 높은 한의술을 전수하고 있는 장종열 한의학 박사.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회봉사활동을 보면서 성장하여 잠재적 봉사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봉사 한의사이다.

어려서부터 은사를 베풀다.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와 고려청자요지로 유명한 전남 강진군이 그가 태어난 고향이다. 그는 3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성장했다. 부친은 농기계 대리점을 하셔 늘 경제적으로는 여유 있었고 붙임성이 좋아 그는 언제나 집안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그의 부친이 국제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 가입하여 많은 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자란 그에게는 잠재적 세계에 늘 봉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모친은 현모양처로 희생정신이 강해 주위에 어려운 분들이 있으면 늘 나눔 봉사로 격려와 사랑을 전해 주셨다.
그는 어려서부터 형제애를 강조하신 부친 때문에 지금도 형제애가 남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어렸을 적에 형제 중의 하나라도 잘못을 하면 연대책임을 물어 다 같이 혼이 난 기억이 생각난다며 부친의 높은 부성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고향은 도시 아이들이 체험하지 못한 자연과 공부에 큰 스트레스가 없어 매사 그는 건전한 사고와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씀 한 번 듣지 않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모범생이었다. 그의 고향에는 바닷가가 있어 친구들과 걸어서, 자전거로 쉽게 갈 수 있어 그는 언제나 넓은 바다와 대화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그는 반장을 도맡아 해 리더십을 키웠고 공부도 아주 잘해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예체능에는 소질이 없어 늘 책과 함께하는 일종의 범생이였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었다. 그에게 소아마비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친구를 업고 등하교 시켜 준 적이 많았고 친구들이 놀리지 못하게 했다. 그 친구는 지금 치과의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강진에서 2년을 다니다가 중3 때 광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친척집에 있으면서 독서실에서 거의 기숙하다 시피 했다. 처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 중 가장 힘든 것이 텃새였다. 텃새를 부리는 친구를 만나면 그는 고향 바닷가를 걸으며 친구들과 자전거 타고 놀았던 추억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공부하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시골에 있을 때는 시험 때만 공부해도 상위권이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어림없었다. 그는 하숙과 자취를 하면서 오직 공부에만 전념을 해 상위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가 어려서 아픈 친구를 보면서 키워왔던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한 결과 고향에서 가까운 원광대 한의대에 합격했다. 바라던 한의대에 들에 가자 그는 봉사하는 최고의 한의학 박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삼았다.

