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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로 사회에 환원하는 김용철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3년 11월 07일
ⓒ (주)경기헤럴드

세상을 탓하지 않고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며 어르신 공경과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김용철 회장. 그는 지금 사는 곳을 고향으로 여기며, '서로 섬기고 사랑하자'를 생활신조로 삼아 이웃에게 아름다운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긍정으로 미래를 설계하다.
동리 신재효 선생과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주도자였던 전봉준 장군으로 유명한 전북 고창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5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밝게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징용으로 증폐병을 얻어 고통을 수반한 병마와 늘 싸워야 했다. 특히 날씨 변화가 클 경우에는 그의 부친의 병세가 더 악화되었다. 그래도 부친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하던 일을 멈추지 못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를 나갔다. 뿐만 아니라 그토록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식들에게 도덕성을 잃지 않도록 훈육했고 거짓말을 할 경우에는 경을 쳤다고 한다. 그렇게 부친은 자녀들에게나 자신에게는 냉철하게 혹독한 사람이었지만 사실 부모님께는 효성이 지극하여 지역에서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부친은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고, 집안의 모든 생계는 모친이 책임져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농사와 남의 삯바느질로 자식들의 교육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집안의 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축구, 달리기, 노래 등 예체능에 대한 소질이 있어 소풍, 운동회 때에는 그의 독무대였다. 특히 당시 유행가였던 월남의 달밤을 잘 불러 동네 어르신이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때는 모두 어려운 시절이라 학교에서는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옥수수 죽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친구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주고 대신 옥수수죽을 먹는 등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리 컸고, 약한 친구들이 있으면 그는 작은 체구에도 친구를 도우며 의리의 친구로 성장했다.
그는 운동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해 전라북도 일제고사에서 1등을 한 적도 있고, 웅변 또한 잘 해 상장을 많이 탔다. 그렇게 고향에서 학교생활을 잘하고 졸업과 함께 그는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먼저 기술을 배울 요량이었다. 이모네 집에서 기거하며 동대문에 있는 디자인학원에 등록, 잡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학원을 졸업하고서는 광교에 있는 양복전문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점차 그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로 정착되어 갔다.
그는 고향에 있는 모친과 형제들을 서울로 모시게 되었다. 결혼 전에 형님이 직장이 없자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 그의 형이 경찰공무원이 되도록 했고, 막내 동생도 전학을 시켜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가장 역할을 했다.

