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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리 꽃과 에세이86> 앉은부채꽃과 렛잇고


박혜리 기자 / rumiya515@gmail.com입력 : 2024년 02월 20일
ⓒ 경기헤럴드
↑↑ 사진 이영렬 사진작가
ⓒ 경기헤럴드
시인·논설위원 박혜리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겨울왕국이다. 오랜만에 디즈니에서 완벽한 공주 캐릭터가 나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았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끝났을 때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예상보다 묵직한 여운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겨우 영화관을 빠져 나와서도 코끝에서 주제곡이 떠나가지 않았다. 한동안 ‘렛잇고 렛잇고’를 흥얼거려야만 했다.
‘Let it go’는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엘사는 디즈니에 나오는 다른 공주와 달리 얼음 속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능력은 디즈니 세계관에서 대중적이지 않아서 숨기고 산다. 그러다 우연한 일로 능력이 들통나고 엘사는 산으로 도망친다. 이때 산으로 도망치며 부르는 노래가 ‘Let it go’다. 즉, 능력을 숨기고 살았으나 이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추지 않고 살 것을 결심하는 장면이자 노래이다.
꽃 중에서도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외치는 꽃이 있다. 앉은부채가 그것이다. 이것이 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신기하게 생긴 식물이라고 여기고 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존 ‘꽃’이라는 형상과 이질적이다. 앉은부채의 꽃말이 ‘내버려 두세요’다.
앉은부채꽃은 독성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생선 썩은내같은 암모니아 냄새도 강하다. 모습은 더욱 강렬하다. 억세게 생긴 잎이 둥글게 말려있고 그 안에 누군가의 머리가 보이는 듯하다. 꼭 간섭하는 존재를 피해 방안으로 피해 도망쳐 웅크린 누군가의 모습처럼 보인다.
최근 친구에게서 연년생 동생과 크게 싸웠다고 연락이 왔다. 친구는 오지랖도 넓고 정도 많다. 동생에게 밥을 사주며 친구가 동생을 위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뜸 동생이 화를 내며 ‘언니가 밥먹자고 할 때마다 너무 싫었어. 그냥 좀 내버려 둬!’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는 동생의 반응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동생을 몇 번 보지도 않은 내가 동생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간섭은 좋지 않다. 물론 간섭하는 사람은 조언이라고 말할 터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조금도 원치 않는 조언은 조언이 아니라 간섭이다. 간섭이 과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떨어진다.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나를 믿지 못하니까 또 저렇게 잔소리를 하는 구나. 나를 정말로 믿지 못하는 구나. 난 고작 그런 정도의 인간이구나. 그런 생각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면 이제껏 쌓인 스트레스가 방어본능과 함께 분출된다.
인간관계, 가족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서로 간에 원하는 거리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람들 틈에 뒤섞여 있어야 안심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안정되는 사람이 있다. 특히 후자의 사람들은 나 자신에게 에너지가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사람들은 오히려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하고 자존감도 높아질 수 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살겠다는 마음은 고귀하다. 그 마음과 결심은 더 이상 남들과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동시에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향한 간절한 부탁이기도 하다. 엘사의 노래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혀 세상에 벽을 쌓고 있는 앉은부채가 한심할 수 없다. 오히려 수많은 간섭과 선을 넘는 자들이 팽배한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위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존재성과 아름다움은 타인이 보고 가치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 앉은부채꽃이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박혜리 기자 / rumiya515@gmail.com입력 : 2024년 0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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