한방 경영에 앞장서다.
남이 만든 자리보다 자신이 만든 공간을 좋아하는 그는 동아리 생리학연구반에 들어가 방학 때 의료봉사를 친구들과 활성화 시켰다. 그는 무의촌에서 하루 2~300명 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실시했고 재래식 화장실 방역, 보건홍보 등 다양한 의료봉사를 전개해 지도교수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의료봉사지역의 주민들은 그와 함께 참석했던 의료봉사단에게 지역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며 마을 의료개선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해 어린 한의사생도들에게는 무한 감동을 주곤 했다.
그는 동아리회장과 향우회장 등을 하며 두터운 신뢰를 쌓아 과대표로 선출되어 학과발전과 향우회 친목에도 남다른 지도력을 보였다.
그는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조교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상담해 주는 맏형 역할까지 했다. 그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면서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을 해 한의학에 대한 정열을 태우기 시작했다. 부모님으로부터 학비를 받는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그는 안양 석수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한 번 만나면 친숙해 지는 그의 붙임성으로 한의원은 지역 유명 한의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는 한의원을 더 확장하여 안양 호계동으로 이전했으나 IMF가 터져 3~4개월 동안 은 경제적 위기가 있었다. 다행히 그의 실력이 널리 퍼지자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와 위기는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위기가 오자 1시간 전에 출근하여 청소를 직접 해 놓고, 모든 직원들에게 환자는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교육을 철저히 시킨 결과 환자들이 병원을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가 오면 무료로 치료뿐만 아니라 선물까지 챙겨드리며 부모섬기 듯하자 지역에서는 그를 칭송하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었다. 그는 한의학을 더 알리기 위해 강남으로 이전하여 한의원의 위상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박사과정을 마치며 한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그의 명성이 알려지자 아프리카 수단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초빙 진료활동, 강의 세미나 등을 해주며 국제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수단이 워낙 못사는 나라, 비포장, 위생 등 많은 문제가 있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의료봉사사업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피부비만 분야의 전문가인 그는 이태원에 있는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국인 중심 치료 병원의 초빙원장으로 진찰하면서 많은 외국인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는 그 인연으로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중국에 한방성형, 한방진료를 하고 있으며 협력병원 10개와 협력병원에서 특진 중심의 진료를 하고 있다.
그는 국제자연성형학회 회장을 맡아 후배 의사들에게 의료 전수와 후배 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 외에도 그는 한방진단학회, 비만학회, 한방재형학회, 약침학회. 여성과 인정의 등 다양한 학회에 가입하여 다양한 의술을 전수받으며 최고의 한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회에 환원하는 한의사가 되다.
그는 대한한의사 협회 안양시 한의사부 재무이사를 맡아 한의사 권익과 신장에도 발굴의 능력을 발휘하여 대한한의사협회 경기도회장 표창패, 대한한의사협회 중앙회장 표창패 등을 받는 등 어느 자리에 가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그가 외국에 진출하고 국내에서 어려운 분들을 위해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활협동조합 법인을 설립했다. 그는 소외계층, 기초수급자, 노인, 어르신, 차상위계층, 새터민 등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위해 조합을 구성, 한의사 1명을 전문 봉사인력으로 배치하고 있다.
그는 국제로타리클럽에 지인의 추천으로 가입하여 의료봉사를 중심으로 봉사단체와 연계하여 해외의료봉사, 국내 의료봉사에도 빠지는 일이 거의 없으며 안양시에 있을 때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JC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한의사가 되고나니, 제도적 뒷받침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그는 한의사는 단순 치료만 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아주대학교 MBA과정에 입학하여 한의원의 경영현대화에 일조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스포츠서울에 칼럼을 기고하였고 SBS, MBC, 메디TV 등에 출연하여 한의학에 대한 홍보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10편의 논문도 발표하여 연구활동에도 게으르지 않는 한의사로 정평 나 있다.
그는 평소에 송오현 원장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송 원장은 삶을 바르게 살면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자신보다는 이웃에 더 많은 것을 베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꼭 닮고 싶은 롤모델이라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그는 “자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일러준다. 포기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없고 자신을 점점 작아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그는 강한 의지력으로 목표를 향해 꼭 앞으로 나가가라고 자신의 경험을 말해 주고 있다.
그가 오늘에 있기까지 순탄하지는 않았다.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사회 경험 부족으로 사기를 많이 당했다. 한의학의 전문지식이외는 사업에 대해 전무한 그였기에 그가 사기 당하는 일은 당연할지 모른다. 마음이 여린 그가 아주대 MBA에 입학한 것도 한의원의 경영과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한의학을 초월한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그가 밝은 미래를 보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많은 조합원과 함께 만든 ‘최선의료생활협동조합’은 단순한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요양원, 실버타운 등 미래의 사회복지를 위한 것이다. 그가 바라는 의료복지사업은 우리 모두가 동참할 때 짧은 시간에 가능할 것이다.

약력
전남 강진 출생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석사 학위취득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박사 학위취득
아주대학교 MBA과정
안양 다산한의원 개원 원장 역임
서울 강남 미앤체한의원 대표원장 역임
국제라이온스협회 공로패 수상
대한한의사협회 경기도회장 표창패 수상
대한한의사협회 중앙회장 표창패 수상
대한개원한의사협회 여성과 인정의 자격 취득
현재 국제자연성형학회 회장
대한한의진단학회 회원
대한한의원전학회 회원
대한한의통증제형학회 회원


편집부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4년 03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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