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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하고 사회복지의 대부가 된 류시문 회장


편집부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4년 02월 06일
ⓒ (주)경기헤럴드

어릴 적 사고로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되었고 이후 청력마저 잃으면서도 이웃사랑을 실천해 온 류시문 회장, 그는 청각장애라는 불운까지 겹쳤고 가난이라는 절망적 상황까지 더해졌지만 이 모든 운명을 극복하며 사업가로 성공, 가진 것 모두를 사회와 약자들을 위해 쓰는 날개 없는 천사가 됐다.

장애는 하늘이 주신 축복이었다.
정탁 선생과 회룡포로 유명한 경북 예천군이 그의 고향이다. 가난한 농가의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늘 효와 착한 심성을 가져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고 성장했다. 늘 명랑하고 쾌활한 그는 일곱 살 때 마을 뒷산에서 놀다 다리를 다쳤고 중이염까지 걸렸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제때 치료를 못 해 장애가 생겨 어린 그에게는 인생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너무 가혹한 일들이 일어났다.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그의 부친은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보다도 자식에 대한 미래가 더 걱정이셨다. 그의 부친은 다리도 쓸 수 없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니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농사나 지으라고 청천병력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는 부친 무릎에 엎드러 울면서 공부만이 제가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니 학교를 보내 달라 애원했다. 그는 하늘이 울릴 정도로 울었고 그의 부친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의 동생은 그를 위해 중학교를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와 노점상을 하다 교통사고까지 당해 아직도 병석에 누워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자신이 죄인이라고 자책학고 있다.
그는 남들이 평생 겪어야 할 일들을 짧은 청소년기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그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공부에 전념했다. 양쪽 귀의 고막이 막혀 선생님 말씀이 잘 안 들려도 친구의 노트를 빌려 밤새 암기로 친구들을 따라 가야 했다. 신학 공부를 하면서도 살아갈 날들이 걱정돼 기숙사 대신 숲속에서 밤을 새웠다. 그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이어진 총장과 신연식 교수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을 생각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한 그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목회를 하기로 결심하고 추풍령 부근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독거노인들과 함께 일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치며 목회활동을 정열적으로 해 나갔다. 학교에서 50등 하던 아이가 5등까지 올라가자 아이의 부모가 감사하다며 그를 집으로 초청했다. 모자를 눌러쓴 아이 아버지가 손을 내미는데 손이 오그라져 있었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한센병 환자였던 거다. 집으로 돌아와 양치질과 비누질을 쉴 새 없이 했다. 문득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종이 될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떠났다.
서울로 올라 온 그는 평신도로 사업을 해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신문배달원, 가게 점원부터 월부 책 판매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건물 안전진단·보수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건물 안전 여부가 중요해 지자 사업이 잘 풀려나갔다. 사업을 하는 동안 그가 직원들에게 강조한 세가지는 애국심, 효도, 나눔이었다.

사회사업이 기부이다.
직원들도 그의 이웃사랑실천을 보고 회사를 자신들 것처럼 애사심으로 회사발전에 기여했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그는 사회기부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처음 기부를 시작했을 때는 기부라는 단어도 생소했고 그저 어려운 사람 있으면 나눠주는 게 다였다. 그는 기부 영수증이란 것도 아예 몰랐고 월급을 타도 가족들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쓰는 돈이 더 많았다. 그는 기부운동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의 갱생을 생각했지만 재물을 나누는 건 끝도 없고 밑 빠진 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립의 길을 열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사회적 기업이나 일자리, 복지 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단순한 기부자에서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는 경영자이자 사회복지사로 변신하였다. 2009년 10월 사회적 기업육성법보다 더 엄격한 규정을 정관에 담아 (주)한맥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재활복지대학에 다니는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취약계층인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도 창출했다. 젊고 건강한 이들을 채용했을 때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회사가 손해를 봤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회적 기업이 취약계층에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재기의 기회와 희망을 갖고 사대적 빈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2010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출범과 함께 원장직을 제안 받고 취임하였다. 진흥원 출범 후 류 공동대표는 ‘청년 등 사회적 기업가 육성’을 중점적으로 하면서 ‘상생과 협력적 네트워크’를 현장에서 발로 뛰며 사회적 기업의 확산과 그로 인한 일자리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그는 10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130회 강연을 해 지방 강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코피를 쏟고 기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모친은 아들의 무리한 사업전개와 몸을 생각해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를 올려 주었다.
그는 2002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되면서 취약계층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진을 예방하고 사회복지사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2007년 한맥사회복지사 대상을 제정하였다.
한맥사회복지사 대상은 장애인복지∙아동∙청소년∙노인∙여성, 지역사회복지 부문, 사회복지 인권, 사회복지 일반 부문 등 4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을 매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기부를 해왔다. 지금까지 장애인 빈곤계층 등에 기부한 돈만 어림잡아 30여억 원에 이른다. 그는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사회복지사와 문화예술기관에 지속적으로 기부해 온 대표적인 사회공헌가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도 1억 원을 기부해 부자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돼 회자되기도 했다.