지역과 함께하다.
그는 양복을 생산하는 큰 회사에 입사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자들의 권익에 앞장섰다. 그러자 그는 부당노동행위로 해고당해 급여 한 푼 없이 한동안 힘들게 생활했다. 그리고 노동조합결성이 8개월 만에 성사되어 다시 회사로 복귀하게 했다. 회사에서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협의가 안정적으로 가자 그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퇴사했다.
당시 건설업을 하는 삼촌이 있어 그곳에서 건축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자재담당을 하면서 건축의 새새한 면까지 익혀 나갔다.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힐 쯤 다시 노조에서 협조요청이 들어와 자동차노동연맹 서울버스지부 경동노동조합 감사로 픽업이 되어 다시 노동계로 복귀했다.
그는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했고 그곳의 노동조합도 안정이 되자 회사를 퇴직하여 본격적으로 사업하기 위해 처가 식구들의 연고인 군포로 오게 되었다. 그는 산본 신도시가 형성되고 있는 산본중심상가에서 실내장식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다. 경험도 없고 처음 자신이 하는 사업이라 매우 어려웠다. 특히 처음에는 경영주로 종업원을 고용하여 사업을 하다 보니 인테리어에 대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당시 군포에서 호남향인들을 만나면서 그는 지역의 인사들을 알게 되었고, 새정치국민회의 청년특별부위원장을 맡아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고, 중심상가번영회 사무국장도 맡아 중심상가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어 사회활동도 왕성하게 했지만, IMF를 맞으면서 많은 미수금 발생으로 회사가 부도직전까지 이르게 됐다. 그러는 차에 한 지인이 건설시행을 도와달라는 제의와 함께 그는 시행을 배웠고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부동산투자분석과정을 수료, 전문가 자격증을 획득하며 건설시행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을 도와주었던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사회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러자 국제라이온스클럽에서 함께 활동을 하자는 제의에 가입, 회장과 지대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장학금 지급, 서해기름유출봉사, 수해봉사, 평화의 집, 한사랑마을, 소외계층 돕기 등 수없는 봉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사회복지 다비다 팀장을 맡아 독거노인 돕기, 장애인가족 후원, 위스타트 반찬지원, 어려운 가정 반찬 전달 등 그는 낮은 자세로 지역봉사를 위해 솔선수범했다.
그는 호남 향우회의 발전을 위해 회장으로 출마, 군포시호남향우회 25대 회장을 맡았다. 이때 그는 향인들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향우회가 지역발전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새마을지도협의회와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지역발전과 평화통일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사회복지를 위해 승화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약자나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자애심이 생겨 자신까지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그래서 군포시 장애인가족을 돕기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좋은 친구들의 이사로 들어가 장애인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군포시 여러 단체와 함께한 제2회 장애인과 함께하는 산행에 직접 참여해 산행을 하며 장애인들의 권익증진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극한의 어려움을 겪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슬픔을 미래의 꿈나무들이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수원경찰청안양지청안양협의회 군포범죄예방 부위원장과 운영위원을 맡게 되면서 선도지도자교육이수, 보호관찰 등을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산본공고징계위원회 위원으로 학생들의 선도와 지도를 하면서 군포경찰서 산본지구대 생활협의회 고문으로 치안활동에도 빠짐없이 참여하여 지역안전에도 열성을 보였다. 현재 IT사업을 사위와 함께하며 홈페이지제작, 솔루션개발 등으로 2012년 솔루션개발 공인인증을 획득, 정보 사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그는 아들에게 마음의 영혼과 아름다운 삶을 위해 신학대학에 진학하도로 종용했다. 아들은 그의 말을 듣고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아들과 딸들도 그의 선행을 보고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언제나 선행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모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일찍 홀로되셨어도 6남매 모두 건실하게 양육하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을 승화하며 생활하셨던 모친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94세 된 모친을 모시고 효행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배움은 매우 중요하다. 배움에는 시기가 있어 때를 놓치면 배우기 어렵고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 전문성을 습득하라.”고 일러주고 있다. 어르신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슬기를 배워 마음을 여는 자세를 배우라고 자신의 체험을 조심스럽게 말해 주고 있다.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위해 못했던 대학을 이제야 한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수시로 응시하여 합격을 했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며 자신의 소양을 계발, 중견의 사회인으로서 요즘 장애인과 고통 받는 어르신을 위해 복지관을 건립하여 잘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꿈이라고 한다. 그는 30여 년 살아온 제 2의 고향 군포를 사랑한다며 유아에서부터 실버까지 이용하는 종합복지관을 건립하여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인권운동을 하며 사업에 어려움이 있어도 옆에서 늘 용기를 주었던 아내에게 평생 갚지 못할 빚이 있다는 김용철 회장. 그는 아흔 넷이 되는 노모와 가족들이 함께하는 자리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서로 부모를 모시길 꺼려하는 세태에서 그의 효심은 우리 주위를 더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2016년 12월 1일 수정)

약력
전북 고창 출생 한세대 사회복지학과
국민의당 대협력위원회 부위원장
군포시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
전국 섬유노련 프랑스 양복 노조 위원장 역임
평화통일자문위원회 군포시 자문위원
군포시경찰서 산본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 고문
군포시 시립요양원 경영자문위원
국민의당 특별정책부위원장 역임
국제라이온스354B지구 제9지역 지대위원장 역임
군포시 법사랑위원회 운영위원장
군포시 호남향우회 제25대 회장 역임
군포경찰서장 표창장
군포시장 표창장
국회의원 표창장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감사장
김대중 총재 감사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3년 1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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