사회사업의 대부가 되다.
그는 아들에게도 남들과 같은 조건으로 교육을 시켰다. 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그의 모친은 하나뿐인 손자가 걱정돼 평생 저축한 1억 원을 아들에게 줬다. 그 돈은 그의 모친이 폐지를 모으며 손에 피가 맺히고 손톱이 빠지면서 모은 돈이었다. 27세 아들은 ‘자수성가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며 그 돈을 기부했으며 그의 교육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되었다.
그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운영위원, 부패방지위원회 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 한맥사회복지사대상 심사위원,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실천 대표공동회장, 한신대학교 초빙교수 등 을 역임하며 그의 경험을 현장에 접목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한기장복지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 (사)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사, (사)한국장애인소리예술단 총재, (사)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이사 등 사회복지분야에서도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자신과 집안에 쓰는 돈을 가장 아까워했다. 그의 양복은 10년 됐고, 겨울 코트는 20년, 넥타이는 선물 받은 것까지 합쳐서 4개뿐이다. 구멍 난 와이셔츠를 입고 외출을 했다가 윗옷을 벗지 못한 적도 있었고, 회사에서 이면지를 안 쓰는 직원에게는 호통을 쳤다. 뿐만 아니라 식사는 항상 구내식당에서 3000원으로 해결하며 다리는 아프지만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그의 살신성인 같은 생활이 진정한 사회로부터 존경을 아니 받을 수 없을 것이며 보건복지부장관상 2회 수상과 많은 단체에서의 감사패가 그의 발자국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는 이여진 총장과 신연식 교수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두 교수는 학비 지원은 물론 거액의 창업 자금 5000만 원을 선뜻 빌려주었던 것. 류 회장이 나눔에 앞장서게 된 또 하나의 결정적인 동기가 바로 정기예금까지 깨가며 제자를 믿어준 은사에게 보답하는 마음이었다.
스승의 사랑이 제자에게 전해주고 그 제자는 스승의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신이 장애라는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였기에 가능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꿈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고 전해주고 있다. 남이 주는 희망과 꿈은 일시적이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은 자신의 미래라고 후배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7살 때 마을 뒷산에서 무덤 비석 덮개를 흔들며 놀다 떨어져 왼쪽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는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하늘이 자신에게 준 시련과 축복이라며 하나하나 극복해, 한국 사회복지분야의 대부가 된 그는 오늘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찾아가고 있다. 또한 모친과 아들까지 나눔에 동참하며 어려운 그늘과 역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설계해 주고 있는 류시문 회장은 우리 시대의 사회복지분야에 있어서 진정한 대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사회복지사들의 복지증진에 늘 연구하고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복지사들의 생활이 안정돼야 그들로 하여금 더 밝고 아름다운 복지문화가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력
경북 예천군 출생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사)노블레스 오블리주 시민실천 대표공동회장
한신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초대원장
연세대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사)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이사
(사)류관순열사기념사업회 부회장
(법률구조법인)대한가정법률 상담원 이사
호∙영남 솔리스트 앙상블의 밤 후원회원
(주)한맥도시개발 회장
보건복지부장관상 2회 수상
글로벌 CEO선정 수상(중앙일보, 포브스코리아 주관)


편집부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4년 0